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들과 함께했던 서울 나들이

아이들의 가출 모의

by 마들렌

보호시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입소한 아이들은 대부분 처음에 와서 적응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의 만남은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었고, 하룻밤을 잘 넘기는지 생활담당 선생님 외 모두가 무심한 듯하면서도 예의주시 하면서 살펴보는 게 보통이다.

다행히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고집을 피웠고, 집을 나가겠다고 아우성을 치곤 하였다.


너, 갈 데는 있니?

"... 아니요." "그럼, 그냥 우리랑 살아. 네가 갈 곳이 생기면 그때는 보내줄게."

"..." 아이는 조금은 억울한 듯 눈썹을 실룩실룩거리지만, 이내 진정이 되었고,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곤 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못 나간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방임 속에서 학교를 가도, 집에 와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아이들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멋대로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피해를 입고 신고가 되어서 보호시설에 온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규칙적인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도 '나를 좀 봐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는 피워보지 못했던 고집과 어리광을 여기서 피워보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선생님들에게 말해 놓았다.


일단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들어주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양한 연령대에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연령에 맞는 서비스가 지원이 된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비밀 전학을 시켜서 학교에 보내고, 성인인 연령대의 입소자들은 일자리를 연결해 주고 나니 집이 좀 조용해졌다. 각자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으니까 그런 것이다.


여름이 다가오자 휴가 및 프로그램 계획을 세우면서, 입소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서울 나들이]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날짜를 잡고, 방문지를 선택하고, 교통편 등을 예약하느라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학교는 방학기간이라 상관없지만, 일터에 가는 입소자들에게는 회사에 미리 휴가를 신청하도록 안내를 해 주었다.


D-day가 가까워 오자 긴장이 되었다.

다수의 지적장애인 아이들을 데리고 복잡한 서울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녀야 하니, 신경 쓸 것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사무실에 늦게 까지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일터에 다니는 아이 한 명이 조용히 내려왔다.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팀장님, 00 이와 @@이가 서울의 터미널에 도착하면 도망갈 거라고 지들끼리 계획을 잡고 있어요!"라고 속삭인다.

나는 놀라지 않은 척, 알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올려 보냈다.


드디어 그날, 모든 준비를 하고 고속버스터미널로 출발하였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아이들과 동행 직원들의 머리수를 세면서 조금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도 신경 쓰이는 상황에서 다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자, 앞장을 서시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

지하철표사는법.jpg

[지하철 표 사는 법 -스스로 해보기]


나는 며칠 전에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온통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가, 먼저 아이들에게 앞장서라고 하자, 지하철 방향으로 길을 나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표정이 비장하기까지 하여 속으로 깜짝 놀랐다!


집 안에서야 무슨 말인들 못하랴!

사람들이 푹 적대는 도심 한 폭 판에 떨어진 아이들은, 특히 가출을 논하던 아이들은 한껏 긴장을 하여 행여나 일행에서 뒤처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서로의 손을 꼭 잡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동료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지적 장애인이 대다수인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활동 학습] 차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지하철을 타 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망설였지만, 입구를 통과하면 쾌재를 부르기도 하는 모습이 남들이 보았을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이쁘기만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순진했고 착했다. 그리고 들떠 있었다.
내가 당직근무를 할 때에, 역사 이야기를 게임처럼 진행한 적이 자주 있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그 프로그램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퀴즈놀이를 하면서 익힌 역사 이야기와 곳곳에 있는 문화재와 명물들의 이름들이 생각보다 많이 각인되어 있었고,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지치면 쉬어갔고, 맛있는 식사를 할 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경복궁.jpg [여름의 경복궁]


경회루.jpg [경회루]


규칙적인 생활을 힘들어하던 몇몇의 아이들은 기관을, '감옥'이라고 표현하여 나를 비롯한 동료 직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가보고 싶은 장소를 정하면서 진짜 감옥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서대문 형무소]에도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문화 해설사를 통해서,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적인 근거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특히 유관순 열사가 어떻게 고문을 받다가 순국하였는지 등,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감옥'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했던 나들이는 전원이 안전하게 귀원하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었고, 한동안은 [서울 나들이]를 이야깃거리로 삼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서대문 형무소]




지적장애인은 태생적 장애로 일생동안 누군가의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자립'은 정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기능이 좋고, 사회훈련이 잘 된 경우에는 그룹홈에 나가서 생활하기도 하지만, 비장애인들처럼 모든 것을 책임지고 알아서 스스로 생활하는 것은 어렵다.


장애인의 자립생활 또는 독립생활은 지능의 문제가 없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서는 가능할 수 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지향하고 있지만,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입소 후, 한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돈을 벌어 보고 싶다고 하여 일자리를 연결해 주었더니,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받는 급여를 부지런히 저축하도록 훈련도 시키고, 가계부(금전출납부) 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아이는 친척이 있는 곳 가까이에 가서 살기를 원하였고, 우리는 바리바리 짐을 챙겨서 다른 지역에 있는 그룹홈으로 전원을 시켰다. '잘 살아야 한다'라고 다독이고 나서 돌아설 때는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케이스였다.


20대 초반의 아이는 지적장애 3급이었지만, 기억력 하나는 끝내 주는 아이였고, 훈련이 잘 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서울지역의 그롭 홈 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아이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본인에게 맡겨두었더니, 몇 달 만에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탕진해 버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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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고, 이 선생이 미쳤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해지는 사건이었다.


잘하는 것 같지만, 지도와 관찰을 느슨하게 한다면, 아이는 금방 방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복적인 학습과 훈련 그리고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 지적장애인의 사회화, 자립지원이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장애인복지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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