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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만 May 27. 2022

뒷산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산 어른들도 종종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다. 며칠 전에 앞집 김 씨 아저 씨도 버섯을 따러 갔다 홀렸다. 이틀 만에 거지꼴로 겨우 집에 돌아 왔다고 했다. 사방을 돌아봐도 시퍼런 나무밖에 없는 숲속을 헤매면 서, 아저씨도 이 집을 보았을까? 술이나 마시고 산을 타니 헛것을 보 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 홀려 버린 게 아닐까? 땀으 로 흥건한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무대 단상에 오르기 바로 직전처럼 가슴이 쿵덕거렸다.

 이 동네는 시골 중의 시골이다. 옆집은 당연하고 건넛집 사돈의 팔 촌까지 서로 알 정도로 작은 곳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부근에는 사람 이 살지 않는다. 여기에 집이 있었었나? 꼭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것 같은 기와집이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대문도 없고 그렇게 으리 으리하지도 않았다. 조금 전까지 귀가 따갑게 울어대던 산새들도 조 용했다. 내내 흐르던 개울물 소리마저 멎었다. 초여름 산은 이렇게 고요하지 않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와집을 살폈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최대한 발자 국 소리를 내지 않고 집 앞까지 걸어갔다. 툇마루의 채소 바구니, 섬 돌 위에 놓인 낡은 신발 한 켤례. 집이 가까워지니 사람이 사는 흔적 들이 보였다.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절벽이었다. 하지만 허리까지 오는 풀 들과 나무들이 빽빽해서 바로 앞에 개골창이 있는지 길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산에서는 이런 곳이 위험하다. 난 저 커다란 밤나 무 바로 아래에 있는 개구멍을 통해 이곳으로 올라왔다.

 5, 6학년들은 한 달에 한 번 커다란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학 교 뒷산부터 시작해서 동네를 돈다. 껌 종이, 술병이나 담배꽁초 따위 를 줍는다. 정말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이다. 아무튼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몸은 쓰레기를 줍고 있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 었다. 바로 내일이 고대하던 웅변대회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 줄이라 도 더 원고를 읽고 외워야 했다. 내일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야만 전국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워 선생님 몰래 원고를 힐끔힐끔 읽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키 큰 나무들로 우거진 산은 대 낮에도 어둑했다. 산비탈 아래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어 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다시 원고를 보려는데 무언가 내 눈길을 끌었 다.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기역자로 꺾어지는 곳에 개구멍이 있었다. 저기에 저런 게 있었나? 꼭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처럼 사람 하나가 딱 들어갈 크기였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궁금하지? 올라와 보고 싶지 않니?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누구 계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내딛고 다시 인사를 했다. 역시나 조용했다. 시장에라도 가셨는지 기와집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잠시 잊었던 웅변대회가 떠올랐다. 뭐,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 나는 집 앞 완만한 경사지에 철퍼덕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가여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웅변 원고다. 수십 번을 접었다 펼친 원고지에는 빨간펜으로 느낌표와 이 음줄 따위가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양치기 소년은 목이 터져라 외 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원고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어른들은 이 이야기가 ‘사 람들은 거짓말쟁이의 말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믿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편견에 빠지 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좋아하는 동화이기도 하고, 웅변대회 주제와 도 잘 어울려서 원고에 넣었다. 동화를 인용했다고 유치하다고 생각 하진 않겠지.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나와 반장이 학교 대표로 도 대회에 나간다. 전교 일 등에 부모님이 모두 선생님인 반장의 원고는 내가 봐도 완벽 했다. 웅변 지도 선생님이 고쳐줄 부분이 없었을 정도였다. 어른들이 나 쓸 법한 어려운 단어들도 있었다. 혼자서 쓴 원고와 비교를 해보니 주눅이 들었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으셨다. 대회 날 꼭 태워다 주셔야 한다고 매일같이 말씀을 드렸다. 오늘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말씀을 드렸는데 과연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자꾸만 같은 곳을 틀려 서 초조해 죽겠는데, 대회장까지 무사히 가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애 꿎은 입술만 자꾸 깨물었다. 혀끝에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그제야 불 쌍한 입술을 놓아주었다. 여차하면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괜찮다. 스스로를 달랬다. 반 장네 부모님께서 태워주신다고 하셨지만 그건 왠지 싫었다. 반장은 또 내일 얼마나 예쁘게 하고 올까?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불안으로 변해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나는 또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말았다.

 한탄해야 부질없다. 원고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목을 가다듬었 다. 원고는 외울 만큼 외웠다. 문제는 손동작이었다. 손에 신경을 쓰 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목소리에 힘을 주면 손이 멈추곤 했다. 당장 내일인데 아직도 어색해 하면 안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충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툴툴 털었다. 마침 몇 발자국 앞에 판판한 바위가 있었다. 실전처럼 연습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위에 올라섰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겠다. 배에 힘을 잔뜩 주고 내질렀다. 그런데 저 앞 절벽 쪽에서 바스락 대는 소리가 들렸다. 앗, 쪽팔려 진짜. 누가 들었나 봐.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후끈해졌다. 그 순간 내 몸집 만 한 개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컹컹 짖는 소리가 어찌나 크고 사나운지 그대로 뒤로 굴러 넘어지고 말았다. 긴 다리가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코앞까지 다가왔다. 공포에 질려 눈을 꼭 감고 말았다. 아 직 물리지도 않았는데 몸이 멋대로 움찔댔다. 개가 어찌나 빨리 달려 왔는지 바람에 앞머리가 흩날렸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개를 자극할 것 같아 감은 눈을 뜨지도 못했다. 귀에 온 신경을 쏟았 다. 입안에 군침이 가득한지 내쉬는 숨이 고약하게 축축했다. 사냥감 을 일부러 바로 죽이지 않고 괴롭히는 맹수들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딱 그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유서도 아니고 웅변 원고를 남기고 이 대로 죽는 건가.
 “이제 괜찮아. 눈 떠도 돼.” 
난데없이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서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사 나운 개 대신 처음 보는 꼬마가 서 있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까? 둘째 동생보다 어려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귀를 그렇게 쫑긋 세우고 있었지만 누가 걸어오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얼른 개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그런데 얌전히 네 발을 모 으고 앉아있었다.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대고 있었다. 긴장이 풀 린 나는 그제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너 이 집에서 사니? 저 개도 네 개고?” 
 아이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통통한 볼에 눌린 입술이 병 아리 부리처럼 톡 튀어나와 있다. 그나저나 우리 동네에 이런 애가 있 었나? 나도 모르게 아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지 이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새하얀 피부다.

“꼬마야, 부모님은? 집에 아무도 없어? 응? 꼬마야, 너 이름은 뭐 야?”
 비명횡사할 뻔한 것도 금세 잊어버리고 질문을 쏟아냈다. 산속을 이렇게 어린아이가 혼자 다니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내가 다 걱정이 되는데 정작 아이는 태평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다 그 까맣고 동그란 눈이 내 손에 들린 원 고에 꽂혔다. 밀가루 반죽 같은 뽀얀 미간을 찌푸리곤 원고와 내 얼굴 을 번갈아 본다. 어쭈? 제법 진지한 모습에서 신문을 읽는 아빠가 보 이는 듯했다. 나도 말없이 아이를 보았다. 그러다 문득 돌아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있잖아. 나는 이제 가보려고 하는데, 저 집이 너네 집이니? 아니 면, 집이 어디니? 누나가 데려다줄게.”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산에 꼬마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 다. 이번에도 대답을 안 하려나 했는데 아이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두 손이 너무 차가워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내일. 아줌마, 아저씨들이 누나를 도와주려고 하네? 그치만, 도움 을 받으면 일등은 못해.” 
 아직 여물지도 않은 입에서 무당이나 할 법한 말이 나왔다. 당황스 러운 한 편, 일기장을 들킨 것처럼 민망해졌다. 몇 주 내내 머릿속에 는 웅변대회와 일등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꼬마가 뭘 아는 건가? 목 뒷 털이 서는 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꼬마가 뭘 알겠어? 일부러 태연한 척을 했다.
 “무슨 소리니? 너 여기 사는 거면 나는 그만 간다.”
 나는 잡혀있던 손을 빼냈다. 붙들려 있던 내 손이 싸늘해졌다. 왠지 모를 긴장으로 손바닥에 배어 나온 식은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개울에 빠져 축축했던 바지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주머니에 다시 원 고를 꼬깃꼬깃 접어 넣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만 내려가야지 하 는데 갑자기 대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오래된 나무가 죽기 전에 지르 는 비명 같은 께름칙한 소리였다. 문이 열리자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 니가 나왔다.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서 상아색 비녀로 쪽을 진 머리다. 옷도 꼭 스님들이 입는 것 같은 옷인데, 작은 체구에 비해 품도, 바지 통도 너무 커 보였다.
 “길을 잃었누?”
 꼭 기와집 만큼 오래된 목소리였는데, 친절한 말투와는 달리 눈길 이 매서웠다.
 “죄송합니다.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어요.”
 마치 현장에서 잡힌 도둑이 된 것 같아 얼른 사과를 드렸다.
 “나가는 길은 알고 있고?”
 “네, 왔던 대로 다시 돌아가려고요. 멋대로 들어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곤 뒤로 돌아 개구멍 쪽으로 걸었다. 전설의 고향 에 나올 것 같은 기와집도 그렇고, 여기서 만난 모든 것들이 이상했 다. 반장이 이런 걸 석연치 않는다고 했었나?

 “학생. 이렇게 온 거 밥이나 먹고 가렴. 할미 혼자 먹으려니 적적하네.”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가 어 느새 바짝 쫓아와 있었다. 혼자 드시기는 저기 손자가 서 있는데? 나 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꼬마를 쳐다봤다.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고 개를 도리질하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밥 먹을 생각 말고 가던 길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거절하려는 걸 눈치챘는지 할머니가 한 번 더 재촉한다. 아무리 할머니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며 뛰다시피 걸어 개구멍으로 미끄러졌다. 
 흙투성이의 터널을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개구멍을 빠 져나오자마자 개울물 소리, 산 새 소리, 풀벌레 소리로 금방 귀가 시 끄러워졌다. 흙먼지를 먹었는지 콜록, 기침이 나왔다. 엉덩이를 털고 옷이 튿어진 데는 없는지 몸을 살폈다. 청바지가 축축했다. 이번에는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개울을 건너 산책로로 올랐다. 어라? 아직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내가 없던 사이 기합이라도 받았나? 조용히 짝꿍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짝꿍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오늘은 뒷산 쓰레기만 줍는대?” 
 나는 재차 물었다. 
 “서서 졸았냐? 우리 방금 왔잖아.” 
 웃기는 소리를 한다고 덧붙인 친구가 다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한참을 있다가 왔는데 아직도 같은 자리라니. 선생님 을 힐끔 봤다.
 “꾀부리지 말고 성실히 합시다.”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걸 모르는 눈치 시다. 정말 걸으면서 잠깐 졸 기라도 한 건가? 무엇에 홀린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엄마. 학교 뒷산에 기와집 한 채 있던데, 누구네 집이야?”
 “요즘 세상에 무슨 기와집이니?” 
 엄마는 빨래를 개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하셨다. 나는 엄마 옆에 쪼 그려 앉아 마른 옷을 집어 들었다.
 “그게 그러니까 기와집이 있더라니까, 할머니랑 꼬마애가 살던 데?”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씀드렸다. 피곤한 얼굴 의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묵묵히 옷만 정리하셨다. 내 이야기가 개 구멍에서 빠져나와 다시 행렬로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왔을 즘 엄마 는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잘랐다.
 “이야기 다 끝났니?”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의 얼굴이 ‘이 정도면 네게 관심을 많이 줬 으니 이제 만족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말을 믿지 않으 셨던 거다. 서운함이 단숨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맏이 니까 참아야 했다. 엄마는 너무 바쁘니까 한가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미안해 엄마. 피곤할 텐데.”
 내 옷을 챙겨서 방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이 방바닥에 엎드려서 그 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까 할머니가 밥을 먹자고 했지만 거절했던 이 유는 께름칙해서만이 아니었다. 동생들의 저녁을 챙겨줘야 했기 때 문이다. 아빠는 늘 야근으로 바빴고, 엄마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 어지는 갖가지 부업으로 바빴다. 그래서 동생들을 보는 건 내 몫이 되 었다.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다. 방바닥에 엎어진 동생들을 식탁에 앉혔다. 먹기 싫다는 동생들을 협박해 밥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나니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제야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새로운 원고지에 옮겨 쓰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 러워졌다. 방문을 조금 열고 밖을 살폈다. 아빠와 김 씨 아저씨가 오 셔서 그렇게 시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술이 질리지도 않냐는 엄마의 타박 소리도 들린다. 오늘도 술을 드셨구나.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허 구 헌날 주야장천 술을 마시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넉살 좋은 김 씨 아저씨는 잔소리를 듣는데도 웃기만 하셨다. 문득 김씨 아저씨 가 술에 취해 산속을 헤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저씨면 그 집 을 보지 않았을까? 산에서 이틀이나 있었다던데. 그러다 문틈 사이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 오셨어요? 김 씨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훔쳐본 것이 멋쩍어서 어색하게 인사를 드리고 말았다.
 “어 그래, 짜식, 내일 동생들이랑 까까 사 먹거라.”

용돈으로 만원이나 주셨다.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드렸다. 나는 술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저씨를 따라 반건조 오징어를 죽죽 뜯었다. 아빠는 이미 만취했다. 양반다리로 앉아 무릎에 팔꿈치 를 괴어놓고, 턱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기우 뚱 할 것 같다.

 “아저씨, 그런데요. 저기 뒷산에 큰 기와집 혹시 보셨어요?” 
 “기와아아집?”
 아저씨한테 물었는데 아빠가 대답한다. 갑자기 턱이 움직이니 괴 어놓은 팔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대로 꽈당. 바보 같은 모습이 뭐가 재밌는지 김 씨 아저씨가 시끄럽게 웃는다. 한심한 어른들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아빠, 내일 저 웅변대회에요. 아침 열 시까지 문화회관까지 태워주 셔야 하는 거 잊지 마세요.” 
김 씨 아저씨께도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돌아와 원고를 마저 옮겨 적었다. 이불을 펴고 누웠다. 일찍 자야 하는데 아빠와 아저씨는 좀처 럼 그만 마실 줄을 모른다. 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소음을 피하겠다고 베개로 귀를 막았다. 짜증스러운 마음과 피곤한 몸이 번갈아 가며 나 를 괴롭혔다. 잠에 들었다 깨었다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이틀이 아니고! 나는 딱 밥 한 끼만 먹고 왔다니까.” 
 억울해하는 김 씨 아저씨의 말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옷을 차려입었다. 몇 개 없는 머리 방울을 매었다 풀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대회에 늦지 않으려면 슬슬 아빠를 깨워야 했다. 또 숙취가 심하다고 못 일어나시면 어떡하지? 걱정을 잔뜩 안고 안방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다르게 방에 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방에 계시는지 찾으러 나서려는데 마당에서 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아빠가 난처한 표정 으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리가 이상했다. 나올락 말 락 한 재채기처럼 힘없이 자꾸만 꺼졌다.
 “고장이 난 모양이다.” 
 아빠의 말에 머리가 어질해졌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부모님 의 의견은 서로 달랐다. 김 씨 아저씨를 깨우자. 아니다. 반장네 부모 님에게 연락을 하는 게 좋겠다. 아직 숨에서 술 냄새가 나는 양반이 무슨 운전이냐, 애를 잡을 일이 있냐. 아침부터 한바탕 부부싸움이 일 뻔했다. 나도 김 씨 아저씨의 차를 타고 가느니 반장네 차를 타고 가 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회장까지 가면서 원고 연습도 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봐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친구랑 가면 긴장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었다. 손목시계를 봤다. 대회장까지 차로는 30분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반장네 부모님이라면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주실 거다. 하지 만 우리 집과 반장네 집은 정 반대다. 나 때문에 혹시라도 늦어지면 그야말로 민폐다.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건 어떨까? 돌아올 때만 부탁해볼까? 문화회관은 어차피 터미널 바로 맞은편이었다. 묶은 머리를 배배 꼬며 생각에 빠졌다.
 “아이고 다행이다. 시동이 걸렸다. 뭐가 잠깐 빠져있었네. 얼른 타거라. 데려다줄게.” 
 아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도 안심했는지 가슴을 쓸어내 렸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누나를 도와주려고 하네? 그치만, 도움을 받 으면 일등은 못해.’ 순간 아이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쳇, 꼬마 주제에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했지? 무시해 버려야지. 
 “아빠, 잠깐만요.” 
 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웅변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지는 박수 소리에 귀가 멀어버렸다.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나에게 박수 치고 있을까? 우리 가족들도 있을까? 어두운 객석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찾아보려 했지 만 쏟아지는 조명에 되려 눈만 부셨다. 기세 좋게 허공으로 뻗었던 두 팔이 덜덜 떨려왔다. 마치 인형의 팔을 접듯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단상 옆으로 한걸음 옮겼다. 알고 있는 제일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 여 인사를 했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긴장인지 흥분일지 모른 강렬한 감정이 지나고 나니 다 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꼭 대상을 받고 싶었는데, 막상 끝나니까 아무 런 욕심이 없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중얼대며 연습을 하는 아이들 사이에 반장이 보 였다. 나는 반장에게 다가갔다. 다음 차례인 반장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라이벌이 하는 말은 격려라고 해도 비꼬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까? 머뭇대는데 반장이 내 어깨를 부드럽 게 쓰다듬어 준다. 
 “말 안 해도 알아. 정말 고마워.”
 어두운 강당 저 끝까지 밝게 비출 미소였다. 나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트로피와 상장을 방에 두고 뒷산으로 뛰어갔다. 해 가 슬슬 저물어 가고 있어서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이쯤이었다. 산책 로로 내려가 개울로 뛰었다. 고작 몇 발자국 거리인데 무성한 수풀 때 문에 이미 저녁처럼 어둡다. 이번에는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분명 이곳이었다. 그런데 개구멍 없었다. 내가 착각을 했나? 한참을 길을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커다란 밤나무가 있지는 않은지 물길이 꺾이는 곳은 없는지 살피며 걸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서 개울 건너편이 보이지 않 았다. 하루 만에 그 큰 구멍이 메워질 리가 없다. 아마 오늘 긴장을 너 무해서 못 찾는 모양이었다. 길을 다시 내려오는데 뒤에서 가볍고 날 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등줄기가 싸늘해 얼른 몸을 돌렸다. 어제 봤던 그 커다란 개였다.
 어제도 기척 없이 나타나선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들었었다. 혼자 산에 올라온 걸 후회했다. 저녁을 먹을 시 간이라 돌아다닐 사람들도 없을 거다. 순식간에 여러 생각이 머릿속 을 헤집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지 혀뿌리까지 쿵쿵거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개는 여유롭다. 간간이 고개를 갸웃댈 뿐이다. 머리를 움직일 때 마다 윤기 있는 까만 털이 반짝였다. 금빛 구슬 같이 번득이는 두 눈은 나를 향해있었다. 갑자기 내달리면 오히려 놈을 자극할까 봐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 다. 긴장한 운동화가 바닥을 시끄럽게 긁고 말았다. 그 소리에 개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런데 개는 달려들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방심을 할 수 없어 시선을 놈에게 맞추고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 났다. 어제 그 꼬마가 또 나와주면 좋으련만, 나도 모르게 개울을 힐 끔 보고 말았다.
 아차 싶어 얼른 개를 힐끗 쳐다보니 그놈도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개울로 돌렸다. 마치 내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 같았다. 금색 눈이 번 득였다. 갑자기 개의 큰 입이 시원하게 벌어졌다. 날카롭고 단단해 보이는 이빨들이 드러났다. 사냥감을 물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건가? 죽기 살기로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 걸음질이고 뭐고 전속력으로 달리려고 다리에 힘을 줬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놈의 귀가 다시 빠짝 섰 다. 어쩌면 하늘로 쏘아올려진 폭죽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귀까지 벌 어진 입에서 긴 혀가 날름 나왔다. 입맛을 다시듯 입 주변을 쓱 핥았 다. 그리고 나는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개가 마치 사람처럼 웃 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미소도 아니고 꼭 나를 비웃는 것 같은 표 정이었다. 개가 웃는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달리 표현할 길 이 없었다. 나는 무서움과 당황스러움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실컷 비웃었는지 개는 몸을 돌려 산으로 사라졌다.

 맥이 탁 풀렸다. 어쩌면 꼬마도 그 집도 다시 찾을 수 없을 거란 생 각이 들었다. 내가 본 게 진짜일까? 어쩌면 나도 김 씨 아저씨처럼 홀 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늘한 저녁 바람이 불었다. 땀으로 들러붙었 던 앞머리가 바람에 날리자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꿈을 꾼 것 같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가 또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나는 전국대회 준비로 바쁠 테니까.





김고만
습관성 과몰입 증후군을 앓고 있는 중도 하차러. 김치 고향 만두를 좋아한다. 사람보다 귀신이 더 무서운 시골에서 태어났다. 물론 지금은 카드값이 제일 무섭다. 산과 개울을 쉴 새 없이 쏘다녔다. 놀다가 실수로 먹어버린 곤충으로는 개미, 모기 파리가 있다. 갈색 흙, 빨간 흙, 모래의 질감과 향을 감별할 수 있는 흙믈리에. 어린 시절 첫사랑을 동창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름 돋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hyeonji_yi
 블로그: https://brunch.co.kr/@8col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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