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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n 05. 2024

베트남 직원의 은폐와 침묵

베트남 빠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베트남 현지 직원들과 생활을 한 횟수가 15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하나도 변하지 않은 점을 말한다면, 과실과 문제에 대해 은폐하고 발견되어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개선을 생각할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냉동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야기다. 

 저녁 매장 다운작업을 하면서 근무자가 전체 전원을 꺼버리는 바람에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냉동쇼케이스가 작동하지 않아 아이스크림이 모두 녹아버린 것이다. 직원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zalo 단체방에 "어제저녁에 누가 다운 작업을 했으며, 전기 배전반은 누가 확인했느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매니저가 3명이고 파트타이머가 6명인데 아침 7시에 보낸 메시지에 12시까지 어느 누구 하나 어떠한 메시지도 보내오질 않았다. 심지어 매니저들 중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이런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절대 문제가 생겨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입을 다물고 몸으로 버티는 것을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어서 '그러려니!'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대로 가면서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오전 내내 머리가 멍해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선임 매니저가 매장 문을 열고 내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 눈치를 살피며 내 행동에 따라 대처하려는 지극히 방어적인 자세이다. 내가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며 핀잔 정도로 끝내면 잘못했다는 말도 없이 '다음부터는 이런 일 안 생기게 하겠다'라는 정도로 얼버무리며, 없었던 일처럼 지나갈 것이다. 엄청 화를 내면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버티기로 전환할 것이다. 폭력은 쓰지 않을 것이고, 배상을 하라고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저 버티면 되는 것인걸 잘 알고 있다. 진짜 배상을 하라고 하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을 늘어놓을 것이고, 난 그 변명에 더 화가 나서 악화의 길로 갈 것이 분명했다. 


 매니저에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 왜 메시지에 아무런 답변도 없이 이제야 온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일어나 메시지를 보고 놀라 지금 달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오후 근무자 출근시간인 2 시인줄 알았는데 그 답변을 듣고 확인을 해보니 12시였다(내 노트북은 한국시각으로 설정되어 있다). 매니저는 어제저녁 직원이 전기 전원을 끄기는 했는데, 자기가 교육을 잘못해서 전체 전원을 끄게 된 것 같다는 답변을 하였다. 매니저의 답변을 듣고 난 후 머릿속에 뭔가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하는 것보다는 내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 매장에 나가니 매니저 한 명이 다가와 답변을 하지 않은 점 죄송하다고 한다. 물론 아까 내가 선임 매니저에게 매니저들이 책임감이 없다고 한 말을 전달해서 내게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자기 매장에서 발생한 일도 아니니 자기에겐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고 내 기분만 잘 맞춰주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잘못했다”라는 말을 쉬이 하면서도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가 있다. 실제 어젯밤 배전반을 잘못 조작한 직원은 나를 보고도 입을 꾹 닫고 슬슬 눈치만 본다. 속으론 내가 잘못을 얘기하면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며 변명을 하며 자기 방어를 할 것이다. 매니저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과실 범위를 따지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정리하였다. 선임 매니저를 불러 단독으로 얘기를 했다. 난 너를 더 신뢰하고 믿기로 했다고. 그 이유는 1. 매니저가 2시 출근시간에 온 줄 알았는데 12시에 매장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달려온 것을 보면 책임감이 있는 것이며 2. 배전반을 조작한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하지는 않았지만 관리자로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마지막 점검도 자신이 하지 않아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 점 3. 아이스크림 쇼케이스를 정리하고 고객에게 새로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점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다음 매니저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또한 최종 점검을 하지 않으면 문제는 순간 발생한다는 것을 주지 시키며, 그 업무를 우리가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직원, 책임감 없이 나 몰라라 한 매니저들에겐 내가 직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나하나 붙잡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교육하고 깨닫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일상이 되어 있는 문제에 대한 은폐, 그리고 침묵이 계속되는 한, 베트남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듯 하지만 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희망을 발견했다는 점에 만족하는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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