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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Oct 24. 2024

프롤로그

얼마전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외식을 다녀왔다.

좀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모시고 갔다. 할아버지는 다른 가족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속 해서 접시를 비우셨다. 그렇게 빨리 드실 줄이야. 음식이 입에 잘 맞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한편, 가족들이 준비한 이 식사에 대한 고마움을 본인 나름 표현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가족들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사실 예약도 내가 했다. 모시고 간 것도 내가 모시고 갔다. 따지고 보면 이런 식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일에 나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장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심치 않게 ‘장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형제자매 중에 ‘맏이’로서 또한 ‘큰딸’로서 살아간다. 그 말은 즉, 집안에서 부여받는 역할과 책임이 꽤 상당하다는 뜻이다.


이건 때로 인생이 참 벅차다고 느끼게도 하고, 요구되는 희생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성격이 마냥 ‘착해서’ 이렇게 살아간다기 보다는 관례적으로 장녀들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요구되는 것들을 소화하며 살아냈을 뿐이다.  


   

때로는 다른 가족들보다 큰 역할이 지워지기도 하고, 경제적인 디딤목의 역할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그녀의 희생이 모든 가족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 장녀들의 수고스러움에 고마움이나 인정, 혹은 보상이 뒤따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나 또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이런 특성을 주로 지닌 ‘장녀’들을 한국의 K를 붙여서 [K장녀]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항상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을 돌보거나 가족을 돌보기도 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등. 나이대비 차분하고 성숙해져야지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나를 포함한 K장녀들은 요구되는 책임을 다하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을 가꾸며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참 성실히도 살아왔다. 그러던 중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역할이 내게 주어졌다. 할아버지의 “보호자”.     



같이 살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 방문한 뒤, 중환자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보호자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지자, 그 역할은 할아버지의 손녀이자 K장녀인 내가 수행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나에게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주변에 겪어본 사람도 없어서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다. 왜냐, 병원에서의 대부분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의 부모이거나, 배우자이다. 즉 청년층 보다는 ‘장년층’의 보호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거의 2달을 병원에서 먹고 자기도 하며 지냈던 간병경험을 하나씩 글로 적어 내려놓아 보려고 한다.     





할아버지 ‘간병’이라는 게 청년에게는 흔치 않은 일. 그렇게 ‘장녀’로서 떠맡아 버린 이 역할에 대해 고찰을 하게 되었다. 서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하게 요구되는 희생들에 힘들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 입밖에 내지 못한 부당함에 대한 항의, 불만이 가득했다. ‘간병’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더 표면으로 드러나는 서로의 면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안에서 서서히 나와 내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표현이 서로에게 이런 오해를 일으킨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병원에서는 혹시 모를 사진을 찍었고. 상황이 조금 안정화 된 이후에도 조금씩 그때의 기록을 남겨보려 했던 것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     



본의 아니게 희생에 최선을 다하게 되어버리는 장녀로써의 역할에 공감한다면, 여기 그 역할의 한 사람이 남긴 흔적을 보고 그대 마음에 작은 공감과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   


  

‘당신이 가족을 위해 행하는 그 마음과 행동 모두 결코 당연하지 않아요.

정말 귀중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당신의 모든 희생에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감사가 있기를    

 

쨍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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