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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Mar 12. 2021

어쩌다 요가 3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런치에 <어쩌다 요가 1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지 2년이 지났다. 2018년 1월 11일, 우붓을 거닐다 본능적으로 한 요가원에 들어선 그 아침으로부터 정확히 3년 하고도 2개월이 흐른 것이다. 첫 경험의 잔향이 짙어서일까. 그 후로 나는 이 관계를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성숙한 사랑이 그러하듯 이제는 제법 진지하고 사려 깊은 모습으로.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금세 싫증을 내는 타입까진 아니지만, 이쯤 되면 슬쩍 한눈을 팔곤 하는 내가 변함없이 요가를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늘 새로워서다. 아사나(요가의 자세)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시도했던 아사나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아사나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아사나를 만날 때면 언제나 설렌다. 재미있는 건, 이전과는 달리 접근 방식에 대해 나름 궁리를 한다는 것. 이미 경험해본 아사나를 응용해 신체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혼자서 시도해본다. 물론 단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 그러니 더 아쉬워서, 궁금해서 알아내려 한다. 가까운 스승들께 질문하고 그들을 관찰한다. 생을 통틀어 이토록 무언가를 배우려 적극적으로 임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겐 그저 놀라운 일이다.

 또 다른 의미로도 늘 새롭다. 이를테면 매일 같은 장소에서 파도를 타도 늘 새로운 것과 같다. 물질로써의 파도가 매번 다른 형태로 내게 오듯, 똑같은 아사나를 반복하더라도 그 움직임은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근육의 방향도, 힘의 세기도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내면에 크고 작은 파도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놀이'의 반열을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 인생에는 유독 운동이 취미의 지분을 많이 차지해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체로 서로 자연스레 대체됐다. 클라이밍에서 농구로, 농구에서 로드 바이크로, 그러다 배드민턴과 수영으로. 한눈팔기란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모두 두말할 것 없이 매력적인 놀이라 그렇다.

 생각해보면 요가도 처음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가 내게 요가를 왜 하냐고 물으면 돌아가는 대답이 항상 "재미있어서" 였으니까. 특히 '시르사아사나(머리 서기 자세)'에서 유독 쾌감을 느껴, 흥이 오르면 장소 가리지 않고 몸을 거꾸로 세우곤 했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신나게 놀다 불현듯 시르사아사를 하는 내게 슬금슬금 다가와 키득거리며 종국엔 넘어뜨리고야 마는 친구들과, 나는 참 신나게도 놀았다.

 물론 지금도 해변에서 캠핑을 하다 갑자기 요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즐거움'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자연과 내 호흡의 합주를 바라본다. 자연히 경외감을 느낀다. 이제 그 행위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수련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요가가 다른 운동을 뛰어넘는 어떤 경지의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누군가는 달리기로, 또 누군가는 등반이나 검도로 자신의 신체와 내면을 단련할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요가가 가장 도달하고 싶은 저 먼 경지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요가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울림과 깨달음을 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실은 요가를 매개로 '나'라는 존재의 경지를 경험하는 것이리라.






 최근 들어 사람들이 왕왕 요가에 대한 질문을 내게 건네 오곤 한다.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는데, 요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조금이라도 관여하고 싶다. 전적으로 나를 믿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힌트 중 하나 정도로 쓰이길 바라서다. 그러기 위해서 나 스스로 더 많이 배우고 수련해야겠는 생각을 한다.


 지금껏 꾸준함으로 일관하고 싶었던 몇 가지의 일들이 손가락에서 모래알 빠져나가듯 스르르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역시 안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흩어진 모래야 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겠지만.

 감사하게도 '요가'라는 행위는 내 양 손 위에 여전히 남아 단단한 돌이 되었다. 아직은 자그마한 조약돌에 불과하지만, 또 어느샌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것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 오른 손등 위에 새긴 태양처럼, 내 왼 발등 위에 새긴 달처럼, 하나의 별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나보다 먼저 탄생한 선지자 별들을 만나고, 나를 뒤따를 새별을 만나 거대한 우주를 유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나의 우주는 이미 그렇게, 이곳에 있다.












 요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글을 어렵지 않게 읽으면 좋으련만. 글밥을 꾸준히 먹지 않은 관계로 그건 어려울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요가하는 사람들에겐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길 바란다. 마치 같은 공간, 각자의 매트 위에서 함께 수련할 때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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