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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Nov 21. 2024

잃어버릴 수 있어서 떠날 수 있었지

#02 인천공항 (D-1)

  "글쎄다.. 흐음.."

  잠깐 동안 가까웠던 친구는 자주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언제나 명확한 결말과 정답을 추구하는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 친구가 정말로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쉽게 불편해졌다. 왜 몰라? 지금 내 질문을 회피하는 건가? 때로는 그 친구가 비밀이 많은 것처럼 느껴져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기억도 있다. 나는 결국 내 안의 오해와 미성숙함을 견디지 못하고 말없이 마음을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매번 연애를 할 때마다 피 터지게 싸운다고 했다. 친구들과도 크게 갈등을 빚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어질 듯이 싸웠다가, 다시 만났다가. 그게 뭐 하는 거야? 안 맞는 거 아니야? 오렌지 에이드를 휘휘 저으며 시간 낭비는 그만하고 자격증이나 같이 준비하자는 내 말에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이런 게 자신이 그간 연애에 실패하며 터득해 낸 맞춰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들통이 나는 편보다는 통하게끔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 그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에는 참지 않고 잔뜩 열이 받은 석류처럼 외칠 것 같다. '야! 너는 사람이 별게 다 '글쎄다'야! 아오, 답답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나는 네 뀐 방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정확히 알고 싶다고!  그때의 나는 연애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인간관계와 연인관계 사이에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하고, 어려워하는 점이 많았던 것 같다. 미성숙했기 때문에 속으로 끙끙 앓았지만, 한편으로 미성숙함을 무기로 사용해 그 친구에게도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 종종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뭐,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랬던 내가 그 애의 말투를 따라하고 있다. '글쎄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헤아리게 된다는 것이다. 명확한 기준이 있었던 나의 세계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모호해졌고, 무너져갔다. 다수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요즘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글쎄다'하는 말을 뱉곤 한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애매해진다.

  이번 여행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글쎄다' 친구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퇴사 후 7곳을 여행하며 마지막 여행지로 정했던 홍콩에서 '친구'로서 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조금 더 쉬어도 돼. 조금 더 다녀도 돼.'

  언제나 '글쎄다'에 발목을 잡혀 불안해했으면서도 한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기울어져 버리다니. 어쩌면 나는 그동안 무엇인가 증명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존재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방랑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떠난다는데, 사실 나는 이미 내 인생의 방향을 재정비한 후였기 때문에 '상실감'이나 '불확실성' 운운하며 이번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여행이 '모험'이었다면, 나에게 이번 유럽행은 '거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과의 거래.

  홍콩에서 돌아와 한 달간의 유럽행을 준비하기까지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귀국날만 해도 일정이 세 개나 잡혀 있어 모두 소화해야 했고, 바로 다음날 인쇄소에서 책을 생산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 등록해 두고, ISBN을 신청했으며, 한 출판사의 대표로 서점 이곳저곳에 입고 메일을 돌렸다. 매주 소설을 쓰는 일도 빼먹지 않고 해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잠은 회사를 다니던 때보다 두 배로 자기 시작했다. 살이 붙기 시작했고, 근력 운동을 할 때 전과는 다르게 힘이 넘쳐났다.

   호기롭게 유럽을 돌아보겠다며 9개국의 목적지를 정해놓고는 티켓과 숙소를 정하며 애를 많이 먹었다. 세부적인 여행 계획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숙소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찾아보지 않았다. 여행보단 이젠 일이 중요하니까. 원래의 '일 벌이기 좋아하는' 곽민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준비한 이번 여행.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걷고, 쓰고,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짐은 많이 챙기지 않았다. 필요한 게 생긴다면, 그곳에서 사면될 테니까. 그렇게 얼렁뚱땅 짐을 챙겨 출발 1시간 전까지도 체육관에서 러닝을 하고 공항철도를 탔다. 얼기설기 무언가 빠진 것 같아 불안해지면서도 순조롭게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열차 안에는 늘 그렇듯 출국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태민 오빠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스큐즈미.'

  그때 누군가 내 팔을 톡톡 때렸다. 돌아보니 한 백인 남성이었다. 키가 나보다 한 머리통은 커서 올려다보았는데, 눈빛을 보아하니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다. 그는 마스크를 쓴 채로 내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긴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저는 벨기에에서 온 브뤼한입니다.(이 첫 문장은 기억에 남는다). 제가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경찰은 cctv를 봐도 모르겠다고 하고, 돈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게 5만 원만 빌려줄 수 있나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아니, 한국에서 소매치기라니. 그때만 해도 유럽 소매치기에 대한 글을 많이 봐 온 터라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거 신종 수법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5만 원이면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제법 큰돈이 아닌가. 나는 내쪽으로 기울여 둔 가방을 조금 더 끌어당기면서 현금이 없다고 답했다. 미안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중요한 물품들을 가방 맨 위쪽에 올려놓고 다닌 것 말이다.

  '그래, 벌써부터 여행이 시작된 거야.'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냉정한 표정으로 다시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그는 계좌번호라도 알려주겠다며 말하다 이내 사라졌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국 사람만 하더라도 길을 물어보겠다며 갑자기 '인상이 좋아보인다'는 말을 던지는데 한국에서도 이제 국제적으로 수법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찰나에 어쩌면 브뤼한이라는 친구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흔한 일은 아니니까. 진짜 소매치기를 당한 거라면 어린 친구가 얼마나 지금 무섭겠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분 뒤, 나는 결심한 듯 가방에서 20달러를 꺼내 짐을 들고 열차와 열차 사이를 돌아다녔다. 어딘가 브뤼한이 있다면 그에게 20달러를 건넬 생각이었다. 한국 돈은 없었지만 이 돈이라도 환전해서 급한 일은 해결하라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열차의 끝과 끝을 헤매이다 그를 찾지 못하고 비어 있는 구석 자리에 다시 짐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종종 브뤼한이 지나갈까 복도를 살핀 것 같기도 하다.

  인천으로 들어가는 길에 지하철에 자리가 제법 많이 비었다. 나는 짐을 다시 (질질) 끌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잠깐 동안 프리랜서이자 대표가 되어보니 해야 하는 행정 업무가 너무나 많았고, 오후엔 필요한 물품을 추가로 구매하느라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일까지. 나는 짧게 잘라 사방으로 뻗쳐 있는 머리카락을 제대로 쓸어 넘기지도 못한 채 푹 고개를 숙였다. '나 이번 여행 잘할 수 있을까?' 문득 불안한 생각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나를 툭툭 치는 것이 아닌가.
  
  "민주님!"

나는 그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난주에도 얼굴을 보았던 모임의 멤버였던 것이다. 11시가 넘는 시간이었는데, 그는 퇴근 중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앉은 옆 자리에 우연히 아는 사람이 앉다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그는 처음부터 내가 자리를 옮겨 다닐 때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고 했다. 순간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나의 생얼(?)을 상상하며 매우 당황스러워했고, 이내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하하 웃어버렸다. 열차 안에서 나는 조금 전에 내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브뤼한에게 20달러를 건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사람 덕분에 이런 우연도 있네요!"

  지금도 열차 안에서의 시간이 신기하다. 항상 같은 열차칸을 선택해 같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나로서는 그날 브뤼한의 방문이 없었다면 절대로 다른 열차칸을 타지 않았을 거다. 그가 나를 변하게 만든 것은 결국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이 한층 더 성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연이라는 거, 운명이라는 거. 원래 그런 걸 믿지 않았는데 그날의 일을 계기로 나는 보이지 않는 운명을 조금 믿게 될 것 같다. 나의 의지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말이다. 마찬가지로 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쩌면 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열어두는 일 같다.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주사위에 기대어 보겠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다시 돌아와 결국은 '글쎄다.'

  나는 이번 여행을 무엇으로도 정하지 않을 예정이고, 나를 받아들이고, 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든 그것은 나의 여행기를 함께 해주는 여러분의 몫이다. 그리고 나의 여행기는 앞으로 꽤나 사랑스러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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