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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1. 2019

13. 엄마와 나누는 이야기

여전히 12월 18일 수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면 골목 앞에서 내려드리고 3층에 올라가는 걸 확인하고 떠났었는데 이번에는 집안을 둘러보고 싶었다. 


새벽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계쯤에서 누군가 풀밭에 앉아있는 것을 봤다. 커다란 키에 밝은 빛을 갖고 있는 존재는 마냥 그곳에 앉아 있고 떠나지를 않았다. 뭔가를 하소연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잠에서 완전히 깰 때쯤에야 혹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따라 들어가면서 혹시나 하고 아버지의 체취를 느껴봤다. 12년의 병상 생활을 하던 친정집에서는 특유의 환자 냄새가 있었다. 안방에 아버지 침대가 있었고 거실을 건너 작은방에서 엄마가 생활했는데, 현관을 열면 그 냄새가 제일 먼저 났었다. 현관 앞에는 아직 그 냄새가 있었다. 안방은 이미 엄마의 물건으로 가득 찼고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가 지내던 방은 아래층에서 지내던 동생이 올라와 생활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병원에서 이 냄새가 안 나는데..”

“뭐가?”

“집에서 나던 아버지 특유의 환자 냄새..”

“글쎄.. 난 병원에만 가면 매캐한 냄새가 나던데..”

“난 안나.. 그리고 여기 집에서도 현관에서만 그 냄새가 나..”

“현관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화분이 있어.”


1990년대 초반에 집을 다시 짓고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40여 년을 살아오셨다. 58년의 결혼생활을 이어온 그야말로 노 부부의 내면이 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엄마, 이번에 병원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아버지를 생각해보고 엄마를 통해서 모르던 이야기도 듣고 하다 보니 아버지가 좀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외롭긴 뭐가 외롭니, 마누라 있고 딸자식 있고..”

“아니, 사람은 누구나 좀 외롭잖아... 아버지는 사고 나기 전에 가방 하나 메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시계 팔러 다니셨잖아. 그거 내가 한번 들어봤는데 엄청 무거웠거든... 근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런 게 좋았었나 봐. ” 

“내가 너네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살았는데 외롭긴 뭐가 외로워, 내가 힘들었지..”

“아니, 누가 고생했냐 안했냐가 아니고... 엄마 고생하면서 산거야 온 집안이 다 아는 거고, 그냥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게 궁금해서...”

“난 그런 거 모른다.”

“아버지가 사랑에 관한 시 스크랩해놨잖아. 그거 읽어봤어?”

“가위로 뭐 오리는 것은 여러 번 봤다. 뭔지는 안 봤지. 가끔 신문을 오리더라..”

“좀 읽어보지 그랬어?”

“너네 아버지는...........”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괜히 말을 꺼내서 수십 년 전의  삶이 어제의 일처럼 튀어 올라왔다. 


엄마는 쌓인 게 있으면 그것을 모두 말로 풀어버리는 사람이고 유난히 기억력이 좋다.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 못 하게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어딘가에 기어코 자신의 불만이나 화 거리를 다 토해내며, 따져야 할 때는 확실하게 조목조목 짚어내는 사람이다. 12년에 걸친 아버지 병상 생활에 들어간 비용과 누군가 위로금으로 준 봉투의 내역도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다. 


반면에 아버지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거나 들었던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엄마가 따지고 들면 듣고 있다가 큰소리 한번 내거나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서 술을 드시고 들어와서 조용히 주무셨던 분이다. 감정을 말로 드러내기보다는 행동으로 드러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셈이 흐렸다. 사업을 하면서 이익금 계산하는 것을 보면 경비를 포함하지 않아 항상 결산을 해보면 손해였는데 본인은 돈을 벌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모자란 비용은 엄마나 딸들이 감당하곤 했다.


엄마 아버지의 결혼생활 초반에는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했었고, 내가 철이 좀 들려고 할 때는 두 분이 장사를 하셨었다. 내가 20살쯤 되기 전에 두 분은 각자의 경제생활을 하셨다. 그때부터 엄마의 생활력이 전면에 등장하고 아버지는 서서히 경제생활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최근에 엄마와 병원에 다니면서  양쪽 집안의 차이를 들었는데 영락없는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였다. 


엄마의 친정은 (나의 외가) 이만여 평의 농사를 짓는 종갓집이었다. 일꾼을 5명이나 두고 있었기에 집안 어른들과 함께 하는 아침 밥상에서는 그날의 농사일과 역할 분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저녁상에서는 그날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정리해서 다음날 일거리를 계획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대가족 회의 문화가 있었던 집안으로 평상시에 오고 가는 대화가 많았단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시댁 식구들과 사는데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라 엄마는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봐도 친가 쪽 식구들이 모이면 대화가 많지는 않은 편이었다. 


“엄마, 외갓집은 언어 표현을 잘하는 집인데 시골 할머니네(친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근데 사람이 표현을 안 할 수는 없거든... 무언가 비언어적인 표현들이 있었을 거야.”

“말을 안 하는데 무슨 표현?”

“사람이 꼭 말로만 표현하나? 표정이나 행동으로 할 수도 있고, 그걸 읽어낼 수도 있지.”

“아니 말로 해야 사람이 알아들어먹지...”

“그래서 아버지가 외로웠을 거라는 이야기야...”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의 표정이 약간 경직되었다. 마치 엄마가 아빠의 삶을 몰라주었다는 지적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을 알아준다는 것은 삶이 버거웠던 시절의 엄마에게는 알 수 없는 세계였기도 했지만 그렇게 살필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리라.

말도 못 하고 눈도 맞추지 못하는 상태의 아버지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두 번씩 구부정한 허리로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 엄마의 정성이 더 안타까웠다. 


“엄마, 왜 맨날 가? 간병인도 있고, 우리도 가보는데..”

“난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래 엄마는 자식들 공부시키겠다고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아버지 병시중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다. 딱히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것을 너무 애쓰며 사는 것으로 삐딱하게 보고 있는 나의 시선을 거두고 엄마의 관점, 아버지의 관점으로 지금의 이 상황을 바라보기로 했던 일기 쓰기 출발지점으로 다시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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