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어르신의 한마디가 남긴 생각
어제 저녁, 한 분의 한국 어르신과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식당을 찾아왔다. 이미 저녁을 먹었다며 맥주와 소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간단한 안주를 달라 하셨다. 쭈꾸미 튀김 두 접시에 여섯 명이 생맥주잔을 부딪치며 연거푸 소주를 섞어 마셨다. 밥을 먹고 왔어도 술만 급히 마시면 금세 취한다. 잠시 후, 어르신이 나를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꺼내셨다.
“사장님, 우리가 선착장에서 택시를 타고 나오는데, 오토바이를 탄 마피아들이 ‘왜 자기 오토바이를 안 타고 택시를 타느냐’며 시비를 걸더라고요. 여기 사시니까, 혹시 그런 사람들 알고 계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 항구는 현지인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고,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설명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나를 쏘아보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여기서 살면 어떡해요!”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싶었다. 괜히 시비를 거시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애써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그분이 또다시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장님도 이런 데 와서 사는 걸 보니, 인생에 우여곡절이 좀 있으셨던 것 같네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그래도 여기 오래 살면서 가족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좋아요.”
그런데 어르신은 곧 이렇게 덧붙였다.
“아까 그 마피아 놈들도 그렇고, 베트남은 마음에 안 들어요. 잘 살지도 못하는 것들이 자존심만 세가지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중국도 우리보다 못 살 때가 있었지만 자존심은 있었잖아요. 사회주의 국가들 나름의 자존심 아닐까요?”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지. 사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 ‘상국(上國)’이었잖아. 그러니 중국은 그럴 수 있어도, 베트남 놈들은 이러면 안 되지.”
더 말해봤자 감정만 상할 것 같았다. 나는 일을 핑계로 매장 밖으로 나왔다. 조금 후 다시 들어가 보니, 그분은 술기운에 머리를 꾸벅거리며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택시를 불러 그분을 부축해 나갔다.
모든 게 조용히 정리되었지만, 그분의 마지막 말이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베트남의 ‘소중화(小中華)’ 사상
“잘 살지도 못하는 것들이 자존심만 있다.” 그 말은 틀린 게 아니라,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베트남의 자존심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천 년 가까이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중국의 문자와 제도를 받아들이되, 그대로 복사하지 않았다. 유교,불교,도교를 융합하고, 중국의 천명사상을 ‘우리 백성을 위한 하늘의 뜻’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세운 개념이 바로 ‘소중화(小中華)’다.
즉, '우리가 중국의 작은 버전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는 중국과 다른 방식으로 문명을 완성했다'는 문화적 선언이었다. 그건 오히려 강자의 문화를 흡수해 자신들의 것으로 바꿔낸 ‘지적 저항’이자 ‘문화적 생존 기술’이었다. 그래서 외부인이 보면 자존심이 세고, 때로는 불필요할 만큼 민감해 보이지만, 그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이 만든 방어막이다.
서로의 자존심을 이해하려면
나는 그날 그 어르신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잘 살지도 못하는 것들이 자존심만 있다’는 말보다, ‘자존심만이라도 지켜 온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고.
한국도 오랜 세월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았듯, 베트남 역시 굴욕의 역사를 이겨내며 오늘의 독립을 세웠다.
결국 자존심은 부딪히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자존심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다. 다른 문화의 자존을 인정할 때, 내 자존도 더 단단해진다. 서로의 상처와 자존심을 깎아내리기보다, 그 다름을 지켜온 힘에 경의를 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만남의 시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