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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Feb 20. 2022

멍때리기,휴식, 이완과 명상의 관계

이거 다 오해에요 오해!


들어가며

지난 글에서 명상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명상을 하는 것은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고, 지루한 과정이며, 명상에 적합한 사람은 성질 급한 사람 보다는 침착한 사람일 것이며,  명상은 하고 나면 멍해지고 풀리고 이완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멍때리는 것, 쉬는 것과 명상을 엮으려는 시도가 발생하게 되고, 내가 보기에 그건 명상에 대한 오해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언젠가 크게 바이럴이 되었던 멍때리기 대회를 시작으로 불멍, 물멍, 숲멍 등등을 거치며 사람들은 이제 멍때리기를 마치 명상인 것 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멍때리기가 과연 명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생각해 봤다. 그렇다-아니다를 몇 번 왔다갔다 한 결과 지금은 멍때리기, 더 나아가 휴식과 이완은 명상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멍때리기를 설명하면서 명상을 떠올리는 사진을 넣는 신문기사..


사실 이전에도 명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멍때리기는 명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담은 내용의 글을 써온 바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경전을 근거로 하다 보니, 명상에 대해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그냥 그런 것 없이 개념과 도식, 관계성을 이용해 멍때리기와 휴식, 명상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한다.



멍때리기,휴식과 명상의 관계

내가 생각하는 멍때리기, 휴식(이완), 명상 간의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무슨 조폭 곰돌이 같이 생긴 도식인데..

바운더리(선으로 표현된 영역) : 휴식이 당연히 제일 크고, 명상은 휴식보다 더 작지만 그래도 꽤 큰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멍때리기는 아무래도 두 개념에 비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행위이기 때문에 바운더리가 작다.


본질(회색 색칠된 영역) : 각 행위의 본질에 대한 영역인데, 휴식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행위, 방법, 형식)과 그 본질(목표, 이유, 원리)가 많이 일치하기 때문에 색칠된 영역이 크다. 반면, 명상은 명상이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나 방법에 비해 명상이 갖는 핵심 가치는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 있다. 멍때리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색칠로 표시하지는 않았다.


교집합(겹치는 부분) : 세 개념이 겹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겹치는 부분 간의 관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과 휴식의 경우, 교집합의 영역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명상의 본질과 휴식의 영역은 겹치지 않아 휴식을 목표로 명상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반면, 휴식의 본질과 명상은 겹치기 때문에 명상을 통해 휴식을 얻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멍때리기와 명상의 경우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명상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고, 생각보다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명상, 휴식, 멍때리기가 겹치는 지점으로, 도식으로 봤을때 다른 교집합에 비해 굉장히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문제 분석

이렇게 그림으로 정리해 놓고 나면, 문제상황이 보다 더 명확하게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사람들은 노란색 영역을 그 크기에 비해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어서, 명상을 자꾸 멍때리기나 휴식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명상과 멍때리기의 교집합이 클 것(1)이라고 생각하거나, 명상의 본질과 멍때리기 간의 교집합이 있다(2)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명상과 멍때리기의 유사성은 명상과 등산, 낚시 간의 유사성과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은 수준이다. 명상을 하다 보니 멍때리기에서 명상의 맛을 느낄 수는 있어도, 멍때리기를 많이 해서 명상의 본질을 깨달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휴식(이완)과 명상의 관계도 비슷하다. 휴식(및 휴식의 본질)과 명상의 본질은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휴식과 명상이 겹친다는 이유를 들어 명상의 본질과 휴식이 겹침(=명상을 통해 휴식과 이완을 얻는다)을 자꾸 언급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휴식과 이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명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아니고, 명상이 지향하는 궁극적 효과와도 별 관련이 없다.(물론 명상의 본질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휴식과 명상의 본질이 겹침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마음챙김 명상이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


오해는 어디서 오나?

왜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일까? 명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교집합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교집합의 절대적 크기가 바뀌지 않더라도, 명상이라는 개념의 바운더리가 작아지는 것 만으로 교집합의 상대적 크기는 커질 수 있다. 명상을 멍때리기나 휴식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명상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명상에 대한 크기를 잘못 인식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명상에 대해 잘 모르니 명상을 단순하게(=작게)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휴식과 멍때리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도, 명상의 입장에서는 세 개념이 모두 겹치는 비율이 확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상,멍때리기, 휴식 간의 관계



다시, 명상의 정의

여태까지 나는 명상의 정의를 자아 탐구, 고차원의 정신활동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설명해 왔다. 이 대목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명상의 본질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독자 여러분들께 명상의 코어이자 최소한의 영역만을 설명한 것이고, 명상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에 대해 설명한 적은 없다.


내가 정의하는 가장 포괄적인 명상은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들' 이다. 이게 얼마나 광활한 정의냐면, '내가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명상에 포함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랑 같이 밥을 먹을 일이 없는 미국 사람 스미스 씨의 저녁을 고민하는 것이 아닐 테니, 오늘 저녁에 대한 고민은 나에 대한 고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어제 먹은 것, 땡기지 않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하고, 나의 현재 상태에 따라 나가서 사먹을지, 요리를 해야 할 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며, 내가 가진 재료, 혹은 지갑 사정까지 고민해야 한다. 


정해진 식단이 나오더라도, 나오는 반찬 중 어떤 것을 많이 먹을지, 어떤 것을 먹지 않을지 결정하는 데도 다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녁 시간 다 되어 같이 밥먹을 친구가 '야, 배민 주문하려는데 뭐 먹을래?' 라는 질문에 '걍 아무거나~' 라고 답하는 것도 그 이면에는 다각도로 고려했을 때 아무거나 먹는 것이 상관 없다는 꽤 깊은 생각을 바탕으로 의사결정한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의 과정이 명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놀랍게도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 최소 하루에 1번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희대의 난제였던 것이다..!


so what?

실제로 이런 연유에서 나는 과거 내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미 모두 명상을 하고 있다>는 파격적 주장을 펼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큰 나쁜 전략으로 판명됐는데, 사람들이 명상을 더욱 공허하고 허황된 뭔가로 인식해버렸기 때문이다(그럼 명상을 따로 배우거나 해볼 필요도 없겠네~!). 이제는 나는 말물명상설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위의 예시를 든 것은 명상의 바운더리가 크면 한참 컸지, 작게 생각해선 안된다는 기반적 이유를 말하고 싶어서다. 


이것도 명상이고, 저것도 명상이 될 수 있다니. 명상을 탐구하는 초심자라면 이쯤 되어, '그렇다면 '진짜 명상'은 무엇인가?', 나에게 유의미한 명상의 범위는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을 처음으로 안게 된다. 하지만 이 시점에 명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이 이 질문의 답을 구하다 보면 자칫 멍때리기, 이완, 휴식을 명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게 내가 생각해낸 결론이다.


원래 이 다음 문단부터 그래서 멍때리기와 명상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기존의 통념과 달리, 명상을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면 흐름 상 아주 깔끔할 것이다. 실제로 오늘 원래 쓰려던 주제도 그것이었는데, 각각의 개념의 관계에 대해 사전 정리를 하는 게 순서에 맞다 싶어서 조금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다. 보다 실무적인 차원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써 보겠다.


마치며

말로 길게 풀어 쓰려니 어려운데, 사실 명상 상태를 짧게라도 경험해 보기만 하면, 휴식과 멍때리기, 명상이 어떻게 다른지는 단박에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세 개념 간의 관계성에 대한 답도 명상이 쥐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명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쉽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과,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자꾸만 이 세 개념을 섞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대중들에게 명상에 대해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여, 대중적 인식과 명상 간의 괴리를 좁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전략도 물론 필요하지만, 멍때리기가 유행하니 멍때리기와 명상을 적절히 섞어서 안내한다거나, 명상을 설명하면서 휴식과 이완 이외에 다른 것은 배제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좋을 지는 몰라도 명상 생태계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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