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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티처 Jan 06. 2025

선생님, 엄마가 되어 주세요.

점심시간 소동


 점심급식을 먹고 난 후의 놀이시간은 하루의 전반전이 끝난 하프타임과 같다. 전반전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 후반전에 써야 할 전략 모색, 그리고 숨 고르기.

 그날도 점심 후, 잠시 숨을 고르면서 교실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어렴풋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순간 느낌이 싸했다. 교직 20년 짬밥에 이 느낌은 틀릴 리 없다!


 "얘들아,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아니요~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친구들끼리 블록놀이 하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

 '아니야.. 어디선가 소리가 나...'


 소리를 찾아 복도로 나가본다. 어라~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분명 이건 익숙한 울음이다! 몸이 소리를 따라 흘러간다. 흘러 흘러 소리를 마주한 곳은 바로 남자 화장실!


 "선생님~~ 선생님~~ 으앙~~~~~!!!!"


 다급하게 울면서 선생님을 찾는 울음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건 분명 민호다!!!


 "민호야~ 왜 그래? 선생님, 들어가도 돼?"

 "으앙~~~~~!!!!"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다급해서 남자 화장실이지만 아이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니, 민호가 바지에 실례를 하고 화장실에 앉은 채로 점심 먹은 것을 다 토하고 혼자서 울고 있었다. 너무 급해서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모르고 울면서 선생님만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민호가 많이 놀랐겠구나. 선생님이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고 부랴부랴 처치를 해주었다. 아이 얼굴에 아직도 놀란 흔적이 역력했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배가 많이 아팠어? 민호 힘들었겠다. 엄마한테 전화해 볼게. 걱정하지 마."


 다행히 바지가 젖지 않아 잘 마무리하고 아이를 교실로 데려 왔다. 그리고 민호 어머니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민호가 오늘 배가 많이 아픈지 설사도 하고 토도 해서 많이 놀랐어요. 지금 처치하고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제가 지금 일하고 있어서 바로 나갈 수가 없어요. 사장님께 여쭤보고 전화드릴게요."

 "네, 어머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워킹맘의 마음이라면 나도 잘 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수업을 그만두고 갈 수가 없었던 숱한 상황들. 마음 조리며 일하던 날들... 아마 민호 어머니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애달팠을까. 누구를 위해 일하는 건지, 돈을 벌기 위해 자식을 이렇게 팽개쳐야 하는 건지,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데 왜 매일 힘든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안쓰러움에 동요되어 아이를 보살핀다.


 다행히 사장님 허락을 받고 어머니께서 곧 민호를 데리러 오셨다. 민호는 어느새 환한 얼굴이 되어서 어머니품에 안겨 병원으로 갔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해마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만났지만 점점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부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도 예전보다 더 선생님의 관심을 요구한다. 나를 더 바라봐 주기를, 나를 더 살펴 주기를 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있고,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며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선생님을 어려워하기보다는 엄마처럼 의지하고 도움을 요구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크다. 이제 초등학교도 돌봄을 해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인기 있는 선생님은 이제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잘 챙겨주는 선생님이다. 이제 공부는 그다음 문제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했던 부모역할이 선생님에게로 많이 전이되었다. 맞벌이가 아니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 부모님들이 바쁘기 때문이다. 아이들 식습관, 젓가락사용, 배변훈련, 정리정돈, 안전교육, 친구관계 대처법 등 학교생활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 저출산문제가 우리나라 미래의 큰 위험요소로 인식되면서 여러 가지 저출산대책이 시행되고 있다. 국가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공공기관에서 키워 주고 돌보아 주는 정책을 펴면서 엄마아빠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봄정책으로 초등학교에서도 온종일 돌봄을 추진하는 중이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유급 육아휴직정책을 마련하여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고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마음 놓고 가족의 사랑을 느낄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자리를 마련해야 경제가 돌아가고 아이는 낳아야 하니 부모도 아이도 힘들어지는 대책에 맞추어 울며 겨자 먹기로 힘든 부모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이 허전하다. 사랑받고자 함은 본능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더 외부인의 관심을 원한다. 선생님에게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노곤한 부모의 삶이지만 잠시 여유를 갖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자. 아이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며 놀아주자. 좋은 옷, 잘 차려진 음식보다 마음 채우기가 먼저다. 아이들이 그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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