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 하는 아이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으로 자살 모임에 가입한 20대 초반의 여자가 성폭력피해를 입은 것 같다. 그래서 응급키트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살 모임이라... 뉴스를 통해서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진짜로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20대 초반의 피해자는 가녀린 체구에 생기가 없는 슬픈 눈동자를 하였고, 왠지 모를 쓸쓸함을 풍기며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마주 앉은 피해자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어릴 때부터 죽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지만, 죽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럴 때면, 세상이 더 원망스러웠고, 더욱더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 말을 듣다가 그러면, 본인이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살아야 되는 가보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지,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없냐고 물어보니, 힘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자살을 원하는~]의 회원들과 만나기로 하여, 상경[上京]하였다고 하였다. 낮에는 서울 명동을 돌아다니가 저녁 즈음에 모텔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주모자의 지시에 따라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였다고 하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죽을 건데..."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시키는 대로 한 후, 집단으로 투약을 하였는데... 몇 시간 뒤에 의식이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죽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말하였다!
이 피해자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쑥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도대체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의 소중함'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저 세상에 가서야 알게 될 신비인 것 일까??
이 젊은 여성은 왜 이토록 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살면서 힘들었던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십 대 때에 친했던 친구와 어느 날 갈등을 겪은 뒤, 친구와 멀어졌고, 다른 아이들과도 멀어지면서... 학교생활에도 흥미를 잃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사람에 대한 신뢰, 진정성,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 피해 여성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즐겁고 좋았던 적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친한 친구와의 기억이 전부였다. 이 아이는 가족보다도 소중했던 친구와의 관계가 깨어지므로 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 힘을, 의미를 상실한 것 같았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이 또한 지나갈 일인데...
본인이 지금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은 긴 터널 안에 있는 것과 같다, 터널은 언젠가 끝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하였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 젔는다.
이 젊은 피해자 여성을 보고 있노라니, 옛날에 내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쇠도 씹어먹을 수 있는 나이인데, 무엇이 그리 두렵냐?
그래,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렇게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사람 들 속에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지랄 맞은 인간도 만날 수 있겠지.
살면서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니지, 해가 쨍쨍 내리쪼이는 날도 있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도 있는, 그런 게 인생이야, 그러다가 때로는 사람들과 뒤엉켜 원치 않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일도 생길 수도 있겠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이 인생인데...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때로는 성취감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면서 또 다른 친구도 사귀고, 경쟁자도 만나게 될 것이며,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살아가면서 많은 기쁨과 슬픔을 느껴볼 수 있을 터인데...
흐르는 세월 속에서 깎이고 견디면서 인생의 희로애락 등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왜 이렇게 빨리 생을 마감해 버리려고, 죽지 못해 애를 태울까?
이건 생명의 주관자에 대한 반항이며, 배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아무튼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원가족을 만나보지 않아서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원가족과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다. 경찰에서 아이의 어머니와 연락이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어왔다. [자살예방센터]에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을 제안하였다. 아이도 이런 기관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아마 어머니도 모르고 계실 것이다. 거주지 근처의 기관으로 연결할 테니, 조사를 받고 난 뒤에 지속적인 상담을 받으면서 아이의 심리상태를 살펴보기를 요청하였다. 심리적 상태에 따라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의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였다고 한다. 그렇지... 어떻게 슬프지 않겠는가! 애써 키워놓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딸의 수차례 자살시도로 가족도, 어머니도 이미 마음의 상처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어머니도 같이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서 상담받아 보실 것을 권유하였다.
어머니는 아이의 상담에 동행하면서 가족들이 알아야 할 사항에 관해서도 듣고, 도움받으면서, 아이의 변화를 고대하며 살피겠다고 약속하셨다.
지나간 시절, 나도 이 아이 나이 때에 (딸이라서)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일도 잘 안 풀렸고, 모든 것이 부모님 뜻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죽고 싶은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거의 매일 머릿속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쁜) 생각에 잠겨 고개를 들다가 마침 내 방에 놓여 있던 성화(예수님 얼굴)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평상시에는 온화하던 모습이 그 순간에는 성난 사자의 눈빛처럼 '으르렁' 소리가 들려서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너무나 무서웠다!
더운 여름날, 정신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린 곳은 내가 마음이 힘들면 자주 찾아가던 곳 근처의 길 위였다. 혼난 아이처럼 축 처진 어깨를 하고 터벅터벅 거리를 걸어가다가,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나이 든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깊은 창이 있는 모자를 썼지만, 햇빛에 그을린 얼굴 위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혀 흐르고 있었다.
보아라...
차가운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는 것보다, 이곳이 낫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가슴속에서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음성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삶은 나의 것이고, 내가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씀을 떠 올리면서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곤 한다.
부자가 되거나, 유명인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는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 여정 중의 '소중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