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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시에르 Oct 02. 2024

사계절을 아시나요?

봄여름가을겨울의 탄생설화(?)


우리 사는 세상은 네 계절 (季節)로 나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단어들은 각각 세 달씩을 차지하며, 그 속에 자연의 변화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이 계절을 만들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오래전에 한 번, 나는 이 계절들을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는 분명 시인 같은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한창 봄날에, 대지를 녹이며 내리쬐는 햇볕을 '보-옴'이라고 부르며 입안 가득 그 단어를 굴렸을지도 모른다.


 여름은 그 자체로 푸르른 들판과 뜨거운 햇볕을 떠올리게 한다.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모내기를 끝내고 막걸리 한 잔을 부딪히며 쉬어가던 시간. 그 여름을 이들은 축제로 삼았다. 농악이 울려 퍼지면, 마을은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가을은 말 그대로 떨어지는 잎사귀 속에서 찾아왔다. 사람들은 여름이 지나고 찾아오는 이 계절을 '갓을'이라 불렀다. 갓을 쓰고 농사짓던 사람들, 그들이 맞이한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달랐다. 여름 끝자락에서 여전히 떠나지 못한 더운 공기를 느끼며, 바람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가-을'이라고.


춘하추동 (春夏秋冬)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이지만, 그것이 단지 대학가 앞 술집의 이름은 아니다. 이는 농경문화가 우리에게 스며든 흔적이다. 유교는 단지 문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 뿌리깊이 자리 잡은 종교였다. 그 속에서 인간은 몸과 땅이 하나임을 깨달아 갔다. 신토불이 (身土不二), 그것은 단순히 우리 농산물을 먹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제 가을이 다가온다.


시인이 말했던 '가-을'이, 바람에 실려 우리에게 온다. 조상들은 계절을 나누고, 그 속에서 인생을 비유하며 살았다.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이었고, 계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지나왔다. 그들에게 삶은 자연의 순환과 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삶은 단지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는 그 시간을 살아간다.


 이 감탄의 순간들, 우리는 그것을 단지 '오-'라는 소리로 표현한다. 인간은 감탄하기 위해 살아간다. 우리의 몸이 이 세상을 느끼는 동안, 우리는 그 감탄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칸트는 죽기 직전까지 이 감탄을 실천하며 "아,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이, 죽음마저 감탄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인간은 본디 감탄하려고 산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감탄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계절 속에서, 우리의 삶도 자연과 함께 순환하며, 감탄의 순간들을 찾아가고 있다. 생명은 사라짐을 향하지만, 그 순간마저도 감탄을 갈망한다. 죽음 앞에서조차 우리는 감탄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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