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늦은 귀가에 잔뜩 뿔이 났는지 은비는 마중도 안 나오고 곡선형의 스크래처 위에 앉아서 나를 쬐려 보고 있었다.
아이는, '왜 그렇게 늦었냐'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더니, 평상시에는 잘 긁지도 않던 스크래쳐를 박박박 긁기 시작하였다. 마치 늦게 온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와이프처럼... ㅋㅋㅋ
"미안해~ 내일까지만 늦을게."라고 말하고 씻고 난 뒤, 자러 가려고 하자, 왜 벌써 들어가냐고 나를 따라오면서 와옹와옹~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고요! 정말 이러기예요?
하며 호박색과 사파이어처럼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는 항의를 하는 듯하였다.
주말이 되었다.
연이은 늦은 퇴근으로 한동안은 걸어 다니면서도,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도 졸음이 쏟아질 정도였다. 피곤한 시간은 다 지나갔고 이제는 재미있게 놀아줄 시간이 되었다. 모처럼 청소를 하고 빨래를 깨끗이 한 후, 방울 달린 낚싯대를 가져오자,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나서 쪼르르 내게로 달려왔다.
집사가 흔드는 낚싯대에 전심을 다해 점프를 하고, 공중돌기도 하고, 앞발을 재빠르게 허공을 향해 흔들면서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만" 하는 집사의 목소리에 기진맥진하여 벌러덩 하고 눕더니, 숨을 헐떡거렸다.
[사냥놀이 후 휴식 중]
가만히 손을 내밀어 숨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를 쓸어내리니, 아이는 이내 앞발로 내손을 밀어냈다.
분홍색 젤리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뜨끈뜨끈하였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이라는 표현이 정말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자서 깔깔깔 웃었다.
책상용 새 의자를 하나 샀다.
흰색 테두리에 연두색 시트가 아주 깔끔하게 매칭 된 의자다.
은비는 이 의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작업을 하던 중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자 차지하기]
"거기 내 자리야. 엄마 자리!" 하고 말하면,
"와옹~" 하고 말대꾸를 한다.
...... 그래?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들어서 내릴까 하다가, 그냥 앉으면 되지 하면서 털썩하고 앉아버렸다... 왜냐하면, 등을 자리 깊숙이 밀어 넣고 앉다 보면, 끼이는 게 싫어서라도 자진해서 내려가게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속으로는 집사를 욕하겠지...
사실 내 엉덩이가 상대적으로 그 아이의 궁뎅이보다 크기 때문에 아이는 사이즈에 밀려서라도 의자에서 밀려나게 되어있었다. ㅋㅋㅋ...
엎치락뒤치락 고양이와 하루 일과를 보내다가 슬라이딩하며 미끄러지는 발바닥 털을 정리 해 주면서, 전체 털을 한번 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날씨가 선선할 때는 괜찮았지만, 폭염이 있고, 습도가 올라가는 날에는 풀쩍풀쩍 뛰어내리기도 하고, 한 번씩 끌어안고 할 때는 털이 엄청나게 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루밍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위 속에도 고양이 털 뭉치가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정없이 뿜어내는 털 때문에 머리를 빗을 때도 털이 나왔고, 음식을 먹다가도 털을 가려내야 했다. 심지어 땀이 날 때에는 얼굴에 붙은 털로 인해 가렵기도 하여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반려견을 오랜 시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조언을 참고로 하여, 큰마음먹고 이발을 시작하였다.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들이대는 기계소리에 털이 우수수 바닥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나 싶을 정도로 얼음이 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예민한 청력의 냥이족의 후예답게 기계음을 피해서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달래고 어르고 하면서 이틀에 걸쳐서 털을 밀었다. 머리와 네발은 남겨두고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온 신경을 다해 조심하면서 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였다.
행여나 털 속에 묻힌 찌찌를 밀어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하면서 거사를 치르고 나니,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나의 첫 작품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음음...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썩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친구가 말하기를, 내 기준대로 하면, 아이가 힘들 테니 "대충"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진짜로 대충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런 이런... 쯔쯔쯔... 수염이 좌우가 안 맞네!
아이가 자꾸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는 바람에, 한쪽 수염이 울퉁불퉁하게 잘려 있는 것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털이 나려면 품종에 따라 2~3개월은 걸린다고 하던데, 그 시간 즈음이면 더위는 다 지나갈 것 같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보니, 마치 스핑크스 고양이 같이 쭈글쭈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털복숭이는 털이 외투고 갑옷인데... 분홍색을 띠고 있는 피부는 연약해 보였고, 등에는 지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흰검의 털 색상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가려져있던 모습이 털을 걷어내고 나니,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발 후, 일상으로 돌아가기]
그런데, 이건 뭐냐?
털 속에 가려져서 잘 안보이던, 꼬부랑 할머니의 젖가슴처럼 늘어진, 저 원시 주머니(기능성 뱃살, 복부 보호, 몸을 유연하게 늘어지게 하는 기능 등)는 더욱 쭈글어진 모습으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사냥놀이를 하다가 모서리에 슬린 자국이 발갛게 줄이 나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의 욕심 때문에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복식사를 배우다 보면, 인간이 의복을 갖춰 입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나온다. 더위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외부로 부터의 위험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는 욕구 등 자기표현의 방법으로 의복을 입게 되었다고 하였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한다면, TPO(때(time), 장소(place), 경우(occas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1960년대 초부터 옷을 입는 데, 위의 세 가지를 기본적인 원칙으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맞게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양이 은비는, 지금 시원함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밖에서 나는 소리에 목을 빼고 살피는 모습]
습도가 높은 한여름밤,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집사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우다다를 하다가도 종착지는 항상 집사의 옆자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인간 엄마가 언제 자러 가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 한참 동안 목을 쑤욱 빼고 있는데 무얼 살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