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대학가 앞에 살 때. 친구와 어떤 삶을 살지 한참 떠들다 불안을 핑계로 사주카페를 갔었다. 이런 걸 잘 맞추더라 저렇게 말하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 하는 곳에서 내 미래에 관한 믿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 소박하지 않은 기대를 안고 한 아저씨 앞에 앉았다. 그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돈만 많았으면 마더테레사가 됐을 텐데.” 처음 듣는 씁쓸한 표현이 좋았던 걸까. 까먹지 않는 말이 되었다.
돕는 행위를 좋아한다. 사회가 권하는 행위를 잘한다. 좋아서 하는지 시켜서 하는지 구분 않고 열심히 한다. 그럭저럭 맞는데 세 번째가 가장 맞다. 주 3회 운동하고, 고기는 되도록 덜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책도 읽고, 저축도 열심히 하고, 회사에선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친구와 가족이랑도 잘 지내고, 봉사활동도 하고 정말 사회가 권하는 인간상에 부합하는 삶을 산다. 그러면 나는 정말 잘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의 나는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한 장면을 보았다. 뭐든 잘하는 주인공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교차하며 만난 청소 아주머니에게도, 분갈이를 하는 미화 아저씨에게도, 건물에 있는 미용실 사장님과는 심지어 청첩장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내가 살고 싶은 모습에는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늘 휴지통을 비워주는 청소 아주머니가 간이벽으로 구분된 화장실에서 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는 게 신경이 쓰였다. 그분께 연말을 이유로 커피가게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연말이니깐 편의점에서 커피와 에너지드링크를 사서 경비아저씨들께 건넨다. 내 하루의 첫 대화는 선생님들과 하는 인사인데 기분 좋게 받아주셔서 시작이 늘 좋았다고 감사하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고마움은 꼭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연말이 좋다. 시간이 명분이 되니 말이다.
돈만 많았으면 마더 테레사가 되었을 거란 말을 참 잊지 않는다. 이제는 살짝 바꾸어 돈 많으면 마더 테레사가 될 준비를 하는 듯하다. 테레사 엄마. 모두의 엄마처럼 고귀했을 그녀의 삶. 나는 그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이번 달 잘 쓴 돈에 커피 한 잔 값, 선물 지출 칸에 음영을 주며 다음 달에는 더 자주, 더 좋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뿌듯한 나는 바란다. 내가 더 자주 할 수 있게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돈을 더 잘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