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여행 셋째 날의 여정은 간결했고 긴급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숙소에서 나왔다. 어젯밤 해 떨어지자 급격하게 어두워진 길에서 잘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했다. 내가 찾은 곳은 입구에 커다란 타이마사지 광고와 목줄이 단단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개가 있고, 건물 주변으로는 가로등이 없어 뭐가 나타나도 무서울 수조차 없는 어둠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에는 출타 중이니 현관에서 알아서 키를 가져가라는 안내에 나는 괜히 한 번 더 침을 꼴깍 삼켰다. 키를 들고 들어간 첫 번째 방이 청소가 되지 않았을 뿐인데 나는 서러워 안 되겠다며 다른 객실로 방을 옮겼다. 처음 와봤지만 익숙한 이곳은 어릴 때 TV에서 보았던 난투극이 벌어질 것만 같았고, 아니 커버가 부서진 변기는 지난 혈투의 결과처럼 보였고 나는 패딩을 침낭 삼아 그대로 입고 잠든 채 날 밝은 대로 나왔다.
친한 언니에게 식겁하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대체 어떤 곳이냐며 궁금해했고 나는 시멘트가 깨진 주차장 입구며, 쇠목줄을 하고 있는 큰 개와 타이마사지 광고를 나열하면서 어제의 불안을 반복했다. 지역 출장이 잦은 언니는 수화기 너머로 놀랬겠지만 자기는 그런 곳도 괜찮다고 했다. 두 번 오고 싶은 곳은 아니지만 패딩까지 입고 잘 곳은 아니었나 통유리로 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 나는 여행의 종착지를 향해 걸었다. 낮 열두 시쯤 죽도시장 인근에서 아빠와 조우하기로 했다. 이 만보쯤 걸어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설 당일에 포항으로 가게 될 거라며, 아빠 혼자 오면 대게를 사고 가족들이랑 같이 오면 과메기를 대접하겠다고 이래나 저래나 사랑한다며 포항까지 와달라는 나의 주문에 아빠는 정말 포항으로 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사실은 2박 3일 간 걸어왔다며 그간 얼마나 걸었는지 행군과 비교해 가며 신나게 떠들었다. 아빠는 위험하다 해도 여정 직후에 나는 모든 게 괜찮게만 들렸다.
그날 일기장에는 이렇게 썼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하루를 걸어 낸 날에도 그만둘까 망설이며 불안들이 있었지만, 별표 치고 나는 해냈고, 별표 치고 해냈단 이야기를 할 때 성취감에 신나서 너무 좋았다’고 말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성취감에서 자신감도 얻고 위로도 얻었던 것 같다. 하나 해냈을 뿐인데, 이 말을 얼마나 오랜만에 해보는지, 그리고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를 생각했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실패의 경험으로 기죽고 작아진 내 앞에 오랜만에 어깨 펴고 활짝 피어난 다른 내가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느낌이었다. ‘성취가 위로도 되는구나. 그래, 하고 싶은 걸 하는 힘이 이런 거지.’
영상이었는지 책자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건 흔치 않으므로 꼭 하라했다. 조금 모자란 능력 때문에 조금 부족한 용기에 하지 못함으로 남겨두었던 답답함 그 위로 곱표하고, 했음에 동그라미를 했던 이번 여행. 많은 대화와 감정이 두 다리와 함께였다. 여행을 잘 끝냈다고 말하는 나는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