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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Feb 12. 2020

나는 혼자가 아니다.

 지난 수년의 고민과 알싸한 충동으로 버무려진 퇴사의 계절이 하필 겨울이라니. 이건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일이다. 물론 어떤 일도 야심 차게 준비하지 않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름이 뜨거울수록 살갗 구석구석으로 희열을 느끼는, 때문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오면 몸을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는 류의 인간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우울감이 덮쳐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지난 숱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당분간 나를 혼자 두지 않겠노라고. 그리하여




 퇴사 후 며칠은 내리 엄마 집에서 보냈다. 한창 일 할 나이에 무턱대고 퇴사한 딸이 웬수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엄마는 자꾸만 하루 더 자고 가라 성화였다. 그렇게 못 이긴 척 머물다 보니 나흘이 흘렀다.

 백수의 하루는 느긋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법. 부모님이 일하러 간 사이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해 먹고, 허기가 가시면 소파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TV를 봤다. 요즘 드라마는 다 재밌네. 몇 시간 만에 가뿐히 최신 드라마와 예능을 섭렵했다. 처음엔 내 무릎 위에 앉아있던 (개)포동이 어느샌가 거실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찌뿌둥하니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포동, 산책 갈까?" 포동은 고개를 번쩍 들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엄마 집 주변 골목길을 잰걸음으로 앞장서는 포동을 뒤따르다 보면 이건 뭐 내가 얘를 산책시키는 건지 얘가 나를 산책시키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어찌 됐건 단순한 목적 만으로도 추위를 뚫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 녀석 덕이었다. 혼자였으면 몇 날 며칠 씻지도 않고 소파와 한 몸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엄마가 쉬는 날엔 재료를 사다 김밥을 말아먹기도 했다. 여러모로 좋아하는 음식이라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사 먹곤 했는데, 직접 만드니 평소와 달리 소풍 가는 날마냥 설레기까지 했다. 엄마표 김밥은 밥이 적어 오물오물 씹기 좋았다. 어릴 쩍 먹던 그대로였다. 반면 내가 만든 김밥은 밥을 꽉꽉 채웠기 때문에 입 안 가득 와구와구 씹어야 했다. 이건 엄마가 만든 거, 이건 내가 만든 거. 육안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서로의 김밥을 보며 우리는 재밌어했다. 기분 난 김에 몇 줄을 통에 담아 서울 외곽으로 나섰다. 엣헴 엣헴 신이 난 포동은 강가를 달렸다. 소풍이 별건가. 이게 소풍이지.




  어느 날은 팀 동료였던 미경의 집에 쳐들어가기도 했다. 부상으로 며칠째 재택근무하던 미경에게 점심 한 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혼자 있길 좋아하는 친구라 상당히 귀찮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걸 노렸다. 시니컬한 미경을 괴롭히는 일은 정말 즐거우니까. 이제 더는 그럴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쉬워 일하는 미경 옆에서 수발들며 저녁까지 놀았다. 내가 없는 팀에서 미경은 누구보다 묵묵히 일하겠지. 지금까지 미경을 통해 배웠던 그 모든 시간이 참 고마웠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썹달을 보며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이야기를 왕왕 들었다. "너, 무슨 연예인이야? 맨날 혼자 바빠." 일복이 타고났는지 직장인으로 사는 내내 업무가 많았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다른 건 신경 쓰지 못하는 성격 탓에 업무시간엔 친구들의 메시지를 놓치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평일을 일로 꽉 채우고 나면 소진한 에너지를 주말 동안 내 방식대로 충전했다. 그 에너지는 주로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은 늘어만 갔다.

 나는 내 생활을, 친구들은 친구들의 생활을 하는 동안 조카 몇 명이 생겼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직장인이 일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육아 일을 하는 친구들은 더 이상 내게 바쁜 티 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먼저 연락하는 일도 크게 줄었다. 한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아이가 잠들어야만 그제야 메시지 확인을 하는 친구들은, 이제 약속을 잡거나 맛집 찾기를 주도하지 않는다.

 하루는 아이 이유식을 직접 만들었는데 시판 이유식만큼 잘 먹지 않는다며 상심한 민경을 위해 식재료를 사들고 민경의 집으로 갔다. 아이 먹일 음식을 만드느라 정작 본인은 라면으로 때우는 민경이었다. 너는 준석이랑 놀고 있어. 내가 낙지볶음 해줄게. 정은인 어디래? 오고 있겠지. 옷을 만들며 샵을 운영하는 정은은 식사 때 맞춰 민경의 집에 도착했다.

 입시미술학원에서 10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낸 우리는, 이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보다 민경의 집이 편하다. 어머니나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기 위해 며칠 전부터 미리 부탁할 필요도, 걱정하다 서둘러 귀가할 일도 민경에게 없으니까. 돌아가며 준석과 놀고, 이유식을 먹이고, 잠투정을 부리면 안아 재운다. 우리가 밥 먹는 동안 깨지 않고 잠든 준석을 기특해한다. 지금의 우리에겐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생활을 더 오래 했다면 걷기 전의 준석은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혼한 민경과 정은의 대화에 백 프로 공감할 순 없었지만, 평일 낮의 푸짐한 음식과 맥주 한 캔, 그리고 옆에서 옹알거리는 준석이 있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일주일간 강원도 정선의 민재 집에 머물며 일을 돕기도 했다. 민재에겐 막막한 디자인 작업을 짧은 기간 동안 해결해줄 요량이었다. 친구들은 감금이라고 했다. 나는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가 알찼기 때문이다.

 민재가 출근하면 향을 피우고 거실에서 요가를 했다. 반복적인 태양 경배 자세로 서서히 하루를 깨웠다. 선생님과의 수련을 복기하며 플로우를 이어가다 보면 창밖의 한기도 그림인 양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집안 공기도 덩달아 에너지로 충만해졌다. 사바아사나까지 마치면 어느덧 한 시간. 스스로 이끌어간 수련은 만족스러웠다.

 개운하게 샤워한 후 냉장고를 스캔했다. 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요리하다 보면 점심시간, 현관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 맞춰 집에 온 민재와 함께 식사했다. 내가 한 국과 반찬을 남김없이 먹는 친구를 보며, 끼니때마다 밥 해 먹이던 엄마의 그것도 그저 노동만은 아니었기를 바랐다. 엄마도 얼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보았다.

 오후 업무를 위해 민재가 사무실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회사에서 사용하던 작업 관리 프로그램은 사용할 수 없으니 무료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깔고 습관처럼 업무와 일정을 정리했다. 기분이 묘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엔 스스로 매니징을 못 해 프리랜서를 관뒀어야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겠구나. 정리한 일들은 일정 내 늦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완료 버튼을 누르는 쾌감은 퇴사해도 변함없었다.

 한 차례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민재가 퇴근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자취하는 5년 내내 집에서 라면 한 번 끓여먹지 않았던 나인데 매일의 요리가 이렇게 즐겁다니. 이건 분명 사랑의 힘일 거야. 그 사랑을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늦은 밤까지 작업물을 함께 체크했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이제 그만 쉬자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업무가 끝났다. 주로 클라이언트인 민재의 역할이었다. 아쉬우니 자기 전에 다큐나 영화 한 편 보자고 하는 것도 민재였다. 그러다 번번이 잠드는 것도, 민재였다.

 한 주 동안 내가 하는 일을 민재가 보았듯 나도 민재가 하는 일을 볼 수 있었다. 조경하는 민재는 공원 부지 현장을 구석구석 밟으며 주변 경관을 관찰했다. 해가 어디서 뜨고 어디로 지는지 살폈다. 이웃 주민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연과 어우러진 공원을 스케치해 클라이언트로부터 호응을 얻어냈다.

 누구보다도 불안했기에 서로를 알아봤던 중학생 아이들은, 어느새 각자의 자리에서 두 발 딛고 선 어른이 되어 있었다.




 윤경, 기혁, 솔, 그리고 나. 넷은 틈만 나면 놀 기회를 만들었다. 아, 기혁은 시류에 편승했을지도 모른다. 솔과 나는 여차하면 윤경, 기혁 부부의 집에 놀러 가 마지못한 척 1박 했다. 어떤 날은 1박이 2박 되기도 했다. 기혁은 포기한 듯 보였다. 아무쪼록 근 5개월간 네 번은 갔으니, 이쯤 되면 윤경의 부모님보다 우리가 그 집에 익숙함은 틀림없다.

 처음엔 밥 한 끼 같이 해 먹고 수다 떨다 테라스하우스 주행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젠 놀이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루미큐브는 기본이고 화투로 고스톱은 물론, 뻥이라는 게임까지 부부에게 배웠다. 빙고로 대한민국 박 씨 성 연예인을 모조리 찾기도 하고 90년대 가수들을 죄다 소환하기도 했다. 급기야 명대사로 영화 제목을 맞히는 스피드 게임을 하며, 와, 레전드를 찍었다. 벌칙도 없는데 아는형님보다 우리가 훨씬 재밌는 이유는 뭘까.

 한 번은 윤경과 기혁이 출근하고 솔과 둘이 남았다. 이대로 가긴 아쉬운데. 우리는 이벤트 좋아하는 윤경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각자 포스트잇 10장에 '잘 쉬었다 갑니다'라고 쓰고 집안 구석구석 은밀한 곳에 붙여두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윤경은 처음 한 장을 발견하고 감동했다가 며칠간 스무 장의 포스트잇을 찾느라 약이 잔뜩 올랐다. 기혁은 포스트잇 찾는 윤경을 중계하며 간간이 소식을 전했다.




 이밖에도 구직장 동료들을 만나러 베트남에 간 일, 대학 친구들과의 모임을 위해 영종도에 간 일 등, 근 몇 년간 만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고 있는 요즈음이다. 덕분에 올겨울은 땅굴 파는 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행복이라고 서은국 교수가 말했던가. 바꿔 말해, 나는 혼자가 아니라 느끼는 그 모든 순간들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퇴사 후 3개월,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몸소 느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서지와 둘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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