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disord)
미국의 중부지역에 사는 내 어린 조카가 출생 후, 처음으로 외가방문차 한국에 왔던 적이 있었다.
3살짜리 작고 여린 사내아이는 긴 여행에 지쳐있었고 예민해 보였다.
위로 터울이 많은 2명의 형들과 뭔가... 달라 보였다.
뭐가 다르지?
외가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이 아이의 모든 것이 신경이 쓰였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나지막한 장식장이 있고 그 위에는 작은 어항이 놓여 있었다.
집안 공기가 건조하게 느껴져서 금붕어 몇 마리를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꼬맹이가 여독이 조금 풀리는지 이 어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높이도 적당히 맞아서 처음엔 보기만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손을 넣어 과감히 휘젓기 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뭐 하는 거야!"
방에서 나오던 내 레이더에 딱 걸리자 후다닥 엄마(언니)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아이... 야야야!!!
이 녀석이 오고 나서 금붕어들의 수난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여유롭게 헤엄치던 금붕어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꼬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아주 예민했다.
낯선 곳에 가면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았고, 짜증과 울음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편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방안을 이리저리 다닐 때는 발끝(발 뒤꿈치를 세우고)으로 걸어 다녔다. 언니는, "발레리노가 되려고 하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한 번도 아니고, 머무르는 3달 내내 발끝으로 다니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자 [母子]가 짐을 싸서 우리 집 현관문을 나가자마자 그동안 사라졌던 금붕어들이 다시 헤엄을 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ㅎㅎㅎㅎ...
미국으로 돌아가는 언니에게, 집에 가거든 아이를 유치원( kindergarten)에 보낼 것을 권하였다.
언니는 의아해하고 언짢아했지만, 2주 뒤에 전화가 와서 슬픈 목소리로 하소연하였다.
"네 말이 맞았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폐(Autism spectrum disord) 경계선이라고 해.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하더라."라고 하며 길게 통화를 하였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특히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가까이서 보면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제안하였던 것이다. 언니는 가자 마자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고, 유치원 선생으로부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것 같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 선생은 시카고에 이름 있는 병원의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검사를 해 보도록 권유하였고, 자폐 경계선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된 것이다.
조카는 고기능 자폐에 속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지능도 뛰어나지만, 사회적 상호작용(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네 가족은 큰 근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의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조카가 학교에 입학한 후, 언니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조카를 위해 보조교사를 신청하기도 하였다. 좀 더 가까이에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고,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행동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지만, 수시로 감정이 폭발하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뒤, 2013년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내 어린 조카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여 미국의 언니 집을 방문하였다. 유아 때 보고, 한참 만에 만난 아이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한 번씩 고집을 피울 때면, 체구가 작은 언니가 감당하기엔 버거워 보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아이의 교육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책을 찾아보았고, 언니의 권유로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자폐 증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려고 애를 쓰면서 언니의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기도 하였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다양한 원인(유전적 요인, 뇌 발달상의 문제, 임신 중에 바이러스 감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 의한 발생 등)에 의해 발생하므로, 원인 질환에 따라 근원적인 치료 방법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적, 언어적 발달을 촉진시키며, 부적응 행동(과잉 활동, 상동 행동, 자해 행동, 공격성 등)을 최소화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하여 아이의 상태에 맞는 특수 교육, 언어 치료, 행동 치료 등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적응 행동은 증상에 따라 약물 치료도 시행할 수 있다.
나는 언니와 형부에게 이런 증상이 아마 가족력 안에도 조금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조심스레 하였다. 그러자 형부가 후다닥 사라지더니, 오래된 큰 두루마리 하나를 가지고 와서 펼쳐 보이는데, 그 종이에는 학교 다닐 때 그린 "가계도(a family tree)"가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이것을 여태 가지고 있다니... 놀라웠다.
가계도를 보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친척들의 행동, 특징을 하나하나씩 맞추어 보더니,... 아이에게도 비슷한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아이가 자라고 덩치가 커지는 동안, 엄마 아빠는 점점 나이 들어 기력이 떨어지므로 아이를 감당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가끔씩 감정조절이 안되어 소리 지르고 발을 쿵쿵 구르는 행동 같은 것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이의 감정조절 능력 향상과 정서적 순화를 위해 음악활동을 해 보도록 권유하였고, 6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물론 아이도 좋아하고 원해서 하는 것이다.
아이를 만나러 2번이나 장거리 여행을 하였더니,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두 번째 만나고 헤어질 때는 아쉬운 마음도 보이고, 눈물도 흘리고, 가지 말라고 꼭 껴안아 주기도 하면서 제법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가끔씩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언제 올 거냐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이제 17살이 된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산은 많을 것이다. 그동안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잘 지내왔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성인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주변인들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존중이 꼭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