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 단짠 베이베
경북 영천에 가면 '돌할매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한 10킬로 정도 된다는 돌이 모셔져 있다. 불쌍한 중생들이 가서 소원을 비는 할머니 돌이다.
소원을 비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 돌 앞에서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저는 어디 어디에서 왔습니다 아뢴 후 인사 차 돌을 들어본다. 제법 묵직하지만 여자인 나도 못 들 정도는 아니다. 그 돌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난 다음 제 소원은 뫄뫄뫄뫄인데요 이 소원 이루어질까요, 아닐까요라고 마음속으로 정중하고, 정확하게 물어본다. 그리고 다시 돌을 든다!
빠밤!
그럼 돌할매가 메시지를 주신다.
그 소원이 이루어질 거면 돌이 밑에 강력 본드를 붙인 것처럼 신기하게 잘 들리지가 않고, 이루지 못할 소원, 그럴 사랑이라면 내가 먼저 떠나가야지~~~ 돌이 아주 깃털처럼 휙 들린다고.
지난 2022년, 돌할매 공원에 친구와 함께 가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원고 잘 될까요, 안 될까요' 하고 물어보고 소원을 빌었다. 진짜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하게 빌었다.
돌도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들었다 놨다 했는지... 내가 갔을 때도 한 서너 팀이 줄을 서서 각자 깨알 소원들을 빌고 있었다. 내 앞의 한 아저씨는 "할매 안냐심니꺼~" 하고 호탕하게 인사 닦고 나서 돌을 들다가 "에라이~ 와 이래 가볍노!" 하고 툴툴대면서 돌아섰다.
아따~ 할매 호불호 명확하시네.
이제는 드디어 내 차례. 심호흡도 경건하게 하고 난 뒤 두 번째, 돌을 들으니, 세상에 웬일! 돌이 안 들리는 거다. 게다가 너무 무거워서 들다가 지렛대처럼 팔꿈치 아래뼈가 부딪혀서 멍들기까지 했다. 어머머머! 뒤에 줄 서 있던 다른 일행들도 같이 놀랐다.
나는 기분이 룰루랄라 좋아져서 나오는데, 공원 바로 앞에 어느 조그만 할머니가 늙은 호박 속 노란 것을 채칼로 쳐서 다라이에 놓고 파시는 거다. 비닐 봉다리에 호박속을 꽉꽉 집어넣고 박스 떼기에다가 매직인지 사인펜인지로 '이천 원'이라고 적어 앞에 놓고 팔고 계셨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할머니가 대구댁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 글을 다 쓰고 난 뒤 그날의 사진을 몇 장 뒤지다가 알았다. 할머니가 그 앞에 또 다른 박스 떼기에다 '대구댁'이라고 써놓으셔서 알게 된 것이다. 대문 사진으로 걸어 놓았다)
돌할매 공원, 관광객들이 왁자지껄 한 것도 아니고 가끔씩 몇 팀 와서 조용하게 사부작사부작 줄 서서 돌 들었다가 놨다가 하고 가는 곳인데 그 길목을 왜 지키고 계시는지... 이리 한산하게 손님도 없는데...
- 아이고, 할머니, 이거 이렇게 많이 꾹꾹 눌러 담고는 이천 원에 파시면 안 돼요. 오천 원은 받고 파셔야 돼요.
저렇게 하루에 많아봤자 만 원도 안 되게 팔고 어떻게 사시는지... 마음이 아려서 함께 갔던 친구랑 할머니 다라이 안에 야무지게 묶여있던 봉다리 다 사 가지고 왔다. 내 친구, 마음이 넉넉한 아이라 그냥 만 원짜리 두어 장 다 드리고 왔던 기억이...
아마 그 채친 늙은 호박 가지고 전 부쳐 먹는 것이 경상도 제철 음식인가 보다. 경북 사람인 친구가 엄마가 옛날에 만들어줬다면서 그날 저녁, 진짜 기가 막히게 호박전을 부쳐줬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설탕 부어 넣은 인공의 단맛이 아닌, 자연의 단맛, 사각사각 거리는 호박속 식감이 니 미칬나!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한다. 게다가 살짝 소금에 절여 부쳐낸 지라 단짠단짠, 요즘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맛의 조화라는 '단짠단짠'이 입천장을 뚫고 하늘로 솟구친다.
아무래도 돌할매 공원에서 나의 돌할매는 아무래도 그 호박속 채친 것 파는 할매셨던듯. 태어나서 처음으로 늙은 호박전을 먹어본 날이다. 이 마을에서는 이미 100여 년이 넘게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왔다는 돌할매.
내 친구는 그 돌이 너무나 가볍게 들렸다며, 아무래도 돌 드는 사람의 간절함에 따라 무게가 달리 느껴지는 것이 아니냔다. 이도 몹시 설득력이 있다.