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신이 아닙니다
황해도 이북 굿의 정취는 대개는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굿의 말미에 무당이 재가집을 위해 온갖 비방을 처방해 준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상님들께 독경을 외워드리고 재가집에게는 비방을 행하고 오방색종이를 찢기 전,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에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즉시 자리를 떠나라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만약 미련을 두어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건네면, 굿당에 하객처럼 모여들었던 객귀들이 집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고 말합니다. 무당은 "여기서 눈인사로 마무리를 짓고 어서 가시라"며 재가집의 등을 떠밉니다. (그리고 3일 뒤에 삼일정성이라고 해서 무당과 재가집은 다시 만나서 신령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굿을 정리하고 공수를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재설정하곤 합니다.)
본래 굿이 시작되기 전에도 객사하거나 떠도는 영가들을 위해 먼저 상을 마당에 차려 대접하며 그들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소문난 잔치에 구경꾼이 몰리듯, 굿당에 영가가 가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들은 차려진 떡과 술,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합니다. 이 모든 행위는 결국 넋을 달래고 위로하는 고결한 의식이며, 이러한 공덕은 오롯이 굿을 주최한 재가집의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고향 산천에 잠든 조상님들의 영가를 청해 모시고, 현세의 자손이 처한 고단한 사정을 고하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는 행위. 이는 자손에게 복을 내리고 장손의 앞길을 열어달라는 간절한 염원의 발로입니다. 무속의 장단에 맞춰 신명을 풀고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은 마치 마당놀이의 해학적 구조가 굿판의 역동성에 투영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무당은 거리마다 의복을 갈아입으며 각기 다른 신격(神格)을 현신시키고, 재가집에게 신의 목소리인 공수를 전달합니다. 재가집은 신령의 엄중한 가르침 앞에 두 손을 모아 빌며 "감사합니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이 장면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현대 종교의 공백을 오히려 음지로 치부되던 굿당이 메우고 있다는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풍요와 안녕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초적 욕망이 투영된 굿판에서 서러움과 눈물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전라도에서는 마을마다 전담 무당이 있어 공동체의 안녕을 책임지는 푸닥거리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파와 1970년대 미신타파 운동이라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 무속은 모진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삶의 위기 앞에서는 은밀히 굿을 행했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이를 기복 신앙이라 비하하지만, 한국의 역사 속에서 기복의 속성을 배제한 종교는 결코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년 전 세계 10대 교회 중 7개가 한국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기독교가 기복의 가치를 선도했음을 방증합니다.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 모래벌판에서 실제로 병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은사를 행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맹인이 개안하며 벙어리가 말을 하는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기에, 그 강력한 체험을 바탕으로 순복음 교회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속이든 불교든 기독교든, 한국 땅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기준은 '효용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신령님이든, 내 간절한 기도를 실현해 주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존재가 진정한 신이라는 것이 한국적 종교관의 특징입니다. 황루시 교수의 저서에 언급되었듯이, 무당이 작두를 타기 전 그 칼날을 서슬 퍼렇게 갈고 있는 주체는 다름 아닌 한국인들입니다. 이는 "당신이 진정한 영험함을 가졌는지 직접 증명해 보이라"는 냉철한 확인 절차이며, 강력한 믿음 이면에 자리 잡은 비례적인 의구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환경이 척박할수록 종교의 구심력은 강력해지며, 인생이 고단할수록 인간은 절대자에게 기대게 마련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 폄하했으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신앙의 힘으로 생의 의지를 다지고, 한 달에 한 번 사찰을 찾아 부처님 앞에 엎드리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위안을 얻습니다. 무당집을 빈번히 드나드는 이들 또한 나약해서가 아니라, 삶의 사소한 불행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간절함의 단골이 된 것뿐입니다. 그 순수한 간절함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지탄받아야 할 대상은 그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여 사익을 취하는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굿판이 끝난 뒤 그 정화된 기운이 일정 기간 지속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장 실질적인 성공으로 직결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굿은 마음의 근력을 회복시켜 주는 계기일 뿐이며, 그 회복된 의지로 스스로 역경을 헤쳐 나갈 때 비로소 재물과 성공이 따르는 것입니다. 무당이 영가를 투시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역시 신령이라 칭하는 조상령을 등 뒤에 업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주파수를 맞추면 그들의 세계가 보이는 법입니다. 실제로 무당을 찾는 조상신 중 상당수는 자신이 안치된 자리가 불편함을 호소하며 찾아옵니다. 기감이 뛰어나고 심성이 착한 자손에게 신호를 보내 묘자리를 바로잡아 달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 묘자리에는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