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수
눈을 뜨니 4시였다. 불을 끄지도 않고 잠이 들었었나 보다. 방이 온통 환하다. 어젯밤 메밀전병에 소맥을 한잔 마시고 났는데도 오히려 더 허기지고 먹고 싶었던 피자 생각이 나서 마트까지 걸어가 냉동피자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돌려 꾸역꾸역 혼자 다 먹었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들어와 잠이 들었나 보다. 그전에 엄마에게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 가자고는 했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 한잔 마시고 커피 내리고 창밖 바라보다가 일기처럼 쓰는 글을 썼다가 지웠다 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이다. 이런 식의 스토리는 아니었는데...
뭔가 툭 툭 떨어지는 느낌들이 계속 있었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병원 가는 길에 앰뷸런스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곤 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서울병원으로 이송되어 와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믿고 싶지 않아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유난한 감각이 발동되는 편이라 최근에는 둔감하게 살아가려고 했었다. 예민함에서 오는 날카로움과 불길함을 감지했을 때의 정서적 피로감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한다면 적당히 둔하게 사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었다. 많이 누르고 둔해지기 위해 떨어져서 생각하려 하고 모른척하려고 했었다. 12년의 아버지 병상 생활에서 대해서도 적당한 거리감을 늘 두고 살았었다. 요양원에서 마지막 면회 이후로 달라지긴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쓰다 보니 엄마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졌다. 7시가 지나 친정집 근처에 가서 전화를 하니 엄마는 이미 골목에 나와 있다고 하셨다.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것이 우리들에게는 다행이다. 이른 시각이라 병원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도 나보다 앞서 걷는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1228호 병실의 아버지는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여전히 여보야도 알아보지 못하고 큰딸도 몰라보고 두 손은 정갈하게 포개어 마주 잡고 있었다. 어제는 이불을 건드리면 손을 들어 올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입을 움직이며 이가는 소리는 여전했다. 소리에는 조금 반응하는 것 같지만 의미는 없는 듯했다. 핸드폰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시선이 집중되긴 했으나 이내 고개가 돌아가고 눈을 감고 잠이 들어버렸다. 간병인에게 지난밤의 상황을 물어보니 딱히 변화된 것은 없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간호사실에 가서 담당의사 면담을 신청하니 외래 진료일이라 오후에는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1층에 가서 기다렸다가 상담을 하면 된다 했다. 오후에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 병원을 나왔다. 친정집에서 직장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아 집까지 모셔드린다 했더니 엄마는 큰길에서 내려달라 하셨다. 아침에도 기다리며 골목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더라며 좀 걷는 게 낫겠다 하시기에 큰길에서 내려드렸다. 까만 모자를 쓴 키 작은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걸 보며 출근길을 서둘렀다.
오전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에 상사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지각, 조퇴가 많아질 것 같아 미리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미 이런 상황들을 겪어낸 처지라 그런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알았다고 했다. 자리로 돌아와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가 12년 전 처음 입원했던 병원 비뇨기과에서 지금껏 약 처방을 받고 있었는데 오늘 진료예약이 있으니 엄마가 간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에게 상황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시기에 문자를 보내 드릴 테니 그것을 의사에게 보여주라고 아침에 말했었다.
1. 요양원에서 폐렴 증상으로 병원으로 이송하여 입원 치료 중 대장암 발견
2. 대학병원으로 이송하여 결장암 복강경 수술 받음
3. 수술 다음날부터 말을 못 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함
4. 폐렴 증상 이후로 치료적 금식 중, 앞으로 구강 식사 안되고 튜브 삽입 예정
82세의 엄마는 의사를 만나 의식이 없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소견서를 받고 종합병원 입구에 서서 딸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팡이를 짚고 서 계셨다. 엄마가 차에 오르는 동안 뒤쪽에서 경적소리가 들렸다. 일 차선 길이라 병원으로 들어서려던 차들을 내가 막아서고 있는 거였다. 천천히 엄마가 안정적으로 조수석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또 한 번 경적소리가 났을 때에 나는 출발했다.
하루 중 두 번째 병원 행이다. 간호사가 건네준 쪽지를 들고 1층으로 가니 도통 소화기 외과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서야 안쪽으로 구부러져 들어가 있는 진료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외래환자들 속에서 한 시간쯤 기다린 후에 의사를 만났다.
“지금 아버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어요.”
“환자 상황은 저희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수술은 아주 깨끗하게 잘 되었고요. 머리 쪽 CT랑 뇌파검사, 혈액검사들을 할 예정입니다. 그 검사 결과들을 보고 신경과에서 협진이 들어올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섬망이나 뇌경색, 또는 뇌 쪽으로 전이를 예상할 수 있지만, 검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건 알 수 있습니다. ”
“네. 근데 섬망 증상이 말을 하지 않거나 저렇게 의식이 떨어지는 것인가요?”
“간혹 우울하신 분들에게는 섬망이 저렇게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정확한 것은 신경과 협진 후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분들 오셨으니 말씀드리는데 대장내시경 검사 꼭 하셔야 합니다. 오랜 기간 식생활을 함께하신 어머님도요.”
수술을 집도한 소화기 외과 담당의사한테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없었다. 수술 다음날 돌발 상황이라 신경과에서는 모든 검사를 하고 난 후에야 결과를 보고 진료를 할 거라는 지인의 설명을 현실로 확인했을 뿐이다. 검사 일정이 나왔고, 고개를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 약물 투입 후에 CT촬영이 이루어진다는 설명만 새로운 내용이었다.
1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본 엄마는 허리가 더 구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이제 갈거니 인사 좀 하라는 말을 건넨 엄마는 행여나 아버지의 손짓이 있을까 하고 기다리고 서 계셨다.
“엄마, 갑시다. 내일 또 오세요.”
“임 선생님, 잘 부탁해요. ”
간병인에게 검사 일정을 설명하고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하는 데 엄마는 정중히 인사를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내가 말을 걸었다.
“엄마는 간병인에게 참 깍듯하게 하셔..”
“내가 힘들어서 못하는 걸 해주는데 잘해야지..”
12년 전 병원 생활 초기에 아버지를 돌봤던 간병인은 일요일은 휴무라 그 시간을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돌봤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아버지 퇴원 후 10년을 돌본 엄마는 대단한 삶을 사신 것이다. 그 상황 속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떨어져 살았던 터라 자주 가보지도 못했던 나였다. 어쩌면 매일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은 참 다행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운전하고 가는데 조수석의 엄마가 말을 하셨다.
“난 너희 아버지가 더 고생하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
“엄마는 지금도 우리한테는 옛날에 고생한 얘기 하면서 아버지 흉보고 하다가 아버지 앞에 가면 쓰다듬고 만지고 하잖아. 나중에 난리 치려고..”
“난 안 그런다. 끝나면 훌훌 털어버릴 거다.”
병원을 나와 우회전을 하는데 옆 차선으로 앰뷸런스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또 들리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