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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ul 14. 2023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계속)

06.

엄마 찾아 삼만리로 2박 3일을 걸어간 여행. 때 되면 발 닿는 곳에서 밥을 먹고, 해 저문 곳에서 잠자는 나그네 여행을 한지도 5개월이 지났다.


‘뻐스시간표, 수퍼.’ 오래된 가게 유리창에 쓰인 틀린 단어를 좋아한다. 외할머니도 항상 버스를 뻐스로 읽으셔서, "할머니 뻐스 아니고 버스예요"라고 하면 “저게야” 라고 하던 기억이 생각나서 입술을 터트리고 웃게 된다. 슈퍼나 수퍼나 거기서 거기인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됐다며 슈퍼 당당한 글자를 보고 있으면 틀려도 안 죽는다. 이쯤은 대충 해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파도가 지나는 자리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자갈 위로 파도가 지나가면 도로로록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가 예술이다. 흙모래 위로 파도가 지나면 바다거품 피어올랐다 뿅뿅뿅뿅 사라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모래와 돌멩이 위로 파도가 지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돌멩이 뒤로 그림자 지듯이 긴 길이 난다. 그림자는 태양만 만드는 게 아니었고, 파도가 만든 그림자는 정말이지 그림이다.          


그냥 서있는 나무인데, 나뭇가지의 곡선이 손짓처럼 느껴진다. 그냥 갈대가 흔들리는 건데, 그냥 파도가 치는 것인데, 그냥 해가 저물 뿐인데 그냥인 것 같지 않아서 핸드폰을 꺼내 꼭 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물론 길에서 거위가 보게 되면 그것은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에 남겨둘 일이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거위를, 오리도 아닌 거위니깐 말이다. 물론 도망가기 바빠 황금알은 구경도 못하지만, 안녕하는 인사는 저절로 하게 된다.          


사람은 빠지지 않는다. 길 가다 육교에서 스트레칭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할머니의 동작을 내가 더 멋스럽고 유연하게 따라 한다. 이내 할머니와 눈 마주치면 소리 내어 인사한다.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의 시집가지 않은 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이 설 연휴임을, 연휴라고 걸어가는 내가 굉장히 속 편한 사람임을 안다. 조심히 가라며 배웅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남겨두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할머니와 내가 육교에서 체조하다 만났단 걸 새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진이 선영이. 부경. 배 표면에 아는 이의 이름이 보이면 곧장 찍어 카톡행이다. 어선에 왜 친근한 이름이 적혀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보고 생각났다며 즐거운 설 연휴 보내라는 짧은 인사를 위한 훌륭한 이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걸으면서 말이 참 많았다. 오가다 본 많은 대상과 소리 없는 대화를 곧잘 했다. 이러면서 걸었구나. 이러려고 걸었구나 싶다. 그렇게 두 번째 날도 33,261보를 걸었다.     


그중 가장 진득한 대화는 이 사람과 했다.          


<너로 시작해서 나로 도착하기까지>     

너가 몇 날 며칠을 걸으러 간 날

정말로 연락이 되지 않아

마음이 잿가루처럼 부서졌던 며칠          


홀로 걷다 본

바다와 태양의 전쟁, 승리의 윤슬

개구리헤엄으로 시합하는 수십 개의 파도

바람이 밀어주는 그네 타기          


같은 짐 메고 다른 고민 이고 가는

여행자에게 건네는 포춘 쿠키 하나          


나이 들어 고생 말고 무릎 아끼라는 이방의 할머니와

균형을 잃지 말라는 갈매기 날갯짓          


기다리는 사람 없이 걸음 재촉 않고

온통 새들의 언어인 곳으로 바람의 놀이인 곳으로

다녀오고 싶었단 걸, 알겠다          


인간의 말로 잔인하다며 원망을 들이밀어

조금 놀랬고 조금 많이 싫었겠다

오래전의 일인데 난 울게 된다

너한테는 미안하고

나한테는 이마저도 이해하나 싶어서          


포항바닷가에는 네 친구가 한 명 있댔고

내 친구, 내 가족, 내 사람은 하나 없어          


방파제 둘러싸여 넘실대는 바다만이

여기서 네 생각을 맘껏 하라고 지켜주는 듯하다


전화는 차마 참아

괜히 더 울어보고

남은 건 글로 썼으니          


종이에 묻혀둔 마음

썰물 빠지듯 멀어지면 좋겠다          


이러면 괜찮아진다는 걸

알 수 있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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