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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Dec 11. 2020

오늘도 요가

 겨울이 오기 전, 다니고 있던 요가 샬라가 잠시 휴식기로 접어들었다. 꽃이 만발하던 초봄부터 내내 습하고 가끔 반짝이던 여름을 지나 초가을까지. 내 몸과 마음이 의지하던 곳, 나의 쉼터 아가스트 요가 샬라. 그곳의 휴식은 곧 내 방황이 시작됨을 의미했다. 겨울에 취약한 나는 분명 계절에 패배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급기야 나는 스스로를 내팽개쳐둘 게 뻔했다. 나는 홀로 피어날 자신이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뜻밖의 챌린지 덕이었다.

 정규 수업이 종료된 직후, 아쉬울 틈 없이 포레스트 요가 리트릿이 곧장 이어졌다. 아침부터 늦은 점심까지 하루 4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5일간의 수련이었다. 제주까지 초청되신 포레스트 요가 가디언 예신희 선생님과 예수일 선생님, 그리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온 수련생들까지. 평소와 다른 에너지가 야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간을 가득 메웠고, 우리는 짧은 여정을 뜨겁게 치러 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너나할 것 없이 아쉬워하는 수련생들에게, 예신희 선생님께서 챌린지를 제안하셨다. 무려 핸드 스탠드 챌린지였다.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핸드 스탠드 과정을 동영상으로 인증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목표가 핸드 스탠드라면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리트릿 기간 동안 핸드 스탠드를 경험해보긴 했지만 선생님과 동료 수련생들의 핸즈온으로 얼떨결에 일어난 일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채팅방에 참여했다.




 인증을 시작하기로 한 날 아침, 챌린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눈이 번쩍 떠졌다. 여느 때와 달리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잠옷을 벗어던지고 요가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고 핸드폰을 세팅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매트에 앉아 천천히 호흡하며 들뜬 맘을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었다. 터널 증후군으로 아침이면 더 뻑뻑한 손목과 손가락도 꼼꼼히 풀었다. 이어서 허리와 복근을 단단히 해줄 앱스와 엘보우 투 니, 돌핀 자세로 과정을 마쳤다. 이제 다시 천천히 양 팔꿈치와 깍지 낀 손을 바닥에 대고 상체를 들어 올려 돌핀 자세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벽에 얹어 보았다. 몸을 ㄱ자로 만든 것이다. 피가 머리로 쏠려 숨이 금세 거칠어졌다. 잠시 호흡을 잊기도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힘을 주며 한 다리를 천장으로 끌어올렸다. 몸은 ㅓ자가 되었다. 들어 올린 다리를 다시 벽에 대고 다른 쪽 다리를 천장으로 끌어올렸다. 팔과 목, 등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렇게 몇 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매트에 아기 자세로 엎드렸다. 거친 숨을 몰아 쉬는데, 뜨거워진 몸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머나먼 핸드 스탠드로 가는 20분 간의 첫 여정은 짧지만 강렬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동영상을 확인했다. 일자로 곧게 뻗는다 생각했던 다리는 활처럼 휘어있었고 목과 어깨, 등은 잔뜩 성나 있었다. 숨소리는 거칠거나 혹은 들리지 않았다. 엉망진창이었다. 고칠 게 많아 보이니 신기하게도 의욕이 더 샘솟았다. 다른 분들의 인증도 하나 둘 확인하니 함께 있지 않아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첫 경험 효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렘은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첫날처럼 요가는 주로 아침에 한다. 그날 아침의 상태와 기분, 풀고 싶은 부위에 따라 플로우는 제각각이다. 짧게 20분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우주선을 타고 잠시 우주에 다녀온 기분으로 1시간 40분 동안 무아지경의 개인 수련을 하기도 한다. 물론 마지막엔 핸드 스탠드 챌린지로 끝맺는다.    

 아침 요가를 선호하는 이유는 포기할 핑곗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잠에서 깼으니 일어난다'와 같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어둠이 가라앉은 시간의 요가도 말할 것 없이 좋지만 여러 변수가 가로막을 수 있다. 가령 예상치 못 하게 와인을 한 잔 한다거나, 또는 와인을 마신다거나... 그렇다고 새벽 요가를 할 만큼 부지런한 타입은 아니다. 마침 출근 시간도 11시라 눈 떠지는 대로 일어나 요가로 아침을 맞는 일이 제법 안성맞춤이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요가를 매일 반복하는 일의 영역으로 초대한 지 49일이 지났다. 매일 샤워하듯 요가를 하다니, 내가.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다. 지금은 놀랍게도, 정말이지 놀라웁게도 내 두 손으로 몸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목과 어깨에 힘은 빠지지 않고 벽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게 어딘가. 처음엔 발로 벽을 차면 무너질까 봐 벽 앞에서 절을 하며 절절맸는데.

 반복의 힘을 짧은 시간 몸소 경험하자 모든 가능성이 열렸다. 나는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손쉽게 되는 자세들도 과거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니까. 과정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어느 순간 기대치 않은 선물처럼 내 손안에 들어올 것을 나는 믿는다.




 겨우내 안식을 갖겠다 하셨던 선생님은 결국 수업을 재개하셨다. 세 시간짜리 딥 윈터 수업을 시작으로 말이다.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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