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Sternstunde)
“지금 만개했는데 좀 있으면 금방 다 떨어지지 않을까? 개화기가 짧아서.”
친구가 실시간으로 제주의 금목서 현황을 생중계해 줬다.
“밖에 봤더니 2~3일이면 질 거 같아. 꽃이 많이 시들은 게, 내년에 와야겠네. 향기가 죽이니까.”
수요일에는 꽃이 다 지고 향기도 사라질 것 같으니 내년에나 오라는 거다.
별수 없었다. 금목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월요일에 연가를 내고 바로 제주로 떠났다.
고등학생 때 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그루누이는 후각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체취도 지니지 않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고, 향기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복어 요리의 맛을 두고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라고 했다. 하물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궁극적인 향이란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향에 관한 남다른 능력은 없지만, 특별한 장래 희망도 없었던 학창 시절에는 조향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향기가 죽인다”니. 얼마나 좋은 향기일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우선 인터넷으로 금목서가 어디에 많은지 조사했다. 제주맘까페에서 천제연 정자 근처에 큰 금목서가 있다는 글을 봤다. 제주에서는 금목서 향이 만 리를 갈 정도로 짙다는 의미로 만리향이라고 불렸다.
처음으로 여행에서 향의 세계와 조우한 건 지난가을 부산이었다. 아난티 코브에서 맡았던 기품 있고 은은한 은목서 향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여태껏 맡은 그 어떤 향기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친구들과 당일치기 부산 여행을 갔을 때다. 걷는 걸 좋아해서 송정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해동용궁사를 거쳐 기장 아난티에 도착했다. 야외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부산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입구 쪽으로 나가는데, 청량한 바닷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날아 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은목서인가? 하얗고 별을 닮은 꽃잎에서는 이제껏 맡아보지 못한 매력적인 향이 흘러나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한 번이라도 더 맡아보려고 심호흡하며 향기를 내 안에 담았다. 은빛 내음의 여운은 천천히, 하지만 깊숙이 스며들었다. 은목서의 꽃말은 ‘유혹, 편애, 달콤한 사랑’. 매혹적이고 편애받기 충분한 달달하고 품위 있는 내음이었다. 그 후에도 은목서 향이 생각나는 날에는 친구 결혼식 핑계로 부산에 들렀다. 누구는 인생샷 찍으러 여행을 다니지만, 나는 인생‘향’을 다시 만나러 갔다. 은목서 나무가 제일 몰려 있는 바위 위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향을 음미하며 내가 만든 첫 포토에세이 책 『행복의 진수』 편집 작업을 했다. 내게 은목서는 ‘행복의 향기’였다.
그런데 금목서는 은목서보다 더 좋다고? 그럼 못 참지. ‘금목서’라는 단어는 겨울방학의 노래 <이브나>에서 처음 들어봤다. 찾아보니 그렇게 향이 좋다고 했다. 추위에 약해 남쪽 지방에서만 피는 꽃이라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식물이었다. ‘별의 순간(Sternstunde)’이라는 말이 있다.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행동 혹은 사건을 은유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시점이 바로 ‘별의 순간’이었다. 한 곡의 노래가 나를 제주도로 날려 보냈다. 초밥 먹으러 도쿄는 못 가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향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제주도 정도는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천제연 폭포를 지나 선임교를 중간쯤 건너는 순간,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가 내 결정에 확신을 줬다. 멀리서 주황색 별들이 마구마구 자태를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귤빛 은하수였다. 이거였구나. 샤넬 넘버 5의 재료로 쓰인다고 알려진 금목서의 향이.
금목서 나무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후 내 한껏 향을 음미했다. 상상만 하던 주홍빛 무릉도원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바람에 날려 금목서꽃들이 우수수 근처 분수대로 떨어졌다. 자황색 작은 꽃들은 나무에서도, 물 위에서도 여전히 별이었다. 금목서의 꽃말은 ‘당신의 마음을 끌다.’ 나도 홀렸다.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동(冬)목서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