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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9. 2019

10. 수술하는 날

12월 16일 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2시다. 아... 6시쯤 일어나면 되는데 왜 이리 일찍 깬 거야 하며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잔 마시며 창밖을 내다봤다. 이상하네 보통 눈 뜨기 전에 잠에서 깨는 걸 알고 그래도 뭉기적거리다 일어나는데 마치 누가 옆에서 깨우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깨다니.... 6시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정신이 너무 말짱했다. 


자료를 좀 읽고, 글도 쓰고, 새벽이지만 커피도 내려마시고....

그럭저럭 시간이 갔다. 


6시 반에 동생을 만나고, 친정집에 들러 엄마와 동생을 태우고 병원에 도착하니 7시였다. 주차장 앞에서 다들 내리고 지하로 내려가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층에서 식구들을 다시 만났다. 12층에서 내린 후 병실에는 엄마와 내가 먼저 들어갔다. 밤에 아버지는 잘 주무신듯했다. 엄마를 알아보고 수술한다는 말도 알아들으시는듯했다. 수술실에는 7시 반에 내려간다고 했다. 보호자용 팔찌를 동생에게 건네며 나는 출근할 테니 나중에 전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연가라도 쓰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이날 오전 행사 주관이 나였다.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기 점검을 하고, 강사들을 확인하고, 마무리하기까지 3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엄마와 동생들은 병원에서 대기한다고 했다. 가족 톡방에 먼저 병원에서 서류를 가져와야 한다 해서 막내네 부부가 이동한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함께 사는 엄마와 셋째, 두 사람이 1층 커피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1시 지나서 조퇴를 하고 가니 아버지는 회복실을 거쳐 입원실로 와 계셨다. 소변 줄을 달고 주삿바늘이 왼손으로 옮겨져 있는 것 외에 딱히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호흡기 콧줄도 달고 있지 않았다. 여보야도 알아보고, 딸들도 알아보고, 본인 이름도 말하고 심지어 눈빛도 수술 전보다 밝아진 모습이었다. 


“ 수술했는데 안 아파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신다. 

“ 배에 혹 있었는데 수술로 떼어냈대요.”

인스피로미터에 연결된 호스를 입에 물고 호흡을 크게 해야 하는데 들이마시는 걸 못하고 그냥 물고만 계셨다. 

“아버지, 이거 물고만 있지 말고 흡~~ 하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해야 해요.”

고개 짓으로 들이마시는 시늉만 할 뿐 실제 호흡이 되지는 않고 있었다.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아 호스를 빼드렸더니 입술은 움직이는데 잘 들리지 않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요?”

“101살, 여보야는 두 살 위 101살 ”

“알았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씀을 하셨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담당의사가 연이어 수술 일정이 있어서 수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들은 바가 없고, 회진 시간도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말을 간호사로부터 들었다. 


어쨌든 의식이 있고 말씀도 하시고 별 무리 없이 수술도 진행됐고 식구들 얼굴도 봤으니, 새벽부터 움직인 엄마가 힘들어 보이기에 간병인에게 부탁을 하고 간다고 했다. 춥다고 해서 이불을 목까지 덮어드렸는데 이불속에서 양손이 움직였다. 아버지식의 이별인사 빠이빠이를 하고 계셨다. 엄마와 나도 손을 흔들고 내일 온다 하고 병실을 나왔다. 


내가 막 병원에 들어섰을 때 셋째는 입원실로 돌아온 아버지를 만났고 일하러 간다고 나갔었다. 엄마와 나 둘만 남았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식사 어떻게 하실래요?”

“아직 생각이 없다. ”

“엄마, 혈압에 당뇨야. 끼니는 거르지 말라고 셋째가 신신당부했어.”

“그럼 지하에서 간단히 먹고 가자.”


병원 지하 푸드코트에서 엄마는 얼큰칼국수, 나는 돈가스카레동을 시켜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병원을 다니며 나는 식사량이 늘었고, 엄마는 자꾸 매운 것만 찾으셨다. 


“엄마는 요새 맨날 매운 것만 먹네.”

“난 병원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 비위가 상해서 자꾸 매운 것만 찾게 된다.”


예민한 것으로야 나도 엄청난 사람인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환자들 특유의 냄새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엄마를 친정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와서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알 수 없는데 초인종 소리에 깼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들어와 다시 잤는데 이번에는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약간의 짜증이 올라오면서 전화기를 들었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뭐야 환청인가? 너무 피곤했나 하며 다시 잤다. 


엄마의 전화에 완전히 잠이 깨서 밖을 내다보니 그새 어두워져 있었다. 좀 자기는 했구나 싶었다. 새벽 2시에 깼으니 졸릴 만도 했다. 엄마는 나처럼 집에 오자마자 잠을 잤다는 것과 간병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담당의사가 회진을 와서 수술이 개끗하게 잘되었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하셨다.


“글쎄... 시장으로 가는 길 양편에 노란 국화들이 줄지어 있더라.. 참 이쁘기도 한 국화를 누가 이렇게 많이 놨나 하면서 걸어갔지. 시장에 들어서고 나서 손바닥을 펴보니 노란 황금색의 메달 같은 게 3개나 있는 거야. 참 희한한 꿈도 다 있다 싶었지.”

“엄마 , 부자 되는 꿈인가 보네.”

“너네 아버지 장례식 하는 것은 아니겠지?”

“여보야도 알아보고 , 딸들도 알아봤는데 뭐, 수술 전보다 더 생기가 있어 보이던데..”

이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저녁 챙겨드시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완전히 잠이 깼다. 딱히 밥 생각은 없으나 오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막내한테 전화를 했다. 

“밥 있나?”

“볶음밥 하려는 중인데, 와서 먹어.”

“알았어. 금방 간다”


늦은 점심을 하고 바로 잠이 들었는지라 공복감은 전혀 없었다. 동생네 아파트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데 저녁 바람이 그다지 차갑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밥을 먹으며 엄마의 꿈 이야기를 전하니 동생은 피식 웃는다. 

“엄마랑 큰언니는 좀 이상해, 맨날 그런 뜬금없는 꿈 얘기나 하고..”

“촉이 발달해서 그래...”

“난 그런 거 안 믿어.”

“나도 뭘 믿는 거는 아니야, 그런 꿈을 꿨다는 거지. 해석이야 각자의 몫이지. 꿈도 자신의 반영이라는 데 뭐..”


아버지의 수술 이후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 그냥 지금 정도의 수준에서 퇴원하면 아마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니 며칠 있다가 엄마 집 근처에 있는 곳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보름을 넘긴 달이 참 밝았다. 스치는 바람은 겨울바람이 아니라 봄이 오기 시작할 때 부는 훈풍의 느낌이었다. 겨울을 지나기도 전에 봄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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