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위에 군림하려는 수도자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기관에 입사를 하였다.
그곳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이었는데 사무실에 일반직원이 나 한 명 밖에 없었다!
처음 왔을 때의 분위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사무실 입구 현관은 컴컴하였고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 만 감돌았다.
내가 오기 직전에 1명의 일반직원이 있었는데, 한 달 만에 도망가듯이 가버렸다고 하였다.
왜???
'있어보면 알겠지'하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침체된 기관의 이미지 쇄신과 사회복지시설 평가준비를 위해 투입된 경력자 직원이었다.
그동안의 나의 경험으로 이 기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었다.
며칠 동안 기관의 많은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수도자들만으로 구성된 곳. 잦은 소임 이동(인사이동)으로 사무실에 서류는 헐~빈 하였다. 있어야 하지만, 없는 서류가 너~무도 많았다. 그때그때 기록하고 작성해 두어야 할 문서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가일이 되기 전까지 만들어 내야 하는... 정말 답답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류가 많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하는 내게, 국장 수녀가 "잘난 체하지 마세요! 우리는 제대로 했지만, 서류가 분실되었을 뿐이에요!"라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잘난 체를 했나?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나마 원장 수녀님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나를 지지해주셨고, 자매 수녀들을 대신해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랜 시간 동안 수녀들만 살았던 공간에 평신도(일반인)가 팀장으로 들어오고 보니, 이곳 수녀들에게는 집이지만, 내게는 직장인 것을 구분 못해서 (혼란스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입사하는 날부터 퇴사하는 그날까지, 삐뚤어진 심성을 가진 수녀, 열등감에 빠져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수녀, 수도복이 마치도 권력인양 나를 깔아뭉개려는... 믿지 못할 상황에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상상도 안 되겠지만...
나는 이 혼란스러움을 감당하기 위해 본당 신부님께 면담을 청하였고, 그동안의 사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내가 제대로 보고,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인지를 확인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신부님은 이런저런 내용을 들으시고는 "진짜로? 정말로 그렇단 말인가요?"라고 되물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가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나요?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일반인들에게 직업이란, 생계를 위한 수단이며, 자기 발전과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현장이기도 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가 되는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많은 의미도 있겠지만.
수도자들이 '소임 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나는 해마다 새로운 수녀 신입직원을 맞아들였고, 신입직원 교육을 진행했다. 묵혀 놓았던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들고 사회복지현장에 처음 오는 분들이셨고,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몇 년을 지켜보았을 때 이분들에게 이곳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소임을 받았기 때문에 온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 기관이 수녀들 사이에는 힘든 곳(수녀원과 일터가 같이 있는 곳)이라고 소문난 곳이었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기피하는 장소라고 들었다.
어떤 수녀가 소임 이동을 하여 사무실에 왔다.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평신도인 내가 팀장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듯하였다. 왜냐하면, 다른 수녀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자신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오면 당연히 자신이 팀장이 될 줄 알고 온 것이었다.
나는 더 놀랐다.
현장 경력 하나도 없는 수녀(어제까지 옷방에서 바느질하던 수녀)가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에 놀랐고, 벌써부터 자리에 연연한다는 그런 사실에 놀란 것이다. 나이도 적은 그 신참 수녀는 한동안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지만, 나는 기다렸다. 답답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그 수녀는 무례하고 도도한 행동 때문에 원장수녀에게 자주 불려 가서 혼이 났고, 그럴 때면 한참 동안 사라져서 사무실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런 수녀 직원도 있었지만, 소임 온 날부터 가는 날까지 정말 열심히 일한 수녀님도 있었다. 문서 작업은 꽝이었지만, 생활서비스에는 최선을 다했던 직원으로 나를 편한 친구처럼 대해 주었던 수녀님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내었고, 대상자(client)들 앞에서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몇 년 동안 수많은 수녀가 오고 갔지만, 이런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사회복지 시설.기관 평가]준비를 하면서 나는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부패 기관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투명하고 건실한 기관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었는데...
반 이상의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정말 속이 상했고, 내가 왜 사회복지를 하나 싶은 생각에 몇 날 며칠 속앓이를 하고 밤잠을 설처야 했다.
짐작하건대 그동안 관청에서는 수도회에서 운영한다고 믿었고, 제대로 된 지도점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쌓일 대로 쌓인 것이다.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냉동고에 있는 유통기한이 1년도 넘은 식품을 확인하고 난 뒤, 버려야 한다고 설명하니, 주방 담당 수녀는 내게 "나쁜 년"이라고 말을 하며 눈을 흘기기도 하였다.
평가준비를 하는 1년 하고도 몇 달 동안 국장 수녀는 내게 히스테릭한 행동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준비과정에서 원장님으로부터 사회복지 경력이 적고, 자격증 급수도 낮아서 국장이 받을 수 있는 점수가 낮다고 하자 기분이 상해서 자신의 방에 들어 누워서 며칠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보통 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신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 버리는 것이다. 원장님은 한숨을 쉬면서 돌아서야만 했다.
나는 [사회복지 시설.기관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3년마다 기관의 업무 전반을 지표에 맞추어 1일도 아니고, 몇시간 만에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 서류만 보고 어떻게 365일 진행되는 서비스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진행하는 지도점검을 면밀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항상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언제든지 기관 방문을 하여 진행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시설이지만, 인센티브를 받을 만큼 좋은 성적도 받아 보았는데..., 이 기관처럼 없는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열등감'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어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열등감은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열등감은 자신을 병들게 하고, 타인에게도 상처를 준다고 말씀하셨다.
이 수녀는 나로 인하여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열등감이 분수같이 쏟아져 나와 수녀원 안에서도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기도 시간에도 나오지 않았고, 온통 신경질적으로 자매수녀들을 대했다고 하였다. 분원장 수녀가 무슨 일인가 싶어 불러서 면담을 해보니, 하소연처럼 쏟아내는 묵은 이야기가 몇 시간 동안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고 하였다. 수녀의 건강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내게 보인 행동을 원장 수녀로부터 전해 들은 분원장 수녀는 평가를 끝내고 휴가를 떠날 준비를 하는 나를 면담실로 불렀다.
평신도인 내가 분원장 수녀와 마주 앉을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위에는 수녀원 분원이고, 아래는 일터인 이곳에서 그 수녀의 수도자 답지 못한 행동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분원장은 한참 동안 수녀원 사정과 그 수녀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게 <사과의 마음>을 전해야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 자매의 부족한 모습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 봉투를 슬그머니 밀면서 받지 않았다.
그 봉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사과의 마음을 표현하고, 평가준비에 고생했다고 주는 선물(휴가비)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마음 한편이 불편하였다. 죄 없는 내가 죄인 취급받으면서 보낸 시간에 화가 났고, 지금이라도 제정신이 아닌 자매 수녀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수녀를 왜 사회복지현장에 배치하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봉투가 그동안에 내가 받은 심리정서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치유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돈봉투는 내밀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회 안에서도 경쟁은 계속된다고 어느 수녀님이 이야기해 주었다.
집이 있는 집인지 없는 집인지, 학력 차이도 물론 있고,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다가 입회하였는지에 따라서도... 학업성취도가 보이는 사람에게는 공부를 시켜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관 컨설팅을 받으면서 [사회복지]가 수녀들과 제일 이미지가 맞고, 있어 보여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킨다고 말하던 원장 수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외부에서 보는 수도회의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로우면서 세상과 동떨어진 곳인 것 같지만, 성 안에서도 치열한 경쟁의 물결은 출렁거린다. 그 속에서 도태되거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해서 정신과적인 문제가 발생하여서 치료를 받는 수녀도 있었다. 낙인화 될까 봐 꺼리고 쉬쉬하면서...
평가준비를 하면서,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지난번 평가위원들의 권고를 받아들여야만 했고, 변화와 쇄신을 위하여 일반인(평신도)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각자 다른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만나게 되었을 때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사고(思考, thought)의 충돌과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이해와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근무해 본 나로서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애보다는 부리는 사람, 일을 시켜 먹어야 하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한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오던 날, 어떤 수녀가 "너는 우리 집에 일을 하러 온 사람일 뿐이야.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마치도 나를 무수리처럼 대했던 사람이었다.
특권의식, 우월 의식을 가진 수도자들은 의식에 있어서도 전근대적이거나 더 심하면 봉건주의 시대를 산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빨리 받아들였지만, 정작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인색하였고, 모른 체하거나, 손 놓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로 부터 이러 저런 어려움에 대해서 들은 내 지인이 말했다. '제 식구 감싸기에 네가 억울함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된다'라고.
성(城, castle) 안은 일반인들이 관여할 수 없는 곳이고, 그들만의 규칙과 규율로 정리가 되고 유지될 것이다. 나는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1인이다. 가톨릭 교회는 2,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모진 박해와 멸시, 수많은 고비를 넘으면서도, 교계제도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계승하여 오고 있지만, 유독 일부 수도회는 변화와 쇄신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좁은 소견일까?
시대의 흐름과 변화의 요구에 편승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것이다. 가톨릭(Catholic)은, '보편적' 성격을 가진 종교이다. 너그럽고, 편협하지 않으며, 차별 없이,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지 감싸 안는 포용적 성격을 가진 종교라고 나는 배웠다. 정작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그 변화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과연 존경받으며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인권 존중과 차별 의식을 타파하고 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존중, 의식(인식)의 전환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