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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Jul 26. 2024

중환자실에서 손녀가 보호자일 때

“실례지만, 환자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아! 저 손녀에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되요.”

“아..우선 설명 드릴께요.”


간병을 하면서 자꾸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할아버지 옆에 있는 내게 의료진은 자꾸만 관계를 묻는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나를 처음 보는 의료진들은 보호자와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 나와 할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다. 마치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듯이.


처음엔 마치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잘못 온 사람처럼 대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간병을 시작한 날 그날도 그러했다. 매우 당황스럽다는 눈빛을 한 주치의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보호자라고는 나밖에 없었으니, 주치의는 일단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 표정은 뭘까.. 보호자라고 하니까 일단 설명은 해본다는 느낌?


나는 하루이틀만에 의료진들의 그런 반응이 점차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병원을 오가면서 다른 보호자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환자옆을 지키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주로 나이가 지긋하신 환자의 배우자이거나, 바로 아래 자식 혹은 며느리 등이었다. 한대를 더 넘어선 손주가 병원에 오는 건, 단순 면회말고는 병원에서 거의 본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임시로 잠깐 온게 아니라 아예 보호자로 와있는다는 사실 자체에 대부분 의료진들이 최소 한차례 이상은 놀라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는 덩치가 왜소한 타입이라 평소에도 나이보다 어린 취급을 받곤 한다. 나의 이런 외모도 그 당황스러움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날 이후 부터는 마치 나도 잘할 수 있다고 병원사람 모두에게 증명하려는 것 처럼 정말 열심을 다했다. 할아버지의 작은 움직임에도 혹시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파서 그런건 아닐까 세세히 관찰도 하고, 계속 움직이는 모니터 숫자도 틈틈히 계속체크를 했다. 의료진들이 하는 말은 어려운 용어들도 빨리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다. 매일체크하는 혈액검사는 병원어플로 결과지를 계속 체크했고, 조금이라도 이해안되는 건 바로바로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마치 엄마가 생후 몇개월 되지 않은 아이를 보듯이, 내가 지금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몸이 찌뿌둥하거나 화장실에 가고싶거나 하는 나자신의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우선이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이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스스로 특별하고 효심깊은 손녀로 생각되어서 작은 기쁨이 생겨나기도 했다.


어쩌면 항상 나를 증명하려고 애썼던 건 병원에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첫직장이었던 대기업에서 근무할 적에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들어 했음에도 그 조직에서의 나 자신을 굉장히 좋아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한 K장녀. 온갖 가사노동에 있어서 꽤나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엄마를 볼 때엔 불평불만이 가득했지만, 어쩔땐 나도 모르게 내가 집안일을 꽤나 즐기면서 하고있다는 걸 발견한다. ‘뭐야~, 엄마는 비닐쓰레기 또 안치웠네. 얼른 이거 치우고 설거지도 해놔야겠다. 일단 로봇청소기도 먼저 돌려놓고~’


어쩌면 병원에서의 간병은 환자인 할아버지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병원을 오가면서 신체는 피곤했지만 남모르게 작게 피어난 내 마음속 만족은 그걸 증명한다. 나를 일부 희생해서 하는 간병이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이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K장녀로서의 모습으로 확실히 각인될 수 있는 기회라고도 느끼고 있었나보다. 책임감 넘치고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K장녀로서 이정도는 당연하게 해야될 일이라면서 말이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 않냐며 나를 위로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괜찮다는 말로 화답하며 뿌듯함을 가려본다.


이 간병은 아마 할아버지와 나 서로가 만족한 시간들일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유일하게 손녀의 간병을 받는 할아버지. 유일하게 할아버지 간병을 하는 기특한 손녀.


“할아버지, 걱정 마셔요. 나 진짜 잘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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