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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Sep 28. 2024

그 시절 연탄, 그리고 마카로니 언니들을 추억하며

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우연히 집어서 읽게 됐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것인데, 이거 참 몰입도가 높다. 수작이다! 소설 초반에 우리 어린 시절의 연탄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설의 주인공이 쓴 칼럼 형식으로 나온다. 과연 나와도 많은 부분이 세심하게 겹치는 터라 이 작가님 나랑 자라온 시절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방바닥 밑 방고래와 연탄아궁이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부엌 위치는 방보다 낮았다. 나는 부엌 입구에 달아놓은 마루에 앉아 슬리퍼를 꿰신고 부엌 바닥에 털썩 내려가곤 했다. 일곱 살 아이에겐 꽤나 벅찬 높이였다. 시멘트로 바른 부엌 바닥은 늘 젖어 있었다. 축축한 바닥을 바삐 오가는 엄마의 플라스틱 슬리퍼는 달각달각 소를 내었다."

- 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중


이 단락을 읽다가 나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살았던 수유리 집이 생각나서 갑자기 아득해졌다. 아마 요즘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아파트에서 죽 살아왔던 이들은 '부엌 입구에 달아놓은 마루'가 뭔지 모를 것이다. 마루에서 부엌으로 들어갈 때, 나무판자 즉, 마루가 대어져 있다. 소설에서도 이야기해 주듯, 마루보다 부엌은 더 깊다. 그래서 먼저 마루를 밟고 부엌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마루를 작가는 '달아놓았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떼기 판 아래는 지하실이다. 마루를 위로 열면 그 밑에 계단이 있어서 밟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내 기억에 우리집은 그냥 쓰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 아래가 꼬마의 눈에는 너무 깊고 어두워서 엄마, 아빠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그 안에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루가 이가 잘 안 맞았는데, 그를 밟아버리는 쿵 하고 지하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


한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부엌에서 점심밥을 만들고, 나는 안방에서 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무슨 귀신 소리 같이 들렸다. 어려서 장난으로 목소리 으흐흐흐~ 떨어가면서 "내 다리 내놔~"하고 귀신놀이를 했듯 말이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봤다. 부엌 쪽이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데, 세상에... 그 마루가 없고 깊디 깊은 지하실이 시커멓게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엄마가 밥상을 들고 올라오다가 그만 마루와 함께 아래로 푹 꺼져버린 것이다. 밥상이 나뒹굴고 엄마가 아래에서 나를 당혹스러운 눈으로(어쩌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올려다보며 손을 잡아달라고 나에게 뻗 장면이 흑백 사진처럼 딱 남았다.


그리고 저 슬리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앞이 막혀있는 슬리퍼가 있다. 엄마들이 많이 신고는 시장도 가고, 이렇게 부엌에서도 신고 그랬다. 색깔은 파랑, 보라색 등등... 저 슬리퍼에서 나는 특유의 소리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송시우 작가가 너무너무 세심하게 잘 기억해 냈다. 내 귀로는 단순히 달각달각 소리라기보다 슬리퍼 안 공간에서 울리는 특유의 슬리퍼 코맹맹이 소리가 있다. 요즘은 이 슬리퍼 당연히 쏙 들어가서 볼 수가 없다. 부엌이나 수돗가에서 빨래 마치고 나면 마지막 단계로 엄마가 꼭 벗어서 벽에 세워놨었는데... 물 빠지라고...


돌아보면 그 시절 연탄아궁이 난방은 참으로 위험했다. 밀집된 가옥 구조, 보이지 않는 사이 언제 망가져 틈이 생길지 모르는 온돌 바닥, 방문 하나 열면 지척에 놓여 있는 아궁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한 환경이다. 목숨을 걸고 난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네에 누가, 아는 사람 누가 연탄가스를 먹고 죽었다는 말이 흔하게 돌았고, 한 번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비몽사몽 중에 동치미 국물을 마셔본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분명 우리나라 현대 생활사가 품은 크나큰 비극이었다.

- 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중


이 소설은 '라일락 집'이라 불리던 다세대 주택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영달이라는 청년을 기억하면 시작한다. 우리집은 13살, 6학년 때까지 연탄을 땠다. 주말이면 아빠가 시멘트를 바르고, 벽지를 다시 바르는 등 집수리도 심심찮게 했었다. 엄마가 밤에 자기 전, 아궁이에 한쪽 무릎을 대고 연탄을 갈 때쯤이면 나는 그 연탄불빛이 왠지 이글거리고 좋아서  아래위 겨울 내복을 입고 부엌 마루에 서서 들여다보곤 했는데,  연탄 세장 구멍이 잘 안 맞아서 연탄집게로 맞추느라 시간이 좀 걸리면 코나 목구멍이 콰하게 아파왔다. 그게 가시려면 꽤 오래 걸렸다. 옛날 연탄 때던 구들장 집들은 방바닥은 따끈한데, 공기가 차가워서 엄마가 미리 잠자려고 옛날 비단 이불을 깔아 놓은 곳에 쏙 들어가면 처음에는 '으으 추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록 이불 닿는 하얀 천이 차갑다. 그래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내 체온으로 이불 안 공간을 데우는데, 저 연탄가스 때문에 코랑 목도 아프지, 몸에 닿는 이불 광목 부분은 풀을 빳빳하게 먹여서 까슬까슬하고 차갑지... 그 펄떡거리는 오감의 겨울밤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동안은 연탄을 때는 것에 대해 이렇게 '추억'만 떠올렸지, 단 한 번도 그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뉴스에서 잠자다가 일가족 몰살 이야기가 뒤숭숭하게 넘실거렸음에도 붙잡아 깊이 곱씹어보질 못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심지어 내가 연탄중독 당한 적이 한 번 있었음에도... 결론, 나는 이렇게 잘 살아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집에서 세를 놨던 방이 있다. 앞에 작은 부엌도 있었으니, 작정하고 세를 놓으려고 지은 방일 것이다. 마루 오른편의 내 방과 문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장롱으로 그 문은 막아버렸다.

내 기억과 추억 속 많은 사람들, 가족들이 그 방을 거쳐갔는데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생 자매였다. 어린 여자아이 눈에 대학생 여자, 이십 대 여자는 웬만하면 굉장히 예뻐 보인다. 우리들 어렸을 때 기억에 이모, 고모가 다들 멋쟁이였던 것처럼. 그래서 그 언니들하고 굉장히 친해지고 싶었고, 언니들도 그런 나를 되게 귀엽게 여겨줬었다. 방으로 놀러 오라고도 했다. 가끔 나는 일부러 마당에 나가 있으면서 언니들이 "들어와" 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방에는 살림도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특이하게 책장에 책들은 그렇게 많았다. 언니들은 덕성여대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자매가 한 학교에 들어갔다기보다는 그저 '언니'라고 불리는 한 사람하고 자기 이름을 불리는 후배 한 사람이 한 집에 산 것이었을 터였다.


하루는 그 언니들이 맛있는 것을 해주겠다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오전 나절이었다. 아마 언니들 수업이 오후에 있었던 것일까. 뭔가 벌레 같은 것을 냄비에 우르르 쏟더니 이걸 삶아주겠다고 하는 거다! 나는 그 모양새를 보고 속으로 '으으윽~ 싫어!'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으로 내뱉는 말은 "와아~"였다. 언니들하고 친한 사이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어린 꼬마의 마음이었다.

냄비에서 그 노란 벌레들은 들들들 삶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김을 내뿜으면서 벌레들은 채 속으로 우르르 꾸물꾸물 쏟아져 들어갔고, 그 위에 큰 언니는 쭈욱 마요네즈를 뿌렸다. 그리고는 뒤적뒤적...

"먹어 봐."

퉁퉁했던 큰 언니가 나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퍼서 먹었다. 옆에 얼굴이 하얗고, 눈동자는 밤색이며 어깨까지 오는 파마머리를 한 작은 언니가 킥킥대고 웃었다.

"맛있어?"

입에 들어간 그 작은 벌레들은... 정말 맛있었다! 오이도, 당근도, 옥수수도 없이 그냥 마요네즈만 쭉 짜 버무린 것인데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그 벌레들의 정체는 바로 마카로니였다. 이름을 물어봤고, 언니들이 알려준 그 이름 그대로 지금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마카로니 언니들이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너무나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학교 갔다 와 보니 그 많던 책들이 싹 다 사라지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아!" 하고 질러 보면 소리가 텅 울릴 정도로. 그렇게 좋은 언니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이사 간 걸까. 바로 어제만 해도 다음에는 뭐 하고 놀자고 했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후 엄마가 이모들하고 얼핏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못 알아듣겠지만 쑥덕대는 소리가 그리 좋은 일은 아닌 듯했다. 훗날 엄마는 연탄가스가 나오는 바람에 셋방을 바로 나갔다고 했다.  그것도 일리는 있던 것이 언니들 이후로 한참 동안 그 방은 비어있었다. 반대로 연탄가스 중독이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앓아누워야 하는데 반나절 만에 홀라당 방 빼고 나갔다고? 그 말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집주인이 엄마인데, 연탄가스 새는 셋방이라고 소문을 엄마 입으로 내고 다닐 리도 만무했고.

하지만 더 크고 나서 어른이 된 후, 이 80년대 초반이라는 시절과 덕성여대라는 배경, 그리고 벽 하나 가득 메운 책장 등등을 조합해 보니 언니들은 운동권이었던 듯하다. 어쩌면 경찰이 위치를 알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 언니들이 얼른 튄 것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모든 것을 조심했던 우리 엄마의 성향 상, 그리고 조선일보를 40년 넘게 줄기차게 구독하는 부모님의 성향 상,  이러이러 저러저러 하니 좀 나가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나랑 망치게 하는 큰일 날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까스 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든, 횟집에서 스끼다시 중 하나로 나오든 나는 지금도 마카로니만 보면 바로 제일 먼저 젓가락이 출동한다. 예전부터 이 다정했던 언니들과 마카로니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탄불과 이야기가 포개어졌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쯤에서 안도현의 시 '연탄'을 읊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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