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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해 Oct 06. 2024

1장 <옆사람 일기 곁눈질>

1-1 준비물 | 선크림, 우산, 여분의 양말 또는 장화.

다른 사람들은 일기를 어떻게 쓸까?


궁금하고 심지어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일기만 그랬으면 좋았을 걸 실은 나는 모든 면에서 그런 식으로 지냈다.


오늘은 아마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어느 수준이 되면 그치겠거니 내리는 비를 제 딴엔 잘 다뤄낸다 생각하고 반나절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 위에 검은 먹구름이 잔뜩, 점점 더, 아주 가득 불어나고 있다.


해가 뜨겠지, 비도 그치겠지?














일기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애치곤 살아온 인생 중에 얼추 절반 이상을 매일같이 일기를 써왔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며 나의 일기는 일부공개에서 비공개로 변경되었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로 채워지는 하루라는 시간은 늘 금방이라도 터질듯 했다. 틈만 나면 그 넘쳐나는 것들을 게워내기 위해서라도 휘갈기는 글씨로 미친 듯이 일기장에 그것들을 토해냈다.


손도 발도 지금보다 작을 때였으니 그 많은 게 내 두 팔을 모두 쓰고 양다리로까지 끌어안아본다 하더라도 감당이 되지 않았었을 것이다. 정리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럼, 그게 들기가 힘들면 참 어딘가 도움을 청할 만도 한데 내 글쎄 속 마음은 오직 나만 알아야 하는 줄 그렇게 꼭꼭 숨겨야만 되는 것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냥.. 다들 평온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다들 그러고 사는 줄.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


아가 지지 마.

오늘 이렇게 싸우면 아마 내일은 조금 버거울 거야.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모양 좀 빠져도 괜찮아.

신 것 깨물었으니까 겸사겸사 눈살 접어 웃어보자.

키를 쥔 건 나야.

안 잊어.

기억할 거야.

지금은 그저 지금을 힘껏 뒤로 밀어내는 중일뿐이야.


~

















모든 게 힘들었던 나를 자꾸만 울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주어진적도 주어질 수도 없는 하나의 품을 그리워하며 자꾸 그렁그렁해진다.


사랑이 담긴 정성스러운 잠자리, 포근한 이불과 베개, 하늘하늘 쓰다듬는 바람, 적당한 손길과 여유로 만든 밥까지 속을 들키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나를 자꾸만 무너트린다.


이왕 단단한 척을 실패한 김에 위로나 되었길.


뜨뜻미지근한 바닥 위로 조심스럽게 부는 바람을 어깨에 묶고선, 살아지는 삶에게 힘을 받아본다.


또 그렇게 지금을 조금씩 조금씩 뒤로 미뤄가길.

찬찬히 쌓으며 걸어가길.


비가 슬슬 잦아들고 있다.

머리 위에 먹구름은 덜어졌고 대신 문밖에 지나다니는 집과 차들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음부턴 장화나 선크림을 안 그래도 무거운 가방에 욱여넣으려 하기보다, 아무 준비 없이 맞는 빗속에서 떨고 있는 나의 몸부터 데펴주기로 한다.




















p.s.


혹시 일기 쓰세요? 아니면 글이나 메모 이런 것들을 평소에 좀 쓰시는 편이세요?


뭐가 됐든, 제 일기도 이렇게 곁눈질하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어렸을 때처럼 보는 사람만을 위해 쓰지 않되,


담 너머로 살짝 훔쳐보는(?) 눈길에게도 모르는 척 뜨듯한 악수를 건네고 싶어서..


글을 쓰는 일이 나를 훨훨 날아가도록 가볍게 하면서도, 한없이 무겁도록 부담스럽기도 해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일기를 안 쓴 몇 년간 가득 쌓여버린 건지 정말


제 일기장에나 쓸법한 내용들이 한 화씩 쌓이기 시작하는 기분도 이상해요.


자꾸 내게 되는 욕심을 좀 진정시키고 천천히 적어 내려가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뵈었으면 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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