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다 보니 나 되었다
동네에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도서관에 갔겠지만
사무실이 없는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카페의 기준은 단 하나,
가격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고 싶고
다양한 메뉴도 마셔보고 싶지만
나는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음료는
아메리카노밖에 없었다.
한 번 카페에 가면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했기에
늘 카페 사장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 결과 한 카페에 오래 정착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바로 앞에 있던 프랜차이즈 카페에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카페인데,
나는 왜 여기를 외면하고 다른 카페에 갔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는 살짝 중저가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네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카페가 없어졌을 때 나는
그 중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운터로 (그때는 키오스크가 없었다)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사장님은 처음 보는 손님이라며
나에게 호기심을 가져줬고,
커피를 만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노출하게 되었다.
(이때가 2번째 책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위해 작업할 때이다.)
사장님은 작가를 처음 본다며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고
내가 자리를 찾아 앉자 그걸 지켜본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나와 내 앞에 앉으셨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질문을 마구 던져주셨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자기 때문에 글을 못 쓴 게 아니냐며
미안해하며 자리를 떠나 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길
“글을 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와서 작업하세요.”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말만 저렇게 하신 게 아니라
실제로 내가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새로운 음료를 갖다 주시며
내가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내가 시킨 음료는 아아 한 잔이었지만
내가 카페에서 즐긴 음료는 평균 3잔이었다.
나는 그렇게 카페 단골이 되었고,
카페 한 자리는 나의 자리가 되었다.
카페 사장님은 내가 그 카페에 갈 때마다
늘 반겨주셨고,
가끔 내 앞자리에 앉으셔서 대화도 나눴으며
내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를 귀신같이 아시고
새로운 음료를 가져다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나의 경제 수준은
저가 카페에 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
중저가 카페에 매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그때 어느 단체에서 일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20만 원,
다른 한 단체에서 받는 돈은
3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통신비 내고, 교통비 내고, 식비 내고 나면
내 통장에는 많은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중저가 카페에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그 카페에 갈 수 없게 되었고
카페 앞을 지나가면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 한 달,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카페 사장님께 미안해졌고,
미안함이 커질수록 카페는
더욱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단골인데 왠지 다른 카페 가거나
자주 안 가면 미안해지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뭔지 다들 알 것으로 생각한다.
이래서 단골이 좋지만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사람보다
키오스크가 더 좋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난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지만
부모님을 뵙기 위해 그 동네에 갈 때면
여전히 존재하는 그 카페를 보며
여전히 사장님께 미안할 뿐이다.
과연, 사장님은 갑자기
내가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아실까?
사장님은 자신이 나에게 뭔가 실수를 해서
내가 안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사장님께 가장 미안한 건 그 사장님께
내 형편이 어떤지 말씀드렸다면
58,000% 그냥 음료를 줄 테니
마음껏 언제든지 오라고 했을 사람이었다는 것.
그저 내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아서 차마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중저가 카페인 그곳에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내 마음이 형편없어서 쉽게 갈 수 없게 된 곳.
쉽지 않겠지만 용기 내어 그곳에 가봐야겠지?
그곳에서 순수하게 글을 쓰던 내 모습을 되찾기 위해,
그곳에서 순순하게 글을 쓰던 내 모습을 응원하던 사장님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