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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Feb 03. 2022

<명상 훈련> 개발 비하인드

나의 어린 시절을 까발리다..


들어가며


예전에 학부 교양강의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역경을 딛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한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 과제를 했던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한 가지 얘기하고, 다른 학생들이 전자칠판 사이트에 피드백을 올려주는 식이었는데, 당시 내 에피소드를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었지만 한 분이 'MSG가 너무 짙은 것 아니냐'는 내용의 코멘트를 남겨 주었다. 


재밌는 것은, 그 에피소드는 지금부터 얘기할 에피소드에 비하면 별로 msg랄게 없는, 실제 어린 시절 겪었던 나의 평범한 일상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 정도 에피소드가 그 분에게 msg로 느껴졌다면, 오늘 쓸 이야기는 MSG가 흘러넘치는, 그야말로 불량식품 덩어리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이 명상 훈련이라는 개념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술수이자 꾸며내진 글로 비쳐질까 걱정되는 마음이다. 물론 과거의 경험들을 글로 꿰는 과정에서 2022년의 나의 주관이 들어갔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두 당시 어린 시절 내가 했었던 생각들임은 사실이고, 각 사건에 대한 증인들도 나름대로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부디 부정적인 시각은 살포시 접어두고 재미 위주로 한번 쯤 읽어봐 주길 바란다.



초중딩 시절 나의 명상 훈련


내가 초등학생 시절,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자기 전 천장을 보며 (앞으로 소개할 내용의 전신인) '명상 훈련'을 본능적으로 하던 때의 얘기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살면서 특정 행동을 특정 순서대로 반복하면(예를 들어, 눈을 5번 깜박거리고 -> 고개를 n번 서쪽으로 흔들었다가 -> 기침을 3번 하고 -> 오른쪽으로 누웠다 -> 앉았다 -> 다시 누우면) 인생 치트키 모드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사실은, 특정 커맨드를 '잘못' 연속하면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오싹한 생각을 했었다..)

히든 캐릭터를 고르려면 특정 커맨드를 순서대로 입력해야 한다.

어릴 적 많이 하던, '빨간 보도블럭만 밟아야 돼, 경계석 밖은 바다라서 빠지면 죽어' 와 같은 상상 속의 놀이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PC방에 가서 스타 싱글 모드를 켜놓고 SHOW ME THE MONEY를 입력하거나, OPERATION CWAL (와 이걸 아직까지 외우고 있네..) 등의 치트키를 치며 놀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자기 전누워서 이런 상상들을 하다 보면 눈 앞에 빨갛기도 하면서 보라색같기도 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이 뭉쳐서 보이는 경험을 했었다. 낮에는 이상한 플랑크톤 같은 것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플랑크톤 같은 것은 비문증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미스터리한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야기 속으로, 토요 미스테리극장,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며, 잠들기 전까지 이런 저런 연습들을 해 보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는 무협지를 그렇게 열심히 읽었었다. 협객들이 내공을 연마하고 정파심법과 사파심법으로 나뉘어 몇십년을 갈고 닦으면 불로장생하는 것은 물론, 초인적인 능력을 얻지만 결국에는 무의 극의를 깨달아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무협지의 기본 설정은 당시 나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실제로 믿고 경공을 배우고자 쿵푸 도장에 등록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무협지 설정의 근거가 어딘가에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소설이니 어쩄든 허풍이 섞이긴 했어도 무협지의 세계관 설정에 도움을 준 무엇인가는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이 이상한 집단광기의 기원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불로장생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한 50살까지는 정정하게 체력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것이고, 하늘을 날지는 못하더라도 서전트 점프를 남들보다 약간은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을지 모를 일이며, 단전에 기를 모아 소주천이니 대주천이니 내공을 쌓지는 못할 지라도 어쨌든 숨을 좀 효율적으로 잘 쉬는 방식을 터득하면 80살 살 것 85살까지는 살게 해 주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무협소설이 중국 특유의 허풍이 조금 많이 섞인 결과라면, 그 허풍이 섞이기 전 원재료로 삼았던 근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네 도서관에 가서 (나름의 기연을 기대하며)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었고, 당시 찾아 읽었던 책이 증산도니 양생법이니 내단법이니 호흡법 안내 같은 사짜 냄새 풍기는 책들이었다. 실제로 그런 책을 읽은 날이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혼자 눈을 감고 해보다 꿀잠을 자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제 보니 나 정말 열심이었구나


고등학교 시절, 기숙학교를 다녔었다. 당시 룸메이트이던 친구 한 명이, 공부량이 늘 부족하던 동기들을 대상으로 <자면서도 암기과목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자각몽(Lucid dream)을 기숙사에 전파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맨날 퍼자던 수업시간, 자습시간에 자지 말고 공부를 하고, 밤에는 PMP 보지 말고 잠이나 열심히 잤으면 그게 정답이었는데.. 


뭐에 씌였는지 나는 자각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에 몇 없는 인터넷 자료를 뒤져 마치 도시전설처럼 내려오던(요즘은 꺼무위키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더라) 다음 카페 발 안내자료를 발굴해 매일 밤 시도했었다. 꿈 일기를 쓰겠다고 아침에 점호 직전 눈을 감고(눈을 뜨면 그 때부터 꿈을 까먹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수첩에 꿈을 쓴 뒤, 30분 뒤에 쓴 내용을 보면 뭐라고 썼는지 알 수 없었던 경험은 나를 딜드 기법이 아닌 와일드 기법으로 안내했고, 그 당시 와일드 기법으로 자각몽에 몇 번이나 성공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남아있던 걸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자각몽 훈련을 진행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수를 하게 됐다. 공부를 위해 기숙학원에 들어갔는데, 가끔은 빈 강의실에 형들을 데리고 가서 칠판에다가 자각몽이 뭔지 설명해주기도 하며 잡기에 능한 이상한 학생 이미지를 충실히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원하는 대학은 높은데 성적은 그렇지 못했고, 나는 자습시간 친구가 사서 읽다 만 '시크릿' 류의 책을 접하고야 만다. 정확히는 꿈꾸는 다락방 이라는 책이었는데, 당시 수험생을 대상으로 절박함 마케팅을 아주 제대로 성공시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이고, 내가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 재수의 원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어, 목표 대학과 학과를 정해 밤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법칙? 그런 거 없어요.. 갔다 온 사람이 말합니다.

그렇다.. 나도 무려 시크릿을 믿고 열심히 뭔가를 끌어당기려 애쓴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얼마나 열심히 했냐면,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이 운동장을 돌며 중얼중얼 주문 비스무리하게 뭘 외우는 나보고 약간 미친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근데 미치도록 대학에 가고 싶었던 나는 실제로 미칠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 당시 끌어당기려던 것을 내 인생에 끌어 당겼냐? 하면 그렇긴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대학 인생에서 크나큰 족쇄가 되어, 심리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말 끌어당김의 법칙은 있는가?에 대해 몇 년간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다.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인간의 인지적 착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효과를 톡톡히 본 사람이면서 끌어당김을 믿기는 커녕 끌만 봐도 손사래를 치며 미간을 찌푸리는 배신자가 되었다.. 여튼 이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좀 더 풀어보도록 하겠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일환으로 입학 전 기숙학원 이층침대에 누워, 나만의 '잠들기 전 의식'을 개발해서 열심히 하며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의식을 만들게 된 계기도 참 우연의 연속이었는데, 당시 기숙학원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여러가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게 유행이었다. 요즘은 심리상담이나 집단상담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세기말적 감성의 우리 기숙학원은 에 무려 최면의 대가 '레드썬 아저씨' 를 모셔와 학원 학생들에게 단체 최면을 걸어 버리는 초강수를 둔다. 

요즘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나 어릴적 레드썬 아저씨는 TV 유명인사였다.

대 강의실에 학생들을 몰아놓고, 진짜인지 짝퉁인지 얼굴도 보이지 않는 레드썬 아저씨가 칠판 앞에 서서 최면을 거는데, 안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재밌게도 나는 최면에 걸렸었다. 약간 신뢰도가 상승해 아저씨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그 때 그 분은 최면을 걸며 혼자서 최면을 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었다. 그 방법에 미스터리한 얘기를 해주기 좋아하던 수학 담당 선생님이 알려준 몇 가지 암시 기법들을 짬뽕시킨 결과,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대학 합격의 간절한 꿈을 안고 나만의 명상 훈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명상 2라운드 : 이제는 명상 마인드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 대학원에 들어왔고, 솔직히 그 동안은 자각몽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매 순간순간 나의 행복을 알아차리며 대학 생활을 했다는게 그나마 명상과 관련있는 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원에서는 더이상 행복을 느낄 수 없었고(느끼면 이상한 사람이다), 그 즈음 명상을 연구 주제로 잡게 되면서 효과 검증을 위한 실험을 짜게 되었다. 


명상에 관심이 있다는 학생들을 만나 같이 팀프로젝트도 진행하고, 그분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체 명상이 무엇일까?에 대해 토론하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들 중 지금까지 명상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아마 나 뿐이지만, 지금도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에서 각자의 명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하 지만 이 시기는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때이기도 하다. 세상이 발전하며, 나도 학술정보원에서 많은 교육을 받아 과거 다음 까페나 동네 도서관의 이상한 장서들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정보에 엑세스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접하게 된 명상에 대한 정보들도 그 질이 훨씬 상승했는데, 그런 정보들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명상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답답함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명상에 대해 내 스스로 나에게 던지는 질문조차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진짜 나는 내가 당시에 바보가 된 줄로만 알았다. 오만 글을 읽어도 '그래서 명상이 뭔데?' 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 준비가 안되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명상을 설명할 때면 나 역시도 이런저런 말을 주워삼키며 정작 본질은 언급하지 못했었다. 

그짓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부터, 명상에 대한 울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악으로 깡으로,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대체 명상이 뭔지 나는 알아내고야 말겠다 라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자꾸 교내 다른 연구실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명상과 관련된 인연을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학교 구석구석을 헤치며 별별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 명상 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명상을 하는지 나에게 알려줬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내 스스로 명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던 몸부림의 결과, 명상을 상태차원으로, 행위차원으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어내기도 했다




명상 실험 짜봤어요? 안 짜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명상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유희라기보다는 생존에 가까웠는데, 어쨌든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논문을 써야 하고, 논문을 쓰려면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명상을 주제로 실험을 해야 하니, 참가자들에게 명상을 시켜야 한다. 통계를 다루는 실험심리학에서는, 신뢰도와 타당도라는 개념을 중요시 하는데, 타당도는 '내가 재려는 것을 재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명상을 재려 하는데, 실험 상황에서는 예를들어 멍때리기를 재고 있었다면, 아무리 좋은 결과가 나와도 그것은 멍때리기의 결과지 명상의 결과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명상'을 하라고 하면 참가자들도 모두 '명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엄청 기초 개념이지만, 정작 내 실험에 적용하기는 어렵더라

<사람들은 항상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대체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은 명상을 할 때 뭘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아내야 했다. 특히 명상을 모르는 초심자에게 명상을 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들에게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손을 뒤집어 까고,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게 해도 명상 행위가 측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숨을 세며 앉아있어 달라>고만 얘기하면, 일단 첫번째로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균질한 눈감기+숨세기+앉기 활동을 할까? 이것도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둘째로, 모든 사람들이 시킨 대로 하나의 균질한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 때의 주관적 경험과 정신활동 여부를 <명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 100명의 사람들이 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를 모두 할 수 있도록 시키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려야 하는가? 가 당시 내가 잡고 살던 화두였다.


재밌는 것은, 실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험의 과정이, 명상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화두를 해결하는 결과와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논문을 쓰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에서, 모두의 주관적 경험이 같을 수 없음을, 심지어 나라는 사람의 주관적 경험도 일관되고 불변할 수 없음을 경험하고 체득했고, 그러면서 나는 연구와 별개로 명상을 통한 자아 탐구에 더욱 빠져들게 되어 버렸다.


우리 연구실의 역사를 통틀어 명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연구실이나 다른 과를 기웃거려도 명상과 관련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쉽게도 얻지 못했거나 한발 늦게 도달했었다. 어쨌든 마지막 학기가 되어, 참가자를 나눠 명상을 하는 집단과 명상을 하지 않는 집단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이유에서 온갖 책과 논문들을 뒤져, 이른바 명상법이라고 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연구실 선생님들과 하나씩 테스트해 보기 시작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내가 시키는 여러가지 훈련법을 체험하면서 각자만의 생각을 담아 다양한 코멘트를 들려주었고, 당시 알파버전이었던 명상 훈련을 몇 가지 업데이트를 거쳐 실험 자극으로 활용되었다. 나는 '초심자를 위한 명상'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잡아 논문 연구를 진행했었고, 실험 결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초심자를 위한 명상 훈련 세트의 프로토타입까지는 나름 개발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마치며


믿거나 말거나 지만, 내가 한 세기 전에 있었던 얘기까지 다시금 꺼내어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당시의 경험들이 나름대로 모여, 지금 소개할 '명상 훈련'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 몇개를 보고 짜집기해서 싸게싸게 팔아먹는 그런 콘텐츠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오랜 기간 부딪혀 깨달은 것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안내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소개하는 명상 훈련법에 대해, 나는 절대로 이 훈련법만이 명상 상태에 여러분을 데려다 줄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언하지는 않겠다. 나 스스로도 명상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훈련의 모든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은 명상 상태에 잘 도달하게 해주지만, 익숙하지 않아 잘 쓰지 않는 방법도 있다. 내가 소개하는 훈련법들은, 명상과 관련한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그 원리에 맞는 방법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각자 정보를 가져가 실제로 경험해 보고, 요긴하면 남기고 별로다 생각하면 버리면 될 일이다. 적어도 과거의 나처럼, 산꼭대기 구름에 쌓인 신비한 비밀과 같은 명상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 뒷목을 잡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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