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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피커 안작가 Nov 26. 2023

사장님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나쁜 놈이었다

나대다 보니 나 되었다


동네에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도서관에 갔겠지만

사무실이 없는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카페의 기준은 단 하나,

가격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고 싶고

다양한 메뉴도 마셔보고 싶지만

나는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음료는

아메리카노밖에 없었다.


한 번 카페에 가면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했기에

늘 카페 사장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 결과 한 카페에 오래 정착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바로 앞에 있던 프랜차이즈 카페에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카페인데,

나는 왜 여기를 외면하고 다른 카페에 갔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는 살짝 중저가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네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카페가 없어졌을 때 나는

그 중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운터로 (그때는 키오스크가 없었다)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사장님은 처음 보는 손님이라며

나에게 호기심을 가져줬고,

커피를 만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노출하게 되었다.

(이때가 2번째 책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위해 작업할 때이다.)


사장님은 작가를 처음 본다며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고

내가 자리를 찾아 앉자 그걸 지켜본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나와 내 앞에 앉으셨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질문을 마구 던져주셨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자기 때문에 글을 못 쓴 게 아니냐며

미안해하며 자리를 떠나 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길

“글을 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와서 작업하세요.”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말만 저렇게 하신 게 아니라

실제로 내가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새로운 음료를 갖다 주시며

내가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내가 시킨 음료는 아아 한 잔이었지만

내가 카페에서 즐긴 음료는 평균 3잔이었다.


나는 그렇게 카페 단골이 되었고,

카페 한 자리는 나의 자리가 되었다.

카페 사장님은 내가 그 카페에 갈 때마다

늘 반겨주셨고,

가끔 내 앞자리에 앉으셔서 대화도 나눴으며

내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를 귀신같이 아시고

새로운 음료를 가져다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나의 경제 수준은

저가 카페에 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

중저가 카페에 매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그때 어느 단체에서 일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20만 원,

다른 한 단체에서 받는 돈은

3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통신비 내고, 교통비 내고, 식비 내고 나면

내 통장에는 많은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중저가 카페에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그 카페에 갈 수 없게 되었고

카페 앞을 지나가면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 한 달,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카페 사장님께 미안해졌고,

미안함이 커질수록 카페는

더욱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단골인데 왠지 다른 카페 가거나

자주 안 가면 미안해지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뭔지 다들 알 것으로 생각한다.

이래서 단골이 좋지만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사람보다

키오스크가 더 좋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난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지만

부모님을 뵙기 위해 그 동네에 갈 때면

여전히 존재하는 그 카페를 보며

여전히 사장님께 미안할 뿐이다.



과연, 사장님은 갑자기

내가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아실까?

사장님은 자신이 나에게 뭔가 실수를 해서

내가 안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사장님께 가장 미안한 건 그 사장님께

내 형편이 어떤지 말씀드렸다면

58,000% 그냥 음료를 줄 테니

마음껏 언제든지 오라고 했을 사람이었다는 것.

그저 내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아서 차마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중저가 카페인 그곳에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내 마음이 형편없어서 쉽게 갈 수 없게 된 곳.


쉽지 않겠지만 용기 내어 그곳에 가봐야겠지?

그곳에서 순수하게 글을 쓰던 내 모습을 되찾기 위해,

그곳에서 순순하게 글을 쓰던 내 모습을 응원하던 사장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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