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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시에르 Oct 02.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

고상욱 씨의 오지랖 네트워크

 소설 속 [빨치산의 딸]고아리 씨는 ‘빨치산 고상욱의 딸’로서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을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언제나 잔인했다. 우리 사회는 쉽게 누군가를 낙인찍는다. 나는 그런 낙인이 주로 기득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그 낙인은 민중이라 불리는 사람들, 약자라고 불리는 이들로부터도 던져진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자를 욕하는 사람들, 구조 탓만 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에 기대어 자신의 현실을 자위로 받는 이들까지.



 그들의 불만은 자본주의를 향해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꿈은 ‘작은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비틀린 민중은 진정한 민중이 아니다. 그들은 패배자다. 노력도 하지 않고, 공평한 부를 원하는 자들, 예의도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 그런 자들은 절대 민중일 수 없다. 진짜 민중은 오병이어 속의 그 아이들이다. 자기 것을 기꺼이 내놓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원망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다.




 나는 한때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나는 ‘무례한 약자들’을 보았다. 그들의 악행, 민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행동들. 그들이 옳다는 전제는 그 자체로 오만이자 착각이다. 프랑스의 좌파 수장,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장치]에서 말했다. ‘민중은 자율적이지 않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자크 랑시에르는 1981년 국가 박사 논문으로 쓴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그에게 반박했다. ‘민중은 그 자체로 능동적인 이데올로기의 주체’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이와 같다. 약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무지한 스승] 일뿐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더 능동적이다. 그들은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돈이나 내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참여나 연대가 아니다. 그저 돈이다. 소위 사회 운동을 한다며 참여와 연대를 외치는 이들은 자기 호구지책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이상만 논한다. 그들 안에는 약자를 향한 우월감이 짙게 깔려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물자가 아니다. 그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리고 잊지 마라. 그들이야말로 낙인을 찍는 데 누구보다 능숙하다. 자기 처지가 이 사회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가진 자들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린다. 돈이 필요하면, 막노동이라도 해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어쭙잖은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정말로 자기 자신을 위한 해방을 원한다면, 공책 하나를 꺼내라. 가슴에 손을 얹고, 세상과 나 사이의 진정한 대화를 시작해라. 그때 비로소 당신은 별 볼 일 없고 능력 없는 ’ 객관적인 자기 자신‘과 마주할 것이다.

슬프고도 먹먹한 아버지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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