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명절 때 집에 갈 차표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인원 제한이 없는 첫 명절이었다. 표가 없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반짝했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걸어가는 거다. 정확히는 집으로 걸어갈 만한 곳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거다. 지도로 보니 영덕에서 포항까지가 적당하다 싶었다. 집에는 설 당일에 도착한다고 이야기하고, 연차를 하루 붙여 2박 3일간 걸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새벽 5시 40분에 기상을 했다. 6시에 현관을 나섰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되물었다. ‘다른 표를 살까?’ 버스가 출발했다. 어쩔 수 없다. 진짜 걸어서 집에 가는 여행이 시작됐다.
11시 20분, 영덕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걸을 방향조차 헤매는데 바람이 세게 불었다. 공사장 인근의 흙먼지를 맞자 서글펐다. 먹고 시작하기로 하고 식당을 찾았다. 한정식 집에서 '한 사람은 안됩니다'를 듣고 맞은편 도로의 국밥 집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나 혼자였다. 밥 먹고 나갈 때쯤 공무원 분들이 여럿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식당을 잘 찾았구나 싶어 마음을 놓았다. 아무 식당이나 잘 가는 나는 식도락파도 아니고, 휴양지나 호캉스 쪽으로는 호불호조차 없어 어떤 여행이든 잘할 걸 알지만 불안해하고 있었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여서 오는 가늘고 긴 불안감 느끼는 중이었다.
여정 시작 신호로 생각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첫날 나는 28.1km를 걸었다. 36,509 걸음이었다. 걷다가 햇살이 너무 강해 잠깐 카페에서 쉴 때야 서울과 강릉에 한파주의보가 내렸고 나는 추위를 살짝 비껴간 경북 영덕을 걷고 있음을 알았다. 지도로 보면 큰 차이가 아닐 텐데 이국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다른 세상을 나의 두 다리로 왔고, 이 두 다리로 가고 있음이 느껴지자 나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선택과 결정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오랫동안 퇴사를 원했지만 정작 이직의 기회에서는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했을 때, 언니와 형부랑 동거인으로 지내다 나와 살기 시작했을 때, 미련이 물러선 자리에 신선함이 동반한 두려움과 설렘을 느꼈다. 그중에서 나는 무엇을 먼저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덜 두려워할 수 있는지를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반복하며 반응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나는 관찰자로 있어도 좋을 만큼 인내심과 여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 지쳐 여행을 떠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 여행이 달랐던 건 여행자인 나를 바꾸어 떠나서였다. 여행지나 먹거리보다 여행자가 테마가 된 나에게로의 여행이었다. 물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보며 나는 대체 왜 여기서 걷고 있는가라는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고개를 들어 몇 발자국 걷다 보면 이내 가방끈 꼭 쥐고는 "가자"라는 혼잣말을 아주 아주 큰소리로 말하던 나를, 컨디션이 매우 매우 좋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