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때...

by 마들렌

대학원을 마치고 보니, 건강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서 나는 사회복지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직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나이에 20대처럼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상담을 할 수 있는, 경험과 연륜이 필요한 직종으로 구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전에 지도신부님은 늦게 사회복지현장에 뛰어든 나에게 [가정폭력,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 일정을 보여주시며, 등 떠밀듯 이 교육을 받도록 종용하셨다. 그때 나는 사무실을 떠나 있기가 싫어서 툴툴거렸는데, 신부님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이 교육이 필요할 거예요."
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 신부님의 선견지명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셨던 말씀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뒤늦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집을 떠나 나를 필요로 하는 소도시의 상담소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곳에 가려면 먼저 방부터 구해야 했고,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의 타지 생활이 처음은 아니지만, 방을 구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작은 도시에 자리 잡은 가정폭력 상담소는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소박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면서 나는 긴장하였고, 나의 부주의로 클라이언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낯선 도시에서의 한 주간이 끝나면 주말에는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을 하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직장이 있는 그 도시로 내려가는 그런 생활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근무를 하였고, 아래층엔 성폭력 상담소인데,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긴 한데, 홈페이지 공지사항이나 게시판에 구인공고가 너무나 자주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점심은 아래층 직원들과 같이 먹었기 때문에 1달 여가 지나고 어느 날, 직원들끼리만 있을 때, 넌지시 물어보았다.
"구인공고가 자주 있던데 왜 그런 거예요?", "..."

두 직원은 조금 당황한 듯하면서 시선을 주고받다가 이내 한 명이 말문을 연다.

"저희도 아는데요... 사실이긴 한데요... 그게..."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고, 촉이 왔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나는 한동안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에 사무실에 있는 문서들을 이것저것 살펴보았고,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이 기관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뭔가 이상하다! 올라와 있는 글에는 기관을 비판하는 글과 신고하고 싶다는 글, 월급을 받지 못하고 급하게 퇴사했다 는 등의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지?

내가 어렵게 찾아서 온 곳이 믿을만한 기관이 아니란 말인가? 하는 생각과 답답함, 두려움이 밤안개가 퍼지듯이 조용히 나를 덮치고 있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소장과 나 둘뿐인데, 서류상 1명이 더 있다! 내가 오고 얼마 안 있다가 퇴사한 사람의 퇴사처리가 안되어 있었다. 급여는 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 급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증거에 나의 확신은 굳어져 갔고, 퇴근하여 자취방으로 돌아와서는 NGO에 근무하는 활동가 친구에게 그동안 내가 알아낸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친구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지, 당장이라도 올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당장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두려웠다!


소장은 급여 이체를 할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고, 도장도 하나 달라고 했다.

'이건 또 뭐지? 요즘 다 인터넷뱅킹으로 하는데, 뭔 통장과 도장을 달라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전달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는지 해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한 뒤에, 여성가족부 담당 부서에 신고 전화를 하였다. 담당자는 처음에 몹시 당황한 것 같았고, 다시 전화하도록 하였다. 나는 다시 전화하여 그동안의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자료를 <내용증명>하여 우편으로 전달하겠다고 하였다.


나의 불편한 시선은 부부 소장에게 전달되었는지, 나는 3개월 수습기간이 채 끝나기 전에 잘렸다!!!

내가 자신들의 비리를 확인할까 봐 급하게 해고 통보를 한 것이었다.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불도 켜지 않은 채 한참 동안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과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그곳을 떠나오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보았다. 내가 겪은 엄청난 일을 누군가에는 알려야 할 것 같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증오심과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고해실 가림막 너머 고해 신부님에게 그동안의 정황에 대해 설명하였고, 그 부부가 종교인이라는 것도 알렸다. 한동안 이어지는 침묵 뒤에,

힘든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무서웠습니까? 좀 더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도시를 떠나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았다.

내가 사회복지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열심히 일 해보겠다고 찾아간 곳에서 두려움과 공포, 추위에 떨게 한 사람들, 특히나 종교인인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먹으면서 지역사회 유명인사 노릇을 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이었다.


나의 공익제보로 도청, 시청은 벌집 쑤신 듯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시청 담당자는 내게 전화를 하였고,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덜기 위해서인지, 자신들도 뭔가 의심은 들었지만, 내부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하였다. 목사 부부는 사문서 위조와 4천만 원이 넘는 보조금을 횡령하여 환수조치가 되었고 사업반납 처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 지역사회에서 쌓아 올린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수사 담당 경찰관이 내게 말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더 나왔을 것이라고...

명성을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도시 이름을 들으면 치가 떨리고, 그때 일들이 떠올라서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뒤 더 먼 도시로 떠났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정직한 사회복지>만이 대상자(클라이언트)에게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찾아간 신생 기관은 처음 알게 된 비공개 시설이었고, 입소자 아이들은 전국에서 연계되어 들어왔다.

아이들의 모습은 움츠려 있었고, 슬픈 표정이었다. 나이가 대부분 14~5세부터 20세 전 후의 아이들로 방임 상태에서 피해를 입었다. 전학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 부딪히며 싸우기도 하였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쳐서 하루라도 빨리 전학을 시키기 위해 나는 내 근무일이 아닌 날도 교육청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원장님에게는 후원금을 모금해 오시라고 외부활동을 독려(?)하였고, 나는 내부에서 행정, 문서, 입소자 관련 일들을 진두지휘하면서 기관의 내실을 다져 갔다. 관공서 방문, 경찰서, 교육청, 학교 등 외부활동을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오면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상에 앉아 등이 앞으로 휘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내가 겪은 불미스러운 일을 거울삼아 정말 깨끗하고, 정직한 기관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3년 여만에 내가 몸 담았던 기관이 보호시설 평가에서 전국 1위라는 위엄을 달성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보조금을 눈먼 돈이라고 표현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보조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활신조는 정직과 신뢰이다. 어릴 때 오빠는 내가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말을 하곤 하였는데, 무심코 흘려들은 말이지만 그 말이 어느새 내 머릿속 깊이 각인이 되어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어둠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할 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터널은 끝이 있으니까... 저 터널 끝에 환한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