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고 불러보고 싶다

그리운 내 어머니

by 마들렌

5월, 가정의 달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가정의 달, 계절의 여왕, 신록이 우거지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외롭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더욱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사무실에서 동료가 모처럼 걸려온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바쁘다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kindly(친절하게, 호의적으로, 상냥하게 등)" 하고 나지막이 외쳤다.

통화를 하던 동료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마무리는 상냥하게 하는 듯하였다.

통화를 끝낸 그 동료는,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그렇게 했네요. 내가 많이 퉁명스럽게 말하던가요?" 하며 물었다.

"난 자기가 부러워~"라고 말하자, 그 동료는 앞으로 엄마한테 더 잘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며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정말 건강하셨던 어머닌데, '내가 감기에 걸렸다'라고 하신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보조금 신청서를 작성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월의 몹시 추웠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걸려온 전화기 속 너머의 언니는, '엄마가 좀 편찮으시다, 그러니까 택시를 타고 내려오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뭔 소리야? 어제도 통화했는데??? 그리고 길이 어딘데 택시를 타고 오라는 거야?

통화를 끝내 놓고도 왠지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결재를 올렸다. 아무래도 고향으로 내려가 봐야겠다고 하면서 늦은 퇴근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무거운 느낌을 애써 부정하며 아파트로 와서는...... 나도 모르게... 검은색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난 후 운전대를 잡았다. 늦은 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수년 전 아버지가 떠나실 때, 그 선몽(예지몽)을 떠올리며, 아니기를 수도 없이 바랬다. 긴 터널 안을 달릴 때, "안전 조심! 안전 조심"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라는 음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멜로디가 귓가를 때리고 있을 때, 내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도착한 집에는 환하게 불만 켜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그토록 바랬는데... 부정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영안실에서 어제저녁에 통화했던 내 어머니의 차가운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살고 싶어 하셨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였던 것인데...


자식이 6명인데 아무도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다. 외국에 사는 2명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자식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정신없이 일 하느라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나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예지몽도 꾸지 못했고,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자책해다. 뭐가 그리 바빴냐고 하면서... 나의 가슴을 수도 없이 내리쳤다.


어머니는 당신의 생신날 돌아가셨다.

생신 날이 평일이라, 바쁜 자식들은 며칠 당겨서 일요일에 생신파티를 해 드렸지만, 나는 일 때문에 가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오는 주말에 내려가겠다고 통화하였던 것이다. 생신날 오전에 어머니와 통화가 안되자, 오빠는 근처에 사는 외사촌 형에게 어머니에게 들러달라고 부탁하였고, 외사촌 오빠가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하고 연락을 하여 병원으로 모셨지만, 이미 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너무도 건강하셨는데... 나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어머니가 건강하고 기쁘게, 그리고 부지런하게 일하시며 생활하셨기 때문에 팔순, 구순까지 사실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고, 그렇게 자식들 곁을 떠나가셨다.

나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일터가 있는 도시로 돌아왔다.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펑펑 울었다. 장례식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서 '곡을 하지 않는다'라고 둘째 언니에게 타박을 받았었는데, 참았던 게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울고 싶을 땐 소리 내서 울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참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았다.


장례식 후 마음을 추스른 오빠와 남동생은, 어머니가 사시던 아파트의 이웃에게 인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의 폰에 수없이 찍혀 있는 번호의 주인을 찾아갔다고 하였다. '이렇게 전화만 하지 말고, 한 번만이라도 우리 어머니를 찾아와 주었더라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분은 어머니의 베프(best friend)이며, 꼭두새벽에도 어머니를 찾아오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날은 왜 오지 않으셨을까?


그분이 말씀하셨다. 새벽에 을 꾸었는데, 여느 때와 같이 어머니와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떤 안경 쓴 남자가 와서, "이제 가자!" 하고 말하자, 내 어머니가 두말없이 일어나서 그 남자를 따라나서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깼는데, 왠지 마음이 안 좋았다고 하셨다. 평상 시라면 언제라도 찾아갔었는데, 그날은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오빠와 남동생은 어머니의 베프이셨던 분이 말씀해 주신 남자 어른의 생김새를 유추해 보니,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 곁을 떠나 가신 것 같았다. 살아생전에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소원하셨고, 죽을 때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자는 잠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분이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뜻대로 떠나가셨지만, 남은 자식들은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을 간직해야 했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절에 다니던 언니가 49재를 제안하였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재를 지낼 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생신날 돌아가신 것은 천수를 다 누리고 가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한 번은 죽는다.

태어나는 시간은 짐작할 수 있지만, 죽는 시간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죽음의 시간을 알 수 없기에 아등바등 살다가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신께서 그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당장에라도 '귀천'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사이좋은 부녀관계는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보았다. 드라마 속에서나 말하던 그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생물학적 다리, 통로가 영영 사라져 버려서 나는 마치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많은 고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다. 30을 넘어서고 보니, 정말 시간은 쏜살 같이,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 날아가는 것 같다.


먼 기억 중에 한 가지가 떠오른다. 언젠가 책을 읽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내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인생은 행복하셨나요? "

라고 하자, 흥얼흥얼 하시는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내 자식들은 다 착했지. 남편 때문에 속이 썩기는 했지만, 자식들 때문에 속이 썩지는 않았어. 이 만하면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지."라고 하셨다.


내가 불효한 자식은 아니었지만, 떠나보내고 나니, 후회가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학식이 높은 사람은 아니셨지만, 다정하신 어머니, 친구 같은 어머니, 부지런하고 겸손하신 어머니, 자식이 정직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내 어머니이신 것이다.

인생의 조력자, 인생의 지표,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 그런 분이 어머니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내어 주고 희생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어머니 된 사람의 역할이고 숙명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당연시하면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하나 보이게 될 것이다. 짬을 내서 한 번이라도 더 어머니의 음성을 들어보고, 찾아뵙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고생하신 손도 한번 더 잡아 드리고, "사랑해요"라는 말에도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화 통화할 때도 함부로 대하지 말고, 다정하게~ 내 마음의 온기가 어머니에게 전해지도록 진심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한다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때가 되더라도 후회는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keyword
이전 02화지적장애인들과 함께했던 서울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