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또래들보다 많이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social welfare)를 시작하여 15여 년 동안 사회복지 현장에서 근무를 하였다. 미인가 시설에서 '미인가'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하여 피해자 지원 기관까지 몇몇 기관을 거쳤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면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았고, 또 많은 사건들을 접해 보았다.
나의 주 고객님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 중에 하나였다.
내가 접하는 여러 가지 업무 중에서는 내 근로 의욕을 활활 불 타오르게 하는 일도 있었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있었고, 소위 화가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즐거웠고 보람 있었던 현장이기도 하였다.
내가 사회복지 현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그즈음에 나는 사진 한 장에 매료가 되었고, 그 사진이 이끄는 대로 갔더니 앰네스티라는 NGO가 있었고, 그곳을 통하여 인권(humanrights,人權) 활동에 가담하게 되었다.(2001년, 그 당시에는 한국앰네스티 본부가 대구에 있었다.)
사무실 근처를 지나던 어느 날, 거리에 붙은 홍보물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국앰네스티에서 주관하는 [인권 사진전]이란다. '저게 뭐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궁금하면 가보면 돼지. 하면서 찾아간 곳에서 오늘까지 인연의 끈을 맺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내게 '인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고, 가르쳐 준 나의 스승님들이기도 하였으며, 내가 사회복지현장에서 열 받아서 오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받아주고 들어주던 정말 마음 편한 동지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인권은 다른 사람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는 것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권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마무리는 천부인권설과 연결하곤 한다.
그래! 이거야. 나는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생기는 불편한 진실 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 한구석의 묵직함의 원인이 바로 이 "인권"의 부재 또는 "인권에 대한 개념 정립"의 부족, "인권감수성"을 알지 못해서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살던 대구에서는 2008년도부터인가 법인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와 협약을 맺어서 사회복지현장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에게 인권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게 하였고, 분야별로 인권강사과정을 개설하기도 하면서, 인권교육에 열을 올렸다.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다가 보니, 나이 어린 사회복지 선배들은 '연차'만 소리 높여 외칠 줄 알았지, 정작 중요한, '클라이언트의 인권'에 대한 의식은 부족하였고, 경청하려는 자세는 더더욱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 생활인들과의 생활에서는, 아주 낮은 자세로 섬세하게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와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했음에도 일부 사회복지사들은 사례관리나 사례회의(case conference)를 위한 결과물을 내놓기 바빴던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몸 담은 사회복지현장에서 생기는 의혹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과연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서 대학원에 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건사고가 많았던 날은 너무도 피곤했고, 차를 달리면서, '쪼금만 쉬었다 갈까?'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유혹을 떨쳐 내야 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내가 만난 중증 장애인 아이들은(내가 생활인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니까) 나를 육체적으로 힘들게 했지만, 마음만은 정말 편하게 해 주었다! 아이들의 원초적 본능(?)에 당황할 때도 있었지만, 그 순수함과 예측 불허한 행동은 나를 박장대소하게 하였고, 때론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하면서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장애인들과 살겠다고 사회복지를 하는 막내딸이 걱정도 되었고, 밉기도 하였던 내 어머니는 오빠를 앞세워 딸의 직장에 기관 방문을 하셨던 적이 있으셨다.
나는 사내 녀석들만 우글거리는 방의 담당자였는데, 그날따라 제일 어렸던 7살 아이가 낯선 사람의 방문으로 한껏 성질을 부리며 짜증을 내었고, 얼떨결에 그놈이 먹다가 흘린 사탕을 나도 모르게 집어먹었는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는 어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셨다.
나중에 오빠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엄마가 니 그런 모습 보고, 화가 났다고 하시더라. 뭐~ 배신감, 이런 것도 있었다카대?"
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내가 언제 그랬던가 싶었다. 정말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니가 선택한 일이다. 니가 잘못해서 혹시라도 불쌍한 아~들(애들)이 상하지 않도록 해라이."
하고 다짐을 하게 하셨다.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보면, 예측 불허한 생활인들의 행동에 당황할 때도 있고, 화가 나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게 되는 케이스도 있었다. 혈기왕성한 교사(사회복지사, 담당자) 들 중에는 선을 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 번은 기관이 발칵 뒤집어졌고, 원장이셨던 신부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다. 교사들에게 그동안 고생한다며 여러 가지로 기운을 북돋아 주시곤 하셨는데, 하나의 사건 때문에 완전히 마음을 돌리신 것이었다.
직원들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셨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제시하기를 요구하셨다. 폭력을 행사했던 직원은 해고되었고, 상황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몇몇 직원은 몇 달 동안 감봉처분과 함께 경위서를 쓰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권감수성이었다. 인권침해에 강하게 반발할 수 있는 감성 즉, 예민함, 공감능력, 일상적 감각의 틀 깨기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 안에서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예민하지 않으면, 상황의 잘잘못을 알지 못하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피해자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늘 접하는 일상 안에서 우리가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인데 그 안에도 인권침해가 있었을 것이다.
인권 감수성의 이해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당시에 원장 신부님의 화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직원이었다. 왜냐하면, 전부 자신들의 입장만 말하였지, 피해 이후 생활인의 상태와 안전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들었는데, oo이의 안전과 당시의 심리적 안정상태를 언급한 사람은 내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인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약속이며, 지켜져야 할 약속이라고 하고 싶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발생한 폭력=전쟁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힘으로 누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폭력과 전쟁과 인권침해가 있어 왔다. 그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나라마다 국경(경계)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조약(약속)을 만들고, 무기를 구입하는 것일 것이다. 이에 앞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충돌을 최소화하게 되면 전쟁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도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전쟁의 잔혹함과 무자비함을 목도하고 난 뒤에 세계의 정상들이 생각을 모으고 합심하여 만들어지게 된 "인류의 약속"인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살펴보면서,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social walker)와 대상자(client)는 동등한 위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입 사회복지사에게 [인권교육]을 할 때, 이 부분에서 "서로 '평등'하면, 인권이 지켜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사회복지 대상자를 호칭할 때,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이라고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는 대상자의 조력자이며, 중개자이고, 중재자이며, 협력자이고, 교사이기도 하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수혜자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었을 경우에도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내내 <섬김의 자세>로 대상자를 대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