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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r 31. 2024

 꼬마 돌고래, 출발!  

새로운 수영장에 적응 시작합니다

우리집에서 예체능자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특히 운동을 하는 자식은 더더욱... 남편도 나도 운동이랑은 거리가 먼 인간들이고, 외가 친가 다 통틀어봐도 영 인자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운동을 한다는 엄마나 아빠들은 그저 나와는 먼 나라, 이웃 나라 사람들 이야기일 뿐이었는데... 잠을 너무 안 자고, 하루 종일 팔팔한 아이에게 너무 지쳐서 다섯 살 때부터 참방참방!시작하던 물놀이가 꾸준히 5년을 넘게 하게 됐다. 자폐아의 특징 중 하나가 각성 시간이 길다는 것이라는데, 조금 키워놓고 나니 그냥 아이가 너무 힘이 센 것 뿐이었다. 



어제는 정말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긴장했던 하루였다.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있던 팀에서 옮겨 조금은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 볼까 하고 다른 팀과 코치님들을 알아본 지 한 달 여. 이 과정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스트레스받던지... 물론 어느 누구도 나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제한을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저 나 혼자서 전전긍긍한 바였다. 


먼저 서울시 장애인 연맹으로 전화를 해서 혹시 전담 코치님이 있으신지, 그렇다면 소개를 해 달라고 다짜고짜 물어봤다. 우물도 목마른 놈이 판다고, 애써 파봤더니 결국 현재 서울시 장애인 연맹 전담 코치님을 소개받았고, 지금 일주일에 한 번 그분의 소개로 코치님께 훈련을 받게 됐다. 


문제는 나머지 요일. 

지금 운동하고 있는 팀 코치님도 굉장히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계시지만, 비슷한 역량을 지닌 친구와 함께 운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 떠나간 여행(?)이었다. 예전에 잠시 수영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한 팀을 소개받았다. 나는 이거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싶기는 했으나 모두들 비장애 청소년들이고, 선수반.  과연 우리 열한 살, 4학년 혜성이가 이들과 함께 운동 잘할 수 있을까 내심 마음을 졸였다. 장애인 아이가 한 수영장에 들어왔다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던 학부모도 이미 겪었던 터라 더욱 이를 악 물어야 했다. 



토요일, 어제.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 환경은 그냥저냥... 한 레인에 2-3명씩 수영을 하고, 수영장 하나를 다 쓰고 있었다. (이 조건은 훈련장 최고 중, 최고 환경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은 우리 아이까지 한 다섯 명, 중고생까지 있어서 진짜 분위기 살벌. 다들 촥촥 소리가 들릴 것 같이 역영을 해대는데, 어찌나 쫄리던지. 




선생님은 "자유형 해봐.", "배영 해봐." 하면서 아이가 혼자 50미터 왔다 갔다 하게 시켜보신다. 아이 혼자 수영장에 들여보내 놓고 홀로 외로이 이리로 저리로 건너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떨리고, 애처롭던지 말이다. 내가 단 한 번도 아이들 키울 때 이렇게 긴장하고, 쫄고... 그런 적이 없었는데, 지난 2014년 이후 장애아를 키우면서 남은 흔적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아이 운동하는 시간 두 시간이면 두 시간, 세 시간이면 세 시간 노트북 펴놓고 핸드폰 테더링 걸어서 자료수집 하거나 글을 쓰면서 일하는데, 어제는 언감생심. 노트북 펼 생각도 못 했다. 마지막 두 시간은 인터벌 릴레이로 각 레인 별로 계속 돌리는 시간. 5초마다 차이를 두고 출발하는 것인데 이걸 잘 알아들을지 몰라서 또 엄마는 초긴장. 


결론! 혜성이가 정말 훌륭하게 선생님 말씀도 다 알아듣고, 운동도 잘했다. 제일 못하는 아이들 레인에서 시작했는데, 코치님은 옆 레인으로 옮겨도 되겠다고 하신다. 그쪽에는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어린이와 중학생 여자 친구들 2명이 운동한다. 폼도 4가지 영법 다 잡혔고, 아주 잘한다. 그 옆 레인은 고등학생들이다. 머리를 박박 깎은 남자아이는 얼추 보니 국대 기록까지는 아니어도 자유형 보니까 50미터를 팔 안 꺾고 숨 안 쉬고 순식간에 들어온다.


월화수목은 여기에서 비장애 친구들하고 운동하고, 금요일은 장애인 연맹에서 코치님한테 2:1 자세 교정받으면 스케줄 세팅 끝날 것 같다. 4월 21일, 청주에서 도지사배 대회가 있고 5월 중순에는 전국체전이 있으니 나도 혜성이도 열심히 적응하면서 준비해야겠다.


나오는 길에 혜성이가 눈치 없이 해맑게 코치님한테 이렇게 물어본다.


"왜, 형들은 다 느려요?"


그 친구들은 국제 학교 다니는 친구들인데 선수는 아니고 가끔 나와서 운동하는 친구들이라고 한다.


"왜 형들은 한국 사람이 영어 해요? 혜성이만 못 알아듣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이 두 녀석이 운동하는 내내 혜성이한테 한 마디도 말을 안 걸어서 내심 안심, 내심 섭섭했었는데... 어차피 말 안 통할 거면, 그냥 니들은 영어를 해라. 


이제 남은 두 커다란 산. 

의정부 쪽 수영팀에 소속 옮긴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동안 성심껏 봐주셨던 활동 지원 선생님께 이제는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후우~ 너무 스트레스받는다. 이런 변화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별을 이야기하고,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 나 같은 애들은 인사팀에서 일 못 하겠다 싶다. 어젯밤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이 되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정말 3월 내내 팀 옮기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았던 지라 한 호흡, 한 호흡, 모두 기록해 놓고 싶었다. 그래도 비장애 친구들하고도 붙어 볼만하다는 것, 가능성이 보여서 너무 감사하고, 세 시간 운동 매일 할 정도의 체력이 될 것 같아서 그것도 고마울 뿐이다. 또 하나, 이것이 내 욕심의 소산인지 아니면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서 어제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영화 <4등>을 스스로 성찰하는 마음으로 봤다. 


https://youtu.be/Zhl8A7o40O8?si=zaEcK2ZurqzRwd3R


혜성이가 4월, 5월 대회 나가서 경험 쌓고, 운동에 재미도 더 느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은 그저 그것뿐이다. 운동에 재미를 느껴보기. 그래서 평생 친구가 되면 더욱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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