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와의 편치 않은 만남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7년 7개월을 수도자와 근무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도자이며 수도자로 구성된 직원들이라고 해야 하겠다. 2개의 기관을 거치면서 2개의 수도회 수녀님들을 만나보았다.
한 기관은 신규 기관으로 원장님이 사회복지현장에 처음 나오신 분이셨고, 작은 수도회지만 외국에 본원이 있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수도회라고 소개를 해 주셨다. 나도 수녀님과 근무한 것은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열심히 일 하였다. 원장님은 없는 살림에 후원금을 모으려고 주말에도 동분서주 다니시며 기관 홍보에 열을 올리셨고,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말씀하셨다.
"0 팀장, 나는 주말에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일하는데, 0 팀장은 쉬어도 되는 거야?"
서운하기까지 하였다. 잠자는 몇 시간 외에 나도 사무실 붙박이였는데,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기관 홍보를 할 때, 일반인(평신도)보다는 수도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교회 안에서의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감성적인 내용의 호소를 듣고 그래도 여유가 좀 있는 신자분들의 지갑이 열리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날이 조금씩 후원금이 불어나는 것을 확인하면서 기관의 안 살림을 사는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주무관청의 예산이 증액되지 않을 때에도 원장님의 급여는 계속 올렸고 직원의 급여는 깎는 처사에 나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열심히 일하였고, 타향살이하면서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 경우만은 아니었다. 수도회가 운영하는 다른 작은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인들은 수도회 다른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단다. 머리로는 이해를 한다고 해도,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가 MB정권이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유럽 선진국의 "잡 세어링(job sharing) "이라는 모델을 도입한 때였다.
잡세어링(Job Sharing)이란,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여러 사람이 함께 그 일을 나누어 처리하는 노동의 형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업장의 잉여 노동력이 30%라면 이들을 해고하는 대신 1인당 작업량을 30% 줄이면 인원을 감축하지 않고서도 동일한 감량 효과를 얻을 수가 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노동계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한 방식이기도 하다. 과거 독일의 폭스바겐 등 유럽의 제조업체들이 이러한 잡셰어링을 통해 대량실업 사태를 다소나마 진정시킨 사례가 있다(백과사전 참조).
또 다른 의미는, 기존 근로자들의 근무시간과 임금을 줄여 그만큼 고용을 확대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일자리를 늘리자는 얘기다. 잡셰어링은 직무를 쪼개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방식이고, 워크 세어링(Work Sharing)은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것으로 구분을 하기도 하지만, 통상 '일자리 나누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혼용된다. (2013 한국일보/지평선 논설 /5월 25일 < 공공부문 잡세어링> 부분 참조)
본질은 위와 같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공기업에서는 앞장서서 기관장의 급여는 계속 올렸고 사회초년생의 급여는 과감히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사회적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컸던 때였다.
분야는 다르지만,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수녀회는 오로지 본인들이 소속된 수도회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았다.
수도회마다 영성(靈性, spirituality) 이 다르다.
창립자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설립을 했는지, 어떤 수도생활을 지향하는지 등에 따라 수도자들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 활동 수도회인지, 관상 수도회 또는 봉쇄 수도회인지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교구와 수도회로 나누어지는데 본당의 신부님들은 대부분 교구 소속이고, 수도회에는 남자수도회 '수사', '수사 신부'가 있다. 여자 수도회는 '수녀'라고 호칭한다.
미사성제를 거행하는 신부(사제)님들을 성직자라고 말하며, 수도자(수사, 수녀)들은 봉헌 생활자라고 말한다.
그 외에 신자들을 평신도라고 한다. 이렇게 나누는 것은 계급의 의미가 아니라, 봉사적인(어떤 일을 담당하는지) 구별이다.
수도자가 되는 기준은 수도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보통 18세 이상 세례 받은 신자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수도회에 입회하여 평생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여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수도회 중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수도회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해 본 사람으로 자격 기준을 삼기도 한다. 입회자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수녀회는 입회 나이를 35세 이상으로 하거나 더 많은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40을 넘으면 자아[自我, ego]가 강해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나이가 어려서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하는 수녀님들 중에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한없이 순진하고 거짓 없는 사람도 있지만, 융통성 없이 고집불통에다가 자신밖에 모르고, 남의 말은 정말 안 듣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수도회, 특히 수녀님들에 대한 느낌을 말하라고 한다면, 고결함, 순고함, 엄숙하고, 깨끗하고, 품위 있고, 청빈하고, 근접할 수 없는 등 등의 이미지를 말하겠지만, 나는 너~무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생활을 봐 버려서... 물론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지금도 '수녀님'이라고 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분명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그런 수도자를 만나지 못하였다.
교리에서 말하는 성소[聖召]의 넓은 의미는,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완전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기억은 묻어 버리고 더 열심히 생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독거리게 되었다.
때로는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서 고해성사를 보아야 했고, 원로 신부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기도'는 출렁거리는 파도를 가라앉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