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화
입원한 지 일주일째라 중간 정산하라는 메시지가 왔다며 아침부터 가족 톡방이 분주했다. 정산절차가 올라오고, 담당교수 회진 시간이 오전 10시경이니 갈 수 있는 사람이 엄마를 모시고 가야 한다는 등의 글도 올라왔다. 오후에 조퇴하고 가려했다는 댓글을 다니, 오전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막내가 김장 장 보러 나가는 김에 엄마 모시고 다녀온다고 했다. 병원비 정산할 때 간병인비도 어제 기준으로 정산해주라고 했다.
9시 회의를 한 시간 정도 하고 자리로 돌아와 보니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입원비 계산과 간병인 정산 관련 내용들이 두 동생 사이에 오고 가다가 돌연 전혀 다른 내용이 보였다.
‘아빠 사람 못 알아보네.
고개 도리질만 계속하고... 엄마도 못 알아보고
아무도 못 알아봐.
고개 돌리는 거 계속하다가 눈감고 잠드는지 멈췄다가 다시 돌리고 그래,
그리고 말을 전혀 못 해.’
‘담당의사 만났어?’
‘외과 의사 다녀감.
수술은 잘 됐고.
못 알아보고 도리질하는 건 일시적인 섬망 증세일 수도 있고,
아님 뇌경색 온 걸 수도.
신경과 의뢰해보는데,
도리질 때문에 CT는 못 찍을 수도 있대.’
주르륵 이어진 동생의 문자는 어제 수술 후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을 알렸다. 문자 사이사이에 동생의 놀란 가슴이 느껴졌다.
‘조퇴하고 갈 테니 엄마 계시라 하고 너는 볼일 보러 가.’
‘알았어.’
내가 달려간다 해서 딱히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병실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확연하게 눈빛이 흐리고, 심하게 고개를 젓는 행동과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체온, 혈압, 호흡은 정상이라 했다. 엄마는 간이침대에 앉아 난간을 붙잡고 여보야 왔다는 말을 자꾸만 되풀이하고 계셨다. 어젯밤에 우리 형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아침 지나서부터 저렇게 말도 못 하고 도리질만 계속한다고 간병인이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 실에 문의하니 담당의도 상황인지 하고 검사 후에 신경과와 협진을 한다며 동생이 올린 문자 내용과 같은 말을 했다. 보호자가 언제 시간이 가능한지 알려주면 내일 외래 시간에 면담 시간을 잡겠다고 했다.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납득할 만하게 상황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동만 연이어하셨다.
심하게 고개를 돌리는 것,
입을 우물우물하며 이가는 모습,
가끔 왼손을 들어 이마를 건드렸다가 내리는 것,
양손을 포개어 곱게 잡고 있는 모습
옆 환자 체크하러 왔던 간호사가 특별한 의미는 없는 움직임이라고 한마디 하고 갔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리와 움직임에는 반응하는 것 같으나 의식적인 영역은 아닌 듯 보였다. 암 진단이 나와 대학병원으로 이송 여부를 결정할 때, 수술 여부를 결정할 때 어쩌면 아버지와 이별이 있을 거라는 것은 식구들 모두 지레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무의식 상태에서 침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엄마한테 나가자고 했다. 점심때가 되어 식사를 해야 했다. 황당한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엄마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도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엄청나게 두꺼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피자가 먹고 싶어 졌다.
“엄마, 피자 먹으러 가자. 어때요?”
“난 아무거나 괜찮다.”
내비게이션 앱에서 근처 피자집을 검색해서 찾아 가보니 배달 전문점이라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생태공원 쪽으로 가다 보니 옛날에 지나던 길에 봤던 이탈리안 식당이 생각났다. 공원의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5분여를 운전해서 갔더니 이탈리안 식당은 메밀 음식점으로 바꿔있었다.
“오늘은 피자가 아닌가 보다. 메밀은 어때요?”
“난 아무거나 좋다.”
나는 피자에 대한 욕구가 있지만, 엄마는 뜨거운 국물이 있는 매콤한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하셨던 게다. 해물짬뽕 메밀면과 메밀전병, 메밀 왕만두 이렇게 시켜놓고 둘이서 열심히 먹었다.
메밀전병을 아주 오래전에 처음 먹어보고 두 번째라고 하셨다.
“메밀전병은 강원도 음식이래. 먼저 살던 집 근처에 도토리 가루로 만든 전병을 파는 집도 있는데 다음에 모시고 갈게요.”
“너랑 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먹으니 좋다.”
잠시 아버지는 잊어버리고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만두 엄청 좋아하셨는데..”
“그랬지. 근데 이제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사람도 못 알아보니...”
엄마는 왕만두 2개, 전병 2조각, 메밀면에 있던 해물 몇 점, 앞접시에 면을 옮겨 담아 2번 드시더니 배불러서 더는 먹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음식이 남았네.”
“싸 달라해서 막내 갖다 줘라..”
자그마한 음식 포장 꾸러미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관리인이 맛있게 드셨냐고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전병을 오랜만에 먹었다고 하신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전병을 사드린 적이 없었나 하는 질문을 하고 그런 적이 없구나 하는 답을 혼자서 내렸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커다란 만두를 우리끼리만 먹었네 하는 것도 속으로만 생각했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강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는 메밀전병의 고소한 기름내가 가득했다. 주차장에 들어서기 전에 막내에게 전화했다.
“집에 들어왔니?”
“이제 주차해.”
“오늘 일꾼 필요하면 말해. 건너갈게.”
“장 본거 올려놓고 좀 쉴래.”
“알았어.”
메밀전병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김장 장을 보고 나서 힘든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막내는 나랑 14살 차이 나는 늦둥이다. 어려서 식구들 무릎으로만 옮겨 다니고 늘 아버지 품 안에서 놀았었다. 아버지가 예뻐하는 막내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식탁에 전병을 펼쳐놓고 냉장고를 열어 소주와 맥주를 꺼냈다. 메밀전병을 안주 삼아 소맥 한잔을 만들어 천천히 마셨다. 오늘도 병원을 다녀온 후 술 한잔을 했다. 이러다 술꾼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