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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n Oct 04. 2024

영화과 졸업 후 입봉 준비만 17년째인 감독 지망생


설마 석 팀장이 난니맨?


야심차게 개봉한 ‘구독해주세요’의 관객 반응을 살피다 “노잼이라서 구독 해지합니다”라는 제목의 혹평 리뷰를 발견하고 그 리뷰를 작성한 블로그 주인인 애널맨이라는 놈의 정체를 추적하다가 애널맨의 정체가 나라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오늘 나를 급하게 호출한 건 데뷔와 동시에 폭망 후 10년째 놀고 있는 게 불쌍해서 기껏 기회를 줬더니 혹평으로 보답한 게 괘씸해서 계약금 토해내고 나가라는 통보를 하기 위해서일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애널맨이라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고 자기 맘대로 휘두르고 후려치고 가스라이팅하려는 걸 수도 있고. 


적어도 영화과 동기 조지선보다는 석 팀장 쪽이 난니맨이라는 게 훨씬 개연성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선에겐 정체를 숨기고 익명의 테러를 가할 이유가 없다. 실질적인 이득이 전무하다. 하지만 석 팀장이라면 범행 동기가 그럴 듯 했다. 석 팀장이 내가 애널맨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약점을 잡고 협박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석 팀장이 아니라면? 


석 팀장은 그런 음흉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10년째 놀고 있는 폭망 감독에게 딱히 원하는 게 있을 리도 없다. 어쩐지 석 팀장은 아닌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던 애널맨이라는 나의 부캐를 정체 불명의 악플러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멘붕이 왔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중요한 건 왜 이러는 지보다 앞으로 뭘 어쩌려는 지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아 심란한 가운데 또 다시 핸드폰 알림이 왔다. 난니맨인가 싶어 떨리는 손으로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영화과 동기 심동민이었다. 


동민은 영화과 졸업 후 입봉 준비만 17년째 중인 감독 지망생이다. 17년이 긴 것 같아도 연출부 두어 편 하고 시나리오 공모전 대여섯번 떨어지고 감독 계약이 성사 되려다 말길 반복하고 이도 저도 안 돼서 홧김에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며 영진위 제작 지원 사업 알아보고 이런 저런 준비하다 보면 금방이다. 그리고 17년쯤 됐으면 본인도 안다. 이번 생에 감독 데뷔는 글렀다는 사실을.. 


기성 감독으로서 영화사 대표 미팅을 앞두고 있는 내가 지금 한가하게 감독 지망생 따위의 전화를 받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리고 동민의 전화라면 받아봤자 별 볼 일 없을 게 뻔하다. 할 말 있으면 문자를 보낼 것이지 안 그래도 심란한데 쓸데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을 게 뻔해서 씹었는데 잠시 후 카톡이 왔다. 바쁠 일도 없으면서 귀찮게 자꾸 왜 이러나 싶어 확인해봤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이의 부고 알림이었다.


[임문호 감독님 부고 알립니다. 발인은..]


임문호 감독님이 돌아가셨다고?


믿을 수 없었다. 임문호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5년이란 시간을 감독님으로 모신 영화 스승이자 한국 영화 역사에 작지만 뚜렷한 한 획을 그은 영화감독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10년 전쯤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한 후 독립영화로 재기를 도모하시던 분이었는데 결국은 그마저도 실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덕분에 듣보잡 신생 영화사에서조차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신세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임문호 감독을 생각하면 언제나 “영화감독은 딱 두 종류야. 원래 돈이 많은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 영화로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돈이 없는 감독은 계속 없을 거라고 보면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임 감독은 원래 돈이 많은 감독이었다. 본인이 부잣집 아들이고 처갓집은 더 부잣집이다보니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았다. 말년에 가족들 돈으로 독립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유언’


임 감독이 가족들 돈을 끌어다 만든 유작의 제목이다. 불치병에 걸린 어느 늙은 영화감독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는 투자 유치 실패로 제작이 무산된 영화를 사채까지 끌어서 만들다가 크랭크업 직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얼마 뒤 예술영화 극장에서 조촐하게 개봉한 ‘유언’이 관객의 입소문을 타며 조용한 대박을 암시하며 끝나는 열린 결말이다. 


하지만 실제 ‘유언’은 해외영화제 진출에 실패하고 창고영화로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다가 어딘지도 모를 변두리 극장 몇 군데를 스쳐 지나간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래서 투자가 안 되는 영화는 억지로 만들면 안 되는 거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임 감독의 유작이 되어 버린 ‘유언’처럼 본인의 영화 인생 역시 씁쓸하게 끝나버렸으니 차기작 제목은 신중히 짓는 게 맞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데뷔작 제목을 잘못 지은 것 같다.


임 감독이 ‘유언’을 가족들 돈으로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렸을 당시 나는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어서 임 감독의 조감독으로 와서 일하라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이기적인 새끼! 니가 그럴 줄 몰랐다며 분노한 임 감독에게 나 대신 영화과 동기이자 대학 졸업 이후 자기 시나리오로 데뷔하겠다며 수 년째 방구석에 틀어 박혀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심동민을 조감독으로 소개시켜주었다.


임 감독은 동민의 관상이 별로고 못 사는 집 애 같다며 깠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조감독을 못 구했는지 촬영 직전에 동민이 무보수나 다름 없는 페이로도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자 선심 쓰듯 조감독을 시켜주었다. 동민이 알아서 찾아간 건 아니고 내가 동민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계속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만 쓰다가 인생 종치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임 감독님을 찾아가서 조감독 시켜달라고 무릎꿇고 빌라고. 


동민을 불안해하는 임 감독에게 걱정 마시라고 만약 감독님 작품의 촬영과 나의 데뷔작 촬영 기간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감독님 현장에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도와드리겠다고 했는데 임 감독은 너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했고 나 역시 빈정이 상해버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촬영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촬영장엔 한 번도 안 갔지만 쫑파티엔 오라고 해서 뒤풀이 장소인 삼겹살 집에 갔더니 다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한껏 들떠 있는 게 느껴졌다. 얇디 얇은 냉동 삼겹살 집을 가득 채운 스태프들 대부분이 임 감독이 강사로 잠깐 몸 담은 적 있는 영화과에 재학 중인 아직 철 모르는 학생 들이어서 그런 듯 했다. 영화과 졸업 이후에 벌어질 일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잔뜩 취해있던 임 감독은 내가 조감독 제안을 거절 한 걸 두고 아직까지 삐져 있었다. 니깟것보다 동민이 훨씬 똑똑하고 일도 잘 하고 영화도 잘 찍을 거라며 한껏 추켜세워줬고 니가 없으니까 일이 더 잘 되더라며 니깟게 무슨 영화를 만드냐며 어디 얼마나 잘 되는 지 보겠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안 그래도 투자와 캐스팅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던 와중에 임 감독의 악담까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저 대박 기원 한다며 헤헤 거리다가 삼겹살집에서 먼저 나와 버렸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마도 ‘유언’의 쫑파티 날이 흥행 실패 이후 죽기 전까지 중에선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야심차게 가족들 돈까지 끌어모아 영화를 만들었지만 해외 영화제 수상에 모조리 실패하고 배급사를 구하지 못해 또 다시 가족들 돈으로 영화를 극장에 걸었지만 흥행에도 실패했다. 개봉관을 몇 군데 잡지도 못했고 무대인사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으며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극장에서조차 조조와 심야에만 퐁당퐁당 상영을 이어가다 1주일을 못 버티고 간판이 내려간 것이다. 


그 때부터 사모님와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들었다. 사모님이 부모님에게 유산으로 받은 땅까지 팔아가며 제작비를 대줬는데 이게 무슨 민폐냐며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임 감독과의 재회는 ‘유언’의 흥행 실패 이후였다. 당시 나 역시 ‘꼴리는 영화’로 데뷔와 동시에 폭망해버리는 바람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신세였다. 임 감독님이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동민의 연락을 받고 임 감독 집 근처 호프집으로 갔더니 임 감독은 이미 만취 상태였다. 


자기가 보고 싶어한다고 해서 온 건데 임 감독은 나 따위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동민만 바라보며 “너 따위가 무슨 감독을 하겠다는 거냐! 니가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그 딴 걸 시나리오라고 썼냐?”고 폭언을 퍼붓는 중이었다. 잔뜩 쫄아 있는 동민은 마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 자리엔 지금의 밀리언 필름 기획 팀장 석소연도 있었다. 


내가 임 감독의 조감독이던 시절 스크립터였던 석 팀장은 임 감독의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임 감독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석 팀장과는 임 감독의 조감독과 스크립터 시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 완전히 헤어진 사이여서 예고 없이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다음 타겟은 나였다. 임 감독은 석 팀장이 따라준 소주를 원샷한 후 나를 노려보며 “아이고.. 감독님 오셨어요? 그런데 감독님 데뷔작이 폭망하는 바람에 제작사도 망했다면서요?”라고 비웃어댔다. ‘꼴리는 영화’ 제작사 바람필름 얘기다. 공교롭게도 내 영화가 창립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고 바람필름 방 대표는 신불자 신세로 전락 후 지금까지도 연락두절 소재불명 상태다.


나도 이제 감독인데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아 잠깐 버럭 하려다 너도 폭망 나도 폭망ㅋ 폭망 감독 둘이서 이게 뭐 하는 시츄에이션인지 자괴감이 들어 꾹 참아 넘겼다. “헤헤 그렇게 됐네요. 부끄럽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실실 웃어 넘기자 석 팀장은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임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석소연 너 이 놈아! 지금 가면 끝이야. 다신 나 못 볼 줄 알아!” 


임 감독이 돼지 멱 따는 소리로 꽥꽥 외쳤지만 석 팀장은 너 따위에겐 아무련 미련 없다는 기세로 쿨하게 가게에서 나가버렸다. 이렇게 석 팀장이 가 버리면 남은 우리가 너무 괴로워질 것 같아 황급히 따라 나갔는데 석 팀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야?’라고 카톡을 보냈지만 읽기만 하고 답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임 감독은 석 팀장이 떠나 버린 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는지 동민을 향해 분노에 찬 뒷담화를 퍼붓고 있었다. 


“분명 남자 만나러 갔을 꺼야. 남자 없인 못 사는 년이야 저거.. 내가 관상을 보면 알아.”

“에이.. 감독님 요즘 그런 말 하시면 큰 일 나요. 감독님은 공인이시잖아요.”


동민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속삭이자 임 감독은 더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뭐 이 새끼야? 너 쟤랑 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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