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함께 걷는 길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2024년 3월 1일에 개교한 J초등학교. 그곳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가사다. 5월 3일 개교식 때 두 달간의 교육활동 사진 영상에 TWS(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린이날 기념을 겸해 체육관에 모인 수백 명의 초딩들이 떼창하는 모습은 축제와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장관이었고 감개무량했다. 우리 학교가 어떤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개교했는지, 이 아이들은 알까? 단순히 새로운 건물이 세워진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열정이 녹아든 결과였다. 노고가 담긴 행복한 꿈의 배움터. 깊은 배움과 넓은 마음으로 함께 크는 행복 교육. J초등학교의 시작이다.
J초 개교 전, 2023년 인근 초등학교의 재학생은 1,481명이었다. 전라남도 신안군 전체인 21개 초등학교, 708명 초등학생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G 시에서 가장 학생 수를 자랑하는 학교였다. 이런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우리 학교다.
원래 개교는 23년 9월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사 지연으로 다음 해 3월에 학교 문을 열 수 있었다. 3월에 개교한다고 3월 1일에 모든 준비가 되어 있고 몸만 들어간 건 아니다. 24년 1월 1일. 아무것도 없는 빈 건물에 행정실 공무원 5명과 교무실 행정실무사 1명이 발령 났다. 첫 출근은 설립사무교인 근처 학교로 했다. 설립사무교 실장님께 간단한 인수인계를 받고 오후엔 J초로 갔다.
설렘과 기대를 잔뜩 품고 온 학교엔, 건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없었다. 아니 변기가 있기는 했다. 물이 안 내려가서 그렇지. 겨울이라 동파 방지를 위해 급수를 막아뒀다. 그래서인지 공사 작업자가 싼 똥이 그대로 있는 변기도 있었다. 이런 변이 있나! 며칠간 화장실을 한번 가려면 교문을 통과해서 학교 옆 현장사무실 건물 신세를 져야 했다. 하수시설은 정말 축복받은 문명의 이기였다. 겨울방학이라 급식도 안 해서 학교 앞 함바집에서 점심을 사 먹었다. 음식들이 짰다. 짜도 너무 짰다. 개교 후 건강하고 균형 잡힌 저나트륨 급식을 먹으며 ‘역시 난 점심 먹으려고 학교 오는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1월 2일 첫 출근 후, 내 당면 과제는 ‘직원들 급여 지급’이었다. 8일이 마감날인데 인증서부터 권한까지 아무것도 주어진 게 없었다. 부랴부랴 지원청에 문의해서 필요한 자료를 받고 수십 통의 통화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메신저 대화가 오간 후에 무사히 급여 작업을 마감할 수 있었다.
내 담당 업무가 ‘급여’와 ‘물품’이라 빈 교실을 채워 넣을 기자재들도 2월 말까지 미친 듯이 주문했다. 학교 법인카드 한도가 한 달에 1억이었는데 이것도 모자라서 선결제 후 주문을 이어가기도 했다. 다행히 3월에 개교하는 학교는 우리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전체 신설 학교 담당자들 업무 메신저 단체방에 초대받았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개교까지 험난한 과정을 함께했다.
신설 학교라고 어려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전임자들이 싸질러 놓은 똥이 없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내가 실수한 건 당연히 내가 수습하지만 남의 잘못 뒤치다꺼리하는 건 정말 빡치거든….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양연의 시다. 해방 직후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북 분열을 막기 위해 김구 선생님이 북한에 갈 때 인용했던 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임자가 한 실수는 없지만, 내가 전임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다행히 그 길은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었다. 신설 학교 경험이 있는 솔선수범의 화신이자, 기계설비까지 마스터한 실장님. 깔끔 꼼꼼 정리의 여신 계장님.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이상적인 관리자며, 장학사 출신의 능력자 교장 선생님까지. 모두가 경력과 인품을 겸비한 든든한 본보기다. 'J호'라는 배의 선장과 조타장, 항해사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사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일보다는 인간관계다. 아무리 처음 해보고 까다로운 일이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같이 일하는 사람도 좋고, 밥도 맛있고, 집에서도 가까운 우리 학교. 일복도 넘치지만, 인복도 많은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출근이 설렌다.
J초등학교야!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내일 또 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