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격증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수도자들과의 근무에 종지부를 찍기 전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수도자 직원을 본원으로 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 소임장(이동, 전출)을 들고 오는 수녀가 있었다. 그래서 1월 달부터 2월 초까지는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어떤 사람이 오는지, 수녀 직원들 사이에는 궁금증이 쌓이는 때였고, 소임을 마친 수녀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 마음을 졸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보통 일반 수녀들의 소임 기간은 3년이며, 기관장을 맡으신 분은 5년 정도 머무르셨다. 일이 힘들고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관구장님에게 청을 넣어 이동을 요청하는 경우도 보았다.
어느 날, 사무실에 도착한 수녀는 키가 컸고, 우울한 눈빛을 가진 수녀였다. 스윽~하고 사무실을 한번 스캔하듯 쳐다보더니, 나가버렸다.
5년 간의 소임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신 원장 수녀님이 가시기 전에 내게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선생님! 000 수녀라고 하는 사람이 올 예정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수녀와 직접 부딪히면 안 돼요. 새로 오는 원장수녀가 알아서 할 거예요."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길레 이런 말씀을 하시나 싶어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베일에 싸인 인물이 우울한 눈빛을 가진 그 수녀였고, 그 수녀는 이미 수녀원 안에서도 여러 가지 소문에 휩싸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사회복지 현장에 배치하는 것인지......
(나중에 알고 보니, 복지현장에 배치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수녀가 부족했다고 하였다.)
오는 첫날부터 무뚝뚝하였고, 사람에게서 풍기는 전체적인 느낌은... 몹시 어두웠다.
심지어 어르신들에게도 명령을 하고 하대를 하며 예의를 지키지 않았고, 사회복지사로서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꼭 폭탄을 안은 듯 조용히 지낼 것 같지는 않은, 그런 느낌의 사람이었다.
"선생님~, 저 수녀는 10년 전에도 여기서 근무했는데 또 왔네요.... 그런데 그때도 별로 좋지는 않았어요."
라고 하시며 어르신 한 분이 내게 와서 느릿느릿 조용히 말씀해 주셨다.
출근만 하면, 사무실을 들쑤시고 다녔고 자매 수녀들과도 대화가 안되어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언니 수녀는 조용히 벼르고 있었고, 여러 사람을 열불 나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가만히 업무를 보고 있는 내게 와서 다짜고짜, "주제 파악이나 하시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지...
천천히 일어나면서,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시죠?"
그 수녀는 덩치도 크고 키도 나 보다 훨씬 컸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그 상황을 옆에서 본 수녀들은 "아이코!" 하며 기가 막혀했고, 그 수녀는 자신이 뱉은 말에 내가 일어나서 되묻자,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더니,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수녀의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문을 잠가 버렸다. 그방 주인과 그 방 안은 난~리가 났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는 도망가버린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수도자지만, 엄연한 직장에 와서, 상급자에게 항명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원장수녀에게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동안에 그 수녀가 저질러 놓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설명하였고, 자매 수녀들의 항의와 불평을 접수한 원장수녀는 본원에 이 상황을 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수습기간 3개월이 채 안 되는 동안, 그 수녀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본원에 모인 장상들은 그 수녀와 한 번이라도 근무한 수녀들과 기관장들을 면담하였고,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수도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계속할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휴가를 보냈다고 하였다. 10여 일 후, 휴가에서 돌아온 수녀는 짐을 싸서 본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수도자를 어찌하랴!
입회할 때, 순명, 정결, 청빈의 서약을 한다고 하는데, 그 수녀는 관구장에게 순명서약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우울하고, 무례하고, 슬퍼 보이고, 눈빛이 컴컴한 수녀,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던 수녀는, 어느 날 커다란 이민가방을 끌고 현관 앞으로 내려왔다. 그런 수녀 주위에는 몇몇 자매 수녀들이 나와서 차에 타고 떠날 때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회할 때는 분명히 순수하고 소박한 열정으로 하느님께 평생을 봉헌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들어왔을 텐데, 세월 속에서 저 수녀도 성 안에서 많이 상처 받고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차를 한잔 마시고, 전날 밤에 모두가 편안하셨는지 들어보고 나서, 생활실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곤 하였다. 실내외를 살피면서 어르신들이 잘 지내고 계시는지 확인차 층층을 돌아다녔다.
내가 라운딩을 할 시간 즈음에는 먼저 방문을 조금씩 열어 놓고 기다리는 분도 계셨다. 그럴 때면, 말을 잘 듣지 않는 TV 리모컨(리모트 컨트롤)도 손 봐 드리고, 방 정리도 도와 드리면서 수다도 떨었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려니 생각도 하고, 또 먼 훗날 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누가 보던지, 보지 않던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내서 알아서 해 왔다.
정직과 신뢰를 나의 모토로 삼으면서 말이다.
평가준비를 다하고, 평가위원들이 방문하던 날, 나는 행정 실무에 익숙하지 않은 수도자 직원을 대신해서 파트별 질문에 대신 답변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지, 추가 자료를 가지러 가다가 벽에 찰싹 붙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고 있는 한 수녀를 보고 나니, 너무 놀랍기도 하고, 꽤씸하기도 하여 그동안 상했던 마음이 더욱 상해 버렸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situation)이지?? 열심히 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언제부터인지.....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여러 해를 근무했지만, 솔직히 내가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직장의 사무실처럼 활기차게 업무에 대한 논의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브레인스토밍( brainstorming)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특히 점심 식사 후에는 주변을 산책하는 일 외에는 거의 대부분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수녀들은 새벽 4시 ~ 5시경부터 일과가 시작되어 저녁 8시의 마침 기도로 이어지는 기도생활로 인해 피곤하여 잠시라도 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은 나를 포함한 몇 안 되는 평신도 직원 외에는 모두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휴식 시간이기도 하였고 사실, 업무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공통 관심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기도생활과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저 그들이 필요한 곳을 긁어주는, 지킴이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처음 오는 날부터' 평신도'라고 나를 하대하는 수녀도 있었고, 수녀들과 근무하면서 '신앙심'과 '종교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기도 하였다. 몇몇 수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과 계급의식이 나를 많이 혼란스럽게 하였고, 분노하게 하기도 하였다.
또 한 번은, 복도 원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지갑을 주인을 찾아주라고, 동료 수녀에게 전해주었더니, 지갑의 주인인 늙은 수녀님이 나를 도둑으로 몰아간 일도 있었다. 밤새 수녀원 안에서 있었던 사건을 다음 날 아침에 들으면서, 원장 수녀님과 친한 수녀님 한 명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미안하지만, 좀 참 참아달라"라고 부탁하여 오해와 의심이 풀릴 때까지 그 상황을 참아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데, 계급의식이 웬 말입니까? "
라고 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시던 상담 신부님이 계셨기에 여러 해를 견디며, 나를 다독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이곳에서 묻은 신발의 흙을 털어 버리고 싶었고, 나를 좀 더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였다.
떠나기 전 나는 원로 신부님께 고해 아닌 고해를 하게 되었다. 신부님께서는 여태까지의 일들에 대해서 들으시고는 많이 놀라시고 당황해하셨지만, 교회 안에 일종의 민낯이 아니겠는가 하시며, 이것이 전부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은 단어만 달랐지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삶의 중심인가의 문제라고 본다. 내가 어떤 색의 옷을 입고 사느냐에 땨라 삶의 모습은 달라지겠지만,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목적은 같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집을 찾아다니느라 많이도 헤매고 다녔지만, 수도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되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수도 생활이 아니라, "기도하는 생활"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더라도 항상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며,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지향하고 사는 것이라고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수도자들과 비교해도 내가 그렇게 꿀릴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