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 그리고 미안함...
해마다 받는 지도점검 준비를 하느라 10일째 퇴근이 늦어졌다. 매번 사무실을 나가는 시간보다 2~3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마음 한편에 걱정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밥(사료)은 많이 주고 왔는데... 불을 안 켜놓고 왔네.'
껌껌한 어둠 속에 혼자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놈의 사회복지 "칼출근에 고무줄 퇴근"이라는 말이 소싯적부터 있어왔는데,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으니...
처음 이곳에 올 때, 퇴근 시간이 지나도 도통 갈 생각을 하지 않는 팀장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을 하였더니, 한동안은 그게 좀 먹혀 들어가는 것 싶더니만, [지도점검]이라는 복병 앞에서는 힘을 잃은 것 같았다.
오래전에는 1년에 2회 지도점검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급하게 준비를 했지만, 두어 번 받고 나면, 다음부터는 여유가 생겼고, 언제가 좋겠냐는 담당 공무원의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저 교육 가야 되니, 좀 당겨서 와 주세요!라는 말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쩝쩝...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작년에는 가을에 받았는데, 올해는 [사회복지시설. 기관 평가]가 있는 해라서 그런지 기관의 업무는 좀 더 바쁘고 분주하게 흘러갔다. 사실 일을 미루려고 미루는 것은 아니다. 사건 사고는 수시로 발생하였고,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 하루도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그리고 피해자 지원 업무를 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피해자를 만나게 되었고, 지원해야 할 업무도 각각 달랐다. 그야말로 총 천연색의 인생을 사는 지라, 같은 케이스는 한 건도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것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피해자를 위해서 우리는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사례회의를 하였고, 여러 곳으로 전화를 돌려야 했으며,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집중해야 했다.
경찰서에서 보내오는 팩스를 통해서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피해자 및 데이트 폭력 피해자 모니터링을 하였고, 전화로 걸려오는 피해자 지원 요청에 집중해야 했으며, 사례를 지원하기 위해서 유관 기관과 일부 내용을 공유하여야 했다. 그리고 출장을 다녀오게 되면 행정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람처럼 혼자서 밥 차려 먹는 걸 알면 걱정도 안 하지,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배를 곪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야 되는데, 빨리 가야 되는데...
고양이가 독립적인 동물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감정이 있고 외로움을 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보통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현관문 앞까지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고 하는데, 맞다. 때로는 같이 살기는 하지만, 무관심한 가족(?) 보다 낫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아이는, 와옹~ 하면서 벌러덩 배를 보이고 집사를 반갑게 맞아준다.
애옹~애옹~ 수다를 떨면서, "집사야, 빨리 나를 쓰다듬어라." 하고 주문을 하는 동안, 나는 빠르게 손을 씻고 폭풍 친화력을 발휘하여 이곳저곳을 쓰다듬어 주면, 그르렁그르렁 하면서 흡족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루 동안의 노고가 저 멀리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쩌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는, 풀이 죽어 있었다. 마치 집사가 안 오는 가 싶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퇴근이 늦어질수록 짜증도 내고, 화도 내는 것 같았다.
왜 이제 오냐옹? 밥은 언제 줄꺼냐옹?
하면서... 그리고 가끔은 빠르게 내 신체 일부를 치고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럼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쪼꼬만 한 녀석이 지금 내게 짜증 내는 거야? 늦어서 미안하다, 이 녀석아.
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밥그릇이다.
오늘은 잘 먹었는지, 얼마나 남겼는지, 혹 불편한 데는 없는지 등, 잘 먹고 잘 싸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아마도 거의 모든 집사들의 가장 기본 임무인 것 같다.
늦은 시간 돌아와서 행여나 배가 고프지나 않을까 하여 챙겨주는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을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바라본다. 뽀도독뽀도독 소리를 내면서 사료를 씹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오랜 친구의 얼굴이 떠 올랐다.
지금은 16살 된 할머니 강아지를 모시고 사는데, 처음 아이들 밥을 먹일 때, 작은 숟가락을 들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먹어라", "꼭꼭 씹어서 먹어라" "왜 흘리고 먹노?" 하면서 시중을 들었는데, 지금 나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보드라운 털을 쓸어내리면서,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친구의 말처럼, 이 아이들(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기쁨과 위안 그리고 삶의 활력을 나도 조금씩 맛보고 느끼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내게 온 생명인데, 서로 알아가면서, 그리고 사랑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사랑하며 살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소중한 내 인생의 한 조각이 만들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