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갈수 없는 나이, 갱년기 나는 왜 낮에 열이 날까??
어느 날, 저녁 근무를 하면서 어김없이 저녁 7시경에 나는 준비해 온 체온계로 나의 체온을 쟀다.
'웁스! 왜 이렇게 높게 나오지?? 나 아프지도 않은데...'
옆에 있던 파트너 간호사에게 작은 소리로, "샘, 나 열이 높게 나와. 어떻게 하지?"라고 묻자, 간호사인 동료가 나의 체온을 귀체온계로 다시 확인하였다.
"샘~ 어디 아파요? 왜 이렇게 높게 나와요?" 하며 작은 소리로 걱정스럽게 말하였다.
38도, 왜 이렇게 높게 나오지? 혹시...
아니야, 아니야. 난 집순이라서 퇴근하고는 매일 집에만 간다구. 하면서도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간호사 동료는 해열제 1알을 주면서, "조금 있다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아요. 아무 일 없는데 걱정하면 열 더 올라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두어 시간 후 내 몸에서 열은 사라지고 없었다.
때가 때인 만큼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고부터 근무지에서는 1일 2회 정해진 시각에 각자 열체크를 하여 기록하도록 지침이 내려왔다. 열이 37. 2 이상 나오면 집으로 가야 하는 일이 우리 사무실에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는 야간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 아니, 이게 뭐야? 누가 열이 이렇게 높아! 열이 이렇게 놓으면 말을 했어야지!"라고 하며 같이 근무를 한 수사팀 경위가 큰소리로 나무라듯이 말을 하였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갱년기 때문에 선생님이 열이 있었지만, 밤부터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고 대신 말을 해 주면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기도 어젯밤에 해열제 먹어 놓고서는 남 말하고 있네."라고 하며 못마땅해했다.
나는 언짢았다. 이 상황이 언짢았고, 이 시국이 언짢았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아픈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부터 목이 조금 따끔거리는 듯하여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열이 있으며 안되니, 보건소에 확인 전화를 먼저 해 보라면서 입구를 막아서는 간호사의 태도에 내가 마치 죄인이 된 듯하여 얼른 집으로 돌아와서 관할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젯밤의 내 증상에 대해 말하고는 내가 코로나 검사 대상인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코로나 의심 환자가 아니십니다. 해열제를 먹고도 계속 발열상태이면, 검사를 받아보아야 하지만, 열이 없는 상태는 이상이 없으니, 병원 진료를 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말을 해 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쏟살 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그 간호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라리 내과에 가서 폐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면서 박대 아닌 박대를 하여, 나는 속으로 '다시는 느그(너희) 병원에 가나 봐라!' 하면서 불쾌한 마음을 안고 옆 건물에 있는 내과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였다.
의사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X-ray 검사를 안내하였고, 갱년기 검사도 하기를 권유하였다. 내 증상은 폐에 먼지가 조금 있어서 기침을 자주 하였고 열이 난 것 같다고 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갱년기 증상이 일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후 나는 자주 열체크를 하게 되었고, 6개월 여가 지난 후에는 내가 언제 열이 나고 언제 열이 떨어지는 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내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어야지 지난번처럼 불쾌한 상황이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갱년기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왜 나는 하필 낮에 열이 나는지... 그것도 이 시국에 말이다.
정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근무지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설명을 하면 되지만, 낯선 곳에 가서 입구마다 체온을 확인하고 입장할 수 있는데 혹시라도 열이 훅 올라가서 걸리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창피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두려운 눈으로 쳐다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공공기관을 방문해야 할 때도, 병원에 정기진료를 갈 때에도, 마트에 가거나, 심지어 성당에 갈 때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집에만 있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업무가 업무니 만큼 피해자 지원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센터 방문 전 수사팀을 통해서 행선지 등 기본 설문을 하고 방문하지만, 자신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을 경우의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우리는 자주 소독을 하여야 했다. 덕분에 몇 차례 코로나 검사를 의무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나는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주변에 나처럼 갱년기를 겪고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다 증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밤에 열이 나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나는 낮에 열이 나서 이렇게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지... 열이 항상 나지는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도 열이 훅 올라가는 느낌이 있을 때는 등이나, 얼굴이 갑자기 더워지기도 하는 형태로 나타나서 가슴이 조마조마 해지곤 하였다.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였고, 운전을 해서 야외로 나가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되었다. 거리두기 2.5단계 조정으로 5인 이상 모임 금지, 종교활동 금지 등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금지가 되었을 때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겨울에도 실내보다는 야외를 선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큰마음먹고 시작하게 된 국내 천주교 성지순례로 전국을 이리저리 다니면서도, 영하의 추운 날씨를 견디어 냈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밖에 있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생애 최고로 추웠던 그날도 나는 어느 성지를 상념에 잠겨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한 번도 마스크를 써 본 적이 없었다. 답답하기도 했고 꼭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부터 마스크 착용방법을 제대로 익히게 된 것이다.
K-방역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외국의 다른 나라처럼 많은 희생자는 없지만, 조심해야 하는 이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마음 한 편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백신을 맞게 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것도 당분간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될 테니까.
하루빨리 코로나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슴을 활짝 펴고 마음껏 공기를 마시고 싶다.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며 인생사를 논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오늘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들과 관계자들은 방역복 너머 더위와 추위는 물론이고 답답함을 누르고, 고귀한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살게 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