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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진 Sep 14. 2020

구스 아일랜드

맥주를 샀다. 네 캔이나. 딱 어제 밤, 딱 그때 한 모금이 고파서. 어차피 몇 모금 먹지도 못하고 하수구에 버릴 것들이었다. 과일 맛이 나는 맥주는 한 캔엔 사천원, 네 캔에는 만원이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가를 주고 사기에 손해보는 기분이 드는지라. 그냥 네 캔을 사버렸다. 오늘은 맥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은 IPA가 당겼고, 그냥 맛있는 음료수가 먹고 싶을 어느 날의 나를 위해 도수가 낮은 라들러와 라거, 사이다로 나머지 세 캔을 채웠다. 마지못해 네 캔에 만원. 자취생의 숙명같은 거였다.


오늘은 정말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8kg 짜리 세탁기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일요일 밤에는 빨래를 널고 자야 출근날인 화요일에 입고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으레 해야 하는, 자취생의 의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을 뒤로 하고 맥주를 사러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업으로 가득 채운 하루의 핑계가 생긴 셈이었다. 일조량이 적은 날 내 머리속에는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감 옆에는 어김없이 무기력이 자리잡는다. 끝도 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끼며 그저, 잠겨 있는 동안 빨래나 쓰레기는 부피를 늘려간다.


삶은 여행 같은 게 아니다. 맥주를 사기 전 집 앞에서 담배를 피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적어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렇다. 무기력하고 보잘 것 없는 하루를 보낸 날이면 늘 비관적이게 된다. 물 위의 부표 같은 게 맑은 날의 삶이라면, 어디든 떠다니며 여행이라 여길텐데. 비가 오는 날이면 이렇게 끝끝내 잠겨버리고 만다.


삶은 시원한 IPA  모금을 마시기 위해 세캔 하고도 반을 하수구에 버려야 하는 것이다. 비오는  끈적한 장판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와 에어컨을 같이 틀어야 하는 것이고. 궁금했던 하나를 물어보기 위해  시간 내내 잡담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삶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하는 일들로 채워진다.


같은 이치로, 언제인지도 모를 한 순간을 위해 나는 쓰레기 같은 글만 쓴다. 내 속에 담겨 있는 대부분의 글은 뱉어지면 버려진다. 언젠가 어딘가로 옮겨질 날을 기다리며. 생각이 흐름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같고, 사념의 바다에서 끌어올려지는 건 수리도 어려운 폐품들 뿐이다. ...나도 너처럼. 쓰레기 같은 글은 그만, 쓰고 싶다.


어떤 글이든 우울과 흠집 그 이후를 적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만, 그런 포장이 불가능한 글도 있다. 상흔보다 상처 그 자체에 가까운 일을 쓸 때엔 더 그렇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우울을 언젠가 설명할 수 있게 될까.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해도 애석하지 않을까. 그땐 맥주 한 캔 쯤은 달게 비우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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