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준비물 | 따뜻한 라테, 노트북, 운동화
마음껏 달려도 좋은 계절이 되었다.
바람이 손가락으로 머릿결 사이사이 빗겨주니 나도 마음껏 다리를 구르고 또 구른다.
나는 힘써 일과 나의 경계선을 흐트러뜨려놓았다. 그러다 보니 무척이나 빠르게 달리고 있더라. 어라,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씹어내고 있었구나.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꼬박 뜬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 맞은 아침- 흙을 밟으며 즐기는 산책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날 저녁 하늘에선 햄버거 포장지를 락스물에 스미도록 얹어둔 채 그 옆에 있는 변기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케 하는 냄새가 났다.
비가 모두 그친 후였다.
"고마워 널 사랑하게 되었던 일이 나에게 큰 기쁨이었어."
사랑하길 멈춘 나는 달리고 또 달리며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것은 나의 몸이 아닌 마음을 일깨워주게 하는 장치와 같았다.
더 이상 그 앨 데리고 채울 공간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데 나는 그런 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모른 척해주고 싶었으니까 무릎에 힘이 다 풀리도록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 나는 제 삶의 궤도 안쪽을 들어와 자릴 찾아갔다.
레일을 따랐다.
아마 내일은 좀 푹 쉬어야 할 것이다.
이건 다 하필 바람이 제 맛을 찾은 탓이다.
아침 바람이 제 맛대로 달큼하게 나의 잠을 늘렸다가 시원하게 뇌가 있는 자리까지 푹 적셔주지 않았으면 이러지 않았을 건데.
바람이 등도 받쳐주는데 쿵쿵 고동소리에 박자에맞춰 슥슥 앞길로 내가 떠밀리는데, 이런 내가 가만히 누워만 있을래야 있을수가 있어야 말이지.
P.S. 늦게 와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