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가짜 비방에 속지 말자

당신 말이 곧 비방입니다.

by 랑시에르

먼저 밝혀두건대, 무속인을 무분별하게 비난하거나 그분들의 직업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종교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샤먼(Shaman)'은 본래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래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북방 민족의 제정일치 사회에서 제의를 주관하던 신성한 역할이었다. 과거의 무당은 개인의 사사로운 길흉화복이 아니라, 오로지 공동체의 안녕과 안위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단군이 무당이었다는 말은 그가 제사를 직접 주도하는 통치자였음을 뜻한다. '차차웅' 역시 왕이자 무당을 일컫는 말이었다. 신라의 화랑 또한 젊은 남성 무당 집단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경상도 방언으로 무당을 '화랭이'라 부르는 것도 그 맥락이다.


이처럼 무당은 원래 개인의 자잘한 사연을 읊어주거나, 무엇을 조심해라, 무엇을 하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식의 맞춤형 예언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조선 정조 시대 이후 무당은 궁궐에서 축출되며 그 위상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굿을 하고 작두를 타며 '군웅풀이'를 하는 형태의 무당은 대부분 강신무, 즉 황해도 내림무당 계열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활동하는 많은 무당이 정작 자기 직업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한다. 신병과 신내림, 끝없는 기도의 굴레 속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깊이 있는 공부를 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복을 빌어주는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기에 그들의 일상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디어와 영상 속에 비치는 무당들은 대부분 홍보용이다. 소수의 유명한 이들을 제외하면, 과연 신당에 정갈하게 '옥수(玉水)'라도 제대로 갈아 올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문가의 영상 편집 도움 없이 무당 혼자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상업적인 경로를 통해 전파되는 이른바 '비방'은 대부분 근거 없는 가짜다. 아무런 효험이 없다.


달마도, 해바라기 그림, 소금 단지, 코뚜레, 동전, 금박 입힌 돼지나 두꺼비 상, 새벽 3시 반의 날달걀, 침대 방향과 가구 배치 변경, 부적(이는 무당의 영적 기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심지어 무속인과의 성관계가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망언까지.


수많은 미신이 SNS를 떠돌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전부 가짜라 해도 무방하다. 특정 행위를 해서 로또에 당첨됐다거나, 장례식장에 가기 전 고춧가루와 소금을 챙기고 양말을 버리라는 식의 이야기에 현혹되는 순간, 오히려 부정적인 파동에 휩쓸리게 된다. 무당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화가 닥친다는 공포 마케팅에 굴복하지 마라. 무당의 처방으로 복을 받았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영적인 존재들은 흔히 준 만큼 되가져가는 속성이 있어, 자칫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거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행하는 '홍수막이(횡수막이)' 같은 의식은 어떨까? 단언컨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식을 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에 집착함으로써 부정적인 파동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 년 중 별일 없이 지나갈 운명임에도 굳이 큰 비용을 들여 홍수막이를 할 이유가 없다. 잠잠한 파동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새해의 밝은 태양을 보며 힘차게 기합을 넣어라. "올해는 무슨 일이든 잘될 거야. 나는 정말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람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든 것에 감사한다."라고 내뱉는 확언의 힘이 일 년 열두 달을 편안하게 지켜주는 진정한 비방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동차 뒷유리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 먼저 구해주세요' 같은 문구를 붙이곤 한다. 하지만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문구는 오히려 불행한 상황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물며 그런 글귀도 힘을 발휘하는데, 우리가 내뱉는 말의 에너지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영적 차원을 다루는 무당들은 종종 손님을 자신과 신령의 이익에 맞게 유도한다.


굿 비용이 비싼 이유를 대며 "신령님이 최고급 쌀과 비싼 과일, 소고기를 좋아하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대접한다고 해서 그들이 재물이나 성공을 내려줄 힘이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타인의 영가(귀신)는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줄 실질적인 힘이 없다. 무당이 정말 그토록 영험하다면 본인의 삶부터 풍요로워야 마땅하다. 물론 삶이 깨끗하고 진실하며 정갈한 무속인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분들일수록 오히려 무당집을 기웃거리지 말라고 조언할 것이다.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내 조상님들이다. 그분들이 계시는 곳이 좋은 혈에너지와 생기맥이 흐르는 곳에 계신다면 자손에게 엄청난 동기감응으로 재물은 물론 성공 가도를 달리게 한다.


SNS 알고리즘을 따라 점집에 가볼까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그 주파수에 코가 꿰인 것이나 다름없다. 무당이 보내는 파동과 나의 에너지가 맞닿아 있으니, 무당이 하는 말이 다 맞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없는 성공을 만들어내고, 없는 재물을 끌어당겨 눈앞에 보여줄 수 있어야 진짜 영험한 무당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색깔이 좋고, 어디를 가지 마라, 몇 살에 무엇을 해라" 하는 조언들은 이미 신령과 동자, 애기씨들이 짜놓은 판에 당신을 끌어들이는 게임일 뿐이다. 그들의 게임에 놀아나선 안 된다. 비싼 돈을 들여 굿을 했다면 실제로 삶이 나아져야 한다. 승진을 하거나, 보너스를 받거나,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면 결과 또한 차원이 달라야 옳다. 그렇지 못하면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안 그러면 큰일 난다"라고 겁박하는 말들에 휘둘리지 말자.


무당은 기본적으로 귀신, 즉 '영가'와 소통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영검하든 아니든 결국 영적인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신령이라 칭송받는 존재들도 본질적으로는 영가이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기 시작하면 자꾸 기운을 빼먹으려 든다. 사람이 말을 잘 들으면 마치 자신이 대단한 신령이라도 된 양 '공수(신의 계시)'를 내뱉지만, 정작 실현할 힘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과거 국가가 인정했던 정통 무속의 맥은 지극히 드물다. 그 외에는 허주나 잡귀에 휘둘리는 선무당이 적지 않다. 무지한 무당들이 몇 가지 사실을 맞힌다고 해서 타인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비극이다.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남의 귀한 인생을 논하는 것은 오만이다. 진정한 무당이라면 남의 인생을 다루기 전에 스스로 덕을 쌓고 수행하며, 신령을 두려워하고 정갈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 신 노릇을 하려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진짜 무당은 전국에 1%도 채 되지 않는다. 무당은 본래 공동체를 위한 존재였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귀신 놀이'를 멈춰야 한다. '살목지' 같은 공포 영화나 무속 콘텐츠를 즐겨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특히 원한이 맺힌 에너지는 매우 강력하다. 귀신은 소금 단지나 복숭아나무 가지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영상을 보며 공포와 부정적 파동에 몰입하는 순간, 그 에너지는 당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공포 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는 당신의 파동을 귀신이 원하는 주파수에 맞춰가게 하고, 결국 빙의에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영적인 원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이들에게 속아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운을 틔우고 싶다면 말부터 바꿔라.


"나는 참 행복하다. 나는 참 풍요롭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이 짧은 말들이 에너지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비방보다 강력하고 훌륭한 으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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