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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n 10. 2024

배려를 이용하려는 베트남 사람

배려를 권리로 생각하는 베트남인

 베트남에 처음 입국하여 길거리에서 느끼는 그들의 환한 웃음과 "Hello"라고 살갑게 건네는 짧은 인사에 '이곳은 편할 수 있는 곳이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만나는 처음 보는 아이들도 수줍어하면서도, 당당하게 영어를 할 줄 안다는 표정으로 내게 "Hello" "Where are you from?"을 당당하게 건네는 모습을 보면 인간미가 넘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매장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보면 다가가 말도 걸어볼 수 있고, 등도 토닥거려 줄 수도 있고, 아이의 엄마는 내게 아이를 건네 안아보라고도 한다. 정말 내가 자라났을 때나 가능한 일들이 여기 베트남에선 지금도 쉽게 이루어진다. 직장에서도 어떤 때 보면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서로 열심히들 챙겨주고 아껴주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 베트남 직원들의 마음 안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사장이나 직장 상사가 '아껴주고 배려해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고스란히 그것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일까?' 아직도 이 두 가지 답안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을 가진 베트남 직원들인 것 같다. 딸과 같은 나이의 매장 매니저는 아침 일찍 한국의 전문대학과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평일 수업이 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겐 오후 근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교육비도 만만치 않아 매달 목표달성고과 추가 달성분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를 같이 만들어 나가자고 격려를 하였다. 두 달 정도가 되었을까? 매니저가 자기가 아르바이트처럼 12시에 출근해서 8시에 퇴근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기가 찼다. 하지만 넌 관리자이니 적어도 오픈 또는 다운 작업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하니, 업무가 벅차서 일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곤 근무시간에 자리에 앉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있는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척 하지만, 누구에 눈에도 보이는 게으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면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고, 매장에 나와 정리를 하고 어머님께 한 주 안부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마을 주민들과 쇼핑몰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료를 드리면서 지난 한 주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다.

 평상시처럼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이 매장 앞을 지나가길래 불러 알로에 음료를 건네려 하니 이건 싫고 ‘아침햇살’ 쌀 음료를 달라는 것이었다. 모른 척하고 알로에를 다시 건네니 저걸로 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치 주인이 지시를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기가 차서 "됐다. 가라"라고 손짓을 하며 매장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돌아와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냥 달라는 것을 주면 될 걸 왜 괜스레 속으로 화를 내고 있나!’

 ‘감사할 줄도 모르는 작자들은 호의를 받을 자격도 없어!’

 ‘네 욕심 때문에 다른 미화원들도 다 음료를 얻어먹긴 글렀어!’ 등등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베트남 시민들 중엔 아직 ‘감사’에 인색하고, 남의 호의를 마치 자기의 권리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설 연휴에 기업에서 지급하는 퇴직금도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13개월째 월급이라고 불리는 보너스는 원래 연봉제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일 년 단위로 연봉에 대한 중간정산, 퇴직금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노동자들은 매년 그렇게 받았으니 그건 당연한 보너스이고 퇴직을 할 경우는 퇴직금을 일한 년수에 맞춰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 심한 것은 13개월째 월급이라고 받고 별도 보너스를 또 요구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루는 매니저가 출근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여 귀가해 가족을 챙기라고 했고 그날은 출근을 한 것으로 처리를 해 주었다. 며칠 후 그 매니저가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인데 메시지가 와서 집안에 일이 생겨 쉬어도 되겠냐고 하길래 그러라고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월급 지급을 위해 휴일 수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날 버젓이 근무를 한 것으로 보고를 했다. 그를 불러 그날 쉬지 않았냐고 물으니 자기가 쉬어도 되겠냐? 고 물어보았고 내가 허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그날 근무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휴무처리 해야 한다고 말하니 지난번엔 집에 가게 하고 휴일처리를 안 해 놓고 이번엔 왜 휴일처리를 하냐며 도리어 따지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그날도 휴일처리 해줄까?”라고 하자 꼬리를 내리고 “알겠다”며 고개를 떨군다.

 

 ‘한국 주재원과 관광객이 골프장 캐디 팁과 가라오케 팁 물가를 다 올려놨다’는 말도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손발이 딱딱 맞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기는 관광으로 왔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줘도 자기에겐 적은 돈이라고 생색내며 팁을 과하게 주게 되는데, 그다음부턴 그 팁을 받은 캐디나 도우미 여성은 자기는 당연히 더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국인한테는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권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직원들을 생각해서 조금 풀어주면 그게 당연한 것으로 변해 버리고, 뭔가를 해 주면 다음부터는 그것이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지적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그런 문제가 발생해 혼을 내면 '전에도 그렇게 했는데 아무 말 없었는데 왜 이 번엔 이게 문제가 되는가!'라는 식으로 당당해져 있다. 그렇게 해맑게 웃다가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손해라도 생길라치면 언제든지 등 뒤에 숨겨 둔 칼을 당당하게 꺼내 들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서운 생각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직원들에게 작은 일에도 반드시 반응하도록 항상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있다. 내가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할 때 반드시 서로 큰 목소리로 “반가워요” “조심해 가세요” 등의 인사를 하게 하는 것.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목소리 내서 표시하도록 하는 것. 예를 들어 물건을 옮겨 주거나, 매장 문을 열어 주거나 했을 때에도 꼭 인사를 하도록 습관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실수를 했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정 주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선배들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베트남에서 이들과 같이 살고 성공하려면 그래도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마음을 열고 정을 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다짐했던 마음이 순간순간 깨져 나가는 것이 진정 베트남 사람들 현실인 듯하다. 

 좀 더 많은 베트남 시민들이 ‘감사할 줄 알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개인의 삶과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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