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일기예보
매일 아침 눈을 걷고 가장 먼저 하는 일. 마주한 새로운 하루와 내가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 6초. 아직 웅크린 채로 스스로에게, "어째, 오늘 좀 해볼 수 있겠어?" 하며 지난 밤 사이 안녕을 묻는다. 그렇게 천천히 나를 깨우며 오늘의 나의 날씨(기분)을 확인한다.
땀 흐르는 몸을 이끌고 하루를 마구 채워간다. 나는 지나기에 마땅한 달력, 그 숫자들 위를 아주 조심히 구르고 있다. 거길 그렇게 천천히 걷고 뛰고 또 걷고 하다 보면 한번씩 세상을 채운 수많은 노래 중 하나의 곡선이 쪽잠을 자던 후각의 방 문을 와락 열어젖힌다.
그리 번쩍 눈이 떠지면 숫자와 숫자의 틈에 촘촘히 작은 글씨로 일종의 감상평같은 것을 쓰곤 한다. 그렇게 기록한 찰나의 순간들은 이쁘게 오려서 조각조각을 손바느질로 꼬매고 엮으면 하나의 글이 만들어진다.
이번엔 그렇게 모은 조각들로 기억들로 하나의 이불보를 지어보려고 한다. 내 기분을 소중히 다루는게 어려운 내가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대할때 땀이 마르지 않은 뜨거운 몸으로는 끌어안아주기 까진 어렵더라도, 가만히 이불 한 폭을 덮어주고 지나갈 순 있으니까.
내 것이 그렇듯 네 힘듦과 고민들 역시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 하나, 우리가 기억과 기록을 다 더듬어도 미처 찾지 못한 빈칸을 자신의 못남으로 결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도 누가 나를 불러서 “나도 너처럼 너만큼 너같이 용쓰면서 작은 손바가지로 저녁 목욕물을 힘들게 퍼 나르곤 한다.”라고 알려주면 좋겠다.
삶에 대한 지극히 사소하고 주관적인 해석이 듬뿍 묻어있을 예정이다. 평가와 피드백은 달게, 하지만 쓰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으며 삼켜보려 한다. 그렇게 더 나은 방법으로 세상에게, 타인에게,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일 테니까.
가을이 열린다. 창이 입을 벌린 데로 포근하고 시원한 나의 발걸음들이 불어온다. 고마움과 그리움을 한 아름 엮어 너에게 안겨주러 내가 간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는데 난 스스로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내가 겉 멋이 든 여유로운 인간 군상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라 오해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랑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 오해가 정말 '오해'가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사히.
책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수많은 목소리를 담는다. 한 권의 책이 한 가지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기만 하지도, 한 단어가 하나의 의미를 품을 수 있기만 하지도 않다.
난 또 나의 이야기를 믿는다.
우리 일상들 사이에 켜켜이 끼워진 낱말들은 힘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라 했고 아끼는 존재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고 싶어 했다.
대견하게도 몇 차례 꽤나 괜찮은 글과 그림으로 보는 이에게 소소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어릴 때 나의 집 벽장엔 엄마의 책과 나와 동생을 위한 책이 가득히 차 있다 못해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늘어났다.
그 안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진심이, 소원이 담겨있었으리라. 나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책들은 늘 그 나와 우리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있었으며, 언제 펼쳐도 늘 그 사랑과 진심을, 세상을 이길 지혜를, 하루를 살아낼 힘을, 사랑에 대한 책임을 알려줄 준비가 되어있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결국 기어코 나는 책을 지어 올리기 시작했다. 종종 그 안에 글을 읽으며 자주 책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며 남겨진 이야기의 작은 흔적이라도 놓칠세라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나를 꿈꾸게 하는 처음 시작점이 되어준다.
사랑으로 신뢰로 책임으로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아껴주고 싶은 난 내가 고른 방식대로 그 가치를 쫓아 우리를 지켜갈 것이다.
정말 난, 난독증 비스무레 한 것으로 두 행이 넘어가는 문장들을 이해하기도 버거워하는 사람이면서도, 정말이지 책이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도 이따금씩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훔치고 싶은 충동이 울컥울컥 숨 쉬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이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 말해주는 소리들이 문장의 끄트머리를 붙잡아주었다. 운이 좋았다.
책이 나에게 주는 경험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마치 다신 맛볼 수 없음에 그리워지면서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주었음에 고마워지는 -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 동네 음식점의 만두같이 맛있고, 그립고, 벅차오르는 맛 - 같았다.
이야기와 향기를 담은 책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몇 번을 건드려서 말을 걸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인데, 누가 언제 왜 그 문장 앞에 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매체로써의 책을 너무 사랑한다.
책을 만드는 일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줄은 몰랐다. 랑해는 앞으로 이야기를 담는 책을 만들어 나갈 것이고 이 시간이 그 여정의 출발선이 된다.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서툴고 엉성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여정을 이어가겠다.
자정이 넘은 어느 가을밤
내일 나에게 와줄 나의 날씨를 기다리며,
랑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