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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5. 2019

15. 퇴원 결정

12월 22일 일 


 오늘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좀처럼 병원 갈 일이 없는 생활을 하다가 몇 주째 다니다 보니 몸이 좀 힘들었나 보다. 워낙 낙관적인 성향에 세세한 것을 살피기보다는 큰 덩어리를 보고 움직이는 스타일인데 이번 일은 뭔가 심리적으로 버겁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젯밤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음식 먹기가 불편할 만큼 아팠다. 좀 움직이면 나을까 싶어 걸어서 마트도 다녀오고 했는데 좋아지지 않았다. 평소에 거의 하지 않던 찜질팩을 배에 대고 누웠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몸에 땀이 흥건했다. 마음보다 몸이 더 힘들었나 보다. 둘째네 부부가 다녀갔다는 연락이 있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난 오늘은 쉴 께요.’

‘그래라. 셋째랑 다녀오마.’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배가 아픈 것은 멎었다. 식욕은 없고 속이 더부룩하니 답답하지만, 뭐라도 먹어서 장을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오후 2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는 배추, 당근, 양파, 버섯 등 자투리 야채를 꺼내서 소금 한술 넣고 푹 끓였다.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니 한결 편해졌다. 졸지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좋아하던 커피도 댕기지 않았다. 


저녁 무렵 가족 톡방에 글들이 올라왔다. 

‘아빠가 여보야 라고 했다.’

‘수술 자리 실밥 뽑았는데 잘 아물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버지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요일이 갔다. 



12월 23일 월


오후 1시경에 신경과 의사와 면담이 있다고 해서 조퇴를 하고 갔다. 막냇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와 있었다. 엄마는 병실에 계시게 하고 나와 동생만 갔다. 신경과 의사는 아주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일반적인 평균치보다 뇌에 물이 좀 많이 차 있고요, 전체적으로 뇌 활동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처치가 나갈 게 없네요. 사고 이후 오랫동안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을 겁니다.”

“ 앞으로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나요?”

“ 퇴원해서 요양병원으로 가실 건가요?”

“ 그래야겠죠.”

“ 상황이 안 좋아지면 나중에 약 처방은 해드릴 수 있어요.”


아주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둘이 함께 갈 이유도 없었던 거 같다. 12층으로 올라오니 간호사실에서 퇴원하면 어느 요양 병원으로 가실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집 가까운 데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도 검색으로 요양병원을 찾아보니 친정집 근처에 6개 정도 있었다. 막냇동생이 시설이나 병원비 등을 알아보고 우선순위 리스트를 정하기로 했다. 


‘단백질 부족으로 혈청 단백질 주사 비급여 10만 원, OK 했음.’


병원 관계자와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 셋째의 문자가 올라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많이 의식을 찾으셨다. 아버지 이름, 엄마 이름도 말씀하시고, 내가 나이를 물어보니 그런 것도 모를까 봐 물어보냐며 101살에 마나님은 두 살 위 102살이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제 수술 전 상태로 돌아오셨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없어.”


고개 짓도 훨씬 줄어들고 눈빛도 살아나고, 식구들도 알아봤다. 가족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지만, 뭔가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은 심정을 보이지 않게 나누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별일이 없으면 퇴원인데 의식이 다운되니 늦춰진 것 같다는 간병인 설명이 이어졌다. 간호사실에 확인해보니 25일 이후 퇴원 일 듯한데 주치의 선생님 결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콧줄 삽입 후 물부터 넣어보고 유동식 식이 가능하고. 별 무리 없으면 퇴원이라는 주치의 선생님 결정이 있었습니다. 아마 목요일 정도 일 겁니다. ”


진료협력센터에 문의하면 인근 요양병원으로의 이송 및 연결을 도와줄 수 있다기에 그렇게 해달라 했다. 동생에게 문자로 병원 3곳의 안내 자료가 왔고, 그중에는 우리가 알아보던 곳도 있었다. 친정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모든 자료는 진료협력센터에서 요양병원으로 보내주고, 퇴원 시간이 정해지면 그쪽에서 환자를 데리러 온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또 한 번의 결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멀리 광주의 요양원에서 두 개의 병원을 거쳐 집 근처로 다시 돌아오는 거였다. 결정 사항을 간호사실에 알려주고 엄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3층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골목을 나오니 하늘이 어둑어둑해 있었다.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오늘이 그림 그리는 날인 것을...

우회전하려던 것을 좌회전으로 급하게 바꾸어 문화센터로 갔다.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화센터 톡방에 케이크 준비했다는 반장님 글이 올라왔다. 

‘낼모레가 크리스마스잖아요. 저희 항상 일 년간 열심히 그림 그린 것 축하해야죠.’

‘벌써 그렇게 됐네요. 좀 이따 봬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한 달 여를 보내고 있으니 세상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감이 없었다. 


앙증맞게 작은 집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예쁜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도 드리고 한 조각씩  나누어 먹은 후 그림을 그렸다. 인생 선배님들과 이야기도 섞어가며 늘 하던 것을 거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상의 새로움이란 게 이런 거로구나 싶었다. 


그림 수업이 끝나고 몇 가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창고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딸애가 중학생 때 만들어 놓은 오래된 리스와 언젠가 내가 사놓은 산타 할아버지를 현관문 옆에 걸었다. 


올해는 정말로 산타가 집에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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