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금
오후에 예정된 대학병원 외래 예약은 담당교수의 초상으로 월요일로 변경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하필이면 초상으로 변경이라니 잠시 찜찜했지만 흘려버렸다. 가족 톡방에는 검색 자료들이 여전히 서너 개씩 올라왔다. 간병인이 요구하는 기저귀, 비닐장갑, 방수포 등의 물품 구매 내역도 올라왔다. 기저귀 소모량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막내 동생네가 병원까지 오고 가는 주유비, 통행료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톡방에 정산서 파일이 링크되었다. 비용이 발생하면 계속 업데이트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역할들이 자연스레 잡아가고 있었다. 딱히 누가 시키거나 요구한 것도 아닌데...
오늘은 엄마의 휴일이란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 모임에 가신다 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집안에 있는 것보다 다니는 것을 좋아하신다. 아버지 간병하느라 오랜 기간 했던 장사를 접고 집에서 환자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답답하면 산책을 가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셨다. 지난 10여 년간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700권을 넘겼다고 한다. 1000권까지 빌려 읽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82세의 엄마가 밤을 지새우며 소설을 읽고 시집을 읽는다는 게 상상이 잘 안되지만, 어찌 보면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엄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12월 7일 토
병원에 다녀온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기저귀를 가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너희 아버지 오래 못 살 것 같다.”
“왜 뭐가 문제가 있어요?”
“등 쪽으로 퍼렇게 멍이 나오는 것처럼 피부색이 달라지고, 생식기가 아주 작아졌다. 옛날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가 되면 그렇다는 말을 들었던 것과 너무 비슷하다.”
엄마가 전화하면 나는 주로 듣고 있다. 딱히 뭐라 답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엄마가 답을 들으려고 내게 전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의 속에 들어와 있는 무언가를 꺼내놓고 싶을 때면 전화를 하신다고 늘 생각해왔다.
다른 때와 달리 오늘은 엄마의 음성에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의 색이 묻어있는 느낌이다.
“내일 내가 오전에 일찍 갈 테니 준비하고 기다리세요. 너무 밤늦게까지 책 읽지 말고..”
“요새는 책 못 빌렸다. 너네 아버지 병원에 입원한 후로..”
“내일 봐요.”
12월 8일 일
주말이라고 늦게까지 잠을 자본 적은 너무나 오래전 일이다. 창 밖에 해가 뜨려고 하면 이미 몸은 깨어 있다. 한 번에 길게 자봐야 최대 6시간 정도인데, 그렇게 된지도 꽤나 오래되어 주위 사람들한테는 노인네가 다 되어 간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어김없이 창밖이 밝아오는 때에 눈을 떴다. 잠시 멍하니 의식이 돌아오려 할 때 갑자기 기억이 났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꿈을 꾸었다는 것을.......
마당에 풀이 우거진 단층 지붕의 집을 보았다. 사람이 안 산지 꽤나 오래된 것 같았고, 무성한 풀은 아무도 밟은 적이 없는지 사람 키만큼 자라 있었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녹색이 사그라들고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 같은 장면이다. 하필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 새벽에 이런 게 보이다니 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물을 한잔 마시고 창 너머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커피를 내리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리다 만 그림을 들여다보고 마무리를 했다.
이날 아침에 유난히 다른 것은 이사 와서 처음으로 거실에 찬기가 돌았다는 것이다. 14층의 아파트는 12월에 들어서도 난방을 하지 않았다. 집안 기온은 항상 22도를 넘어 있었고, 퇴근 후 들어선 집안은 하루 종일 들어오는 햇볕에 온기가 가득했었다. 바닥에 열감은 없지만 공기는 항상 훈훈했는데 지난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지 창밖이 뿌옇고 약간의 성에도 꼈다. 밤에 많이 추웠나 보다 하며 한가한 일요일의 아침을 천천히 열어가다 10시가 다되어 집을 나섰다.
친정집과 거리는 차로 20분 정도이다. 그래도 다리를 건너는 곳이라 차가 막히면 시간이 대책 없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일요일 오전이라 18분 만에 친정집 골목에 도착했다. 골목 안쪽에 차를 대고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들겼다. 엄마가 문을 열어주며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 아침은 원래 잘 안 먹어요. 나중에 맛있는 거 먹지 뭐..”
건성으로 대답하며 옥상으로 나가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 있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 옆에는 옛날 책장이 그대로 있었다. 학생 때 봤던 책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찾고자 하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옥탑방 문을 열어보니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찾는 아버지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버지가 젊었을 때 샀던 책이 안 보이네. 그때 다 버렸나?”
“아버지 꺼 많이 버렸다. 이불이며 옷가지며, 아버지가 쌓아놓은 시계들까지..”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가신 후 집을 새로 지을 거라며 정리를 한바탕 크게 했는데 그때 책들을 모두 버렸나 보다. 약간은 맥이 빠진 채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 선반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다가 누런 박스테이프로 감싼 낡은 책을 집어 들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보던 거야?”
“아니, 그건 너네 아버지가 봤던 걸 꺼야.”
표지를 넘겨보니 가정원예라고 한자로 쓰여 있었다. 대학 1학년쯤엔가 본 기억이 있다. 책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떨어진 표지를 테이프로 몇 번이나 감싸 놓은 것이 아버지의 손길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니 신문 스크랩한 것도 있었다. 치매 치료 한약재에 관한 것인데 뭔가 지금의 아버지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이 있다. 치매에 대한 걱정이 있으셨나?
갑자기 다락방에 오래전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찾은 것 마냥 다음 책도 뒤적였다. ‘우리 시 100선’이라는 책에서는 시와 해설이 있는 신문스크랩이 여러 장 반쯤 접혀있는 게 나왔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아버지의 사생활을 두 눈으로 엿본 것처럼 약간의 흥분이 스쳐갔다. 그 옆에 있던 ‘블루베리’라는 책도 살펴봤다. 건강에 좋은 것이라며 엄마가 요양원 가기 전까지 매번 챙겨드렸던 것인데 책으로 옆에 놓고 계셨던 것이다.
이 3권의 책이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거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드라이브를 즐기는 기분으로 가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그러자 했다. 집 밖으로 나오면 난 좋다고 하시며...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터널을 지나고 산이 줄지어 있는 곳을 지나는데 온통 서리꽃이 피어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에 하얗게 눈꽃이 핀 것처럼..
“ 엄마, 창 밖을 좀 봐봐!!!”
“ 아휴.. 상고대네! ”하며 엄마는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고속도로라 차를 세울 수가 없어요. 그냥 눈으로 만 보셔. 아버지 보러 가는데 경치가 너무 좋네.”
“ 사진 찍으면 좋을 텐데..”
이 말을 엄마는 여러 번 하셨다.
터널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나와 병원까지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 테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자 했는데 병원에 들어서 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 어디 계세요?”
“ 응.. 나 올라왔다. 6층에.”
기저귀 보따리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오래전 내가 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엄마는 혼자서 올라간 것이다. 층간을 다르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차에서 들고 나온 책 한 권을 펼쳤다. 3권의 책을 들고 나왔는데 그중에 한권만 병실로 들고 갔다.
병실에 들어서니 엄마는 아버지와 간병인에게 오면서 봤던 서리꽃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얼마나 곱고 좋았는지 몰라, 상고대를 보다니..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터널을 지나니까 펼쳐지더라고 사진을 찍었으면 보여줬을 텐데.. 못 찍었어”
엄마는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차를 세웠으면 하는 눈치였는데 고속도로라 못 세운다며 그냥 직진했었다. 졸음쉼터가 있었지만, 빨리 병원 들렀다 차 막히기 전에 돌아가려던 마음이 컸었다. 참 내...
다행히도 돌아오는 길에 다른 길로 오면서 고갯마루 음지에 서리꽃이 남아있길래 얼른 차를 세우고 마음껏 사진을 찍게 해 드렸다. 내일 아버지 보여드리라는 말을 덧붙이며...
엄마는 아버지 요양원에 면회 갈 때면 집에 있는 화분에 꽃이 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곤 하셨단다. 지난 전시회 때 엄마가 찍은 사진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며 설명해줬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